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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에 ‘진찰 구걸’… 800명 대기 장사진
[GLOBAL ] 주치의 없는 환자들- ① 실태
[149호] 2022년 09월 01일 (목) 바르바라 하르딩하우스 economyinsight@hani.co.kr

불면증이나 통증, 약한 심장 등에 대비해 가정의(일반의)가 필요하다. 독일에서 가정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이 많다. 아무리 아파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을까.

바르바라 하르딩하우스 Barbara Hardinghaus <슈피겔> 기자

   
▲ 독일 작센주의 소도시 니스키. 이곳 주민들은 의사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구글 갈무리

독일 작센주 도시 니스키의 무스카우어 거리에 있는 병원의 4번 진찰실 서류 캐비닛에 도로테아 친들러(80)의 편지가 놓여 있다. 친들러가 줄노트에 연필로 적은 편지는 “존경하는 슈미트 의사 선생님”으로 시작한다. 친들러는 소파에서 편지를 썼다. 소파 앞에 놓인 작고 평평한 테이블 위에는 리모컨과 해바라기 형태의 스카프가 놓였다. 스카프 안에는 진통제 펜타닐 패치 팩이 들어 있다.
펜타닐 패치 팩 오른쪽에는 “너를 사랑해”라고 적힌 붉은 벨벳 쿠션이 놓였다. 친들러는 일어서기 힘들 때면 쿠션을 베개처럼 베고 소파 위에 종종 누워 있다.
친들러가 의사 다나 슈미트에게 보낸 편지는 지역 가정의들에게 보낸 8번째 혹은 9번째 편지였다. 친들러는 첫 편지를 직접 가정의학과 우편함에 넣으려 했지만, 병원까지 반쯤 간 거리에서 주저앉아 집에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웃집 여성이 친들러를 위해 편지 초안을 써줬다. 이 여성의 아들이 인터넷에서 니스키에 새로 병원을 연 여의사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줬다. 친들러는 편지를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를 환자로 받아주시겠습니까?”

   
▲ 니스키는 독일 남동부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 부근에 있는 소도시다. 구글 갈무리

독일 전역, 일반의 4100명 부족
‘가정의 찾아 삼만리’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상당수 지역에서 수많은 주민의 현안이다. 독일 동부뿐만 아니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혹은 니더작센주 등 독일 전국에서 가정의 4100명 정도가 부족하다. 의료서비스가 낙후되거나 낙후될 위험이 있는 지역들이다. 작센주 괴를리츠에 있는 니스키는 인구 9천 명으로 의료서비스가 낙후될 위험 지역에 속한다. 니스키는 가정의 수급난을 겪는 문제 지역 가운데 중간쯤에 속한다.
니스키의 의료서비스 공급률은 88.9%다. 니스키에서 허가받은 가정의는 총 12명이고, 이 중 현재 공석이 4.5명이다. 니스키 인근 동네들까지 포함하면 인구는 2만6천 명에 이른다.
32살 여의사 다나 슈미트는 2022년 1월3일 자신의 병원을 열었다. 슈미트는 집이 있는 바우첸 인근에서 국도를 타고 병원이 있는 무스카우어 거리까지 50㎞를 매일 운전한다. 무스카우어 거리에 도착한 슈미트는 병원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짐작했다. ‘오늘 아침에 버스가 안 왔나?’
알고 보니 그 줄은 자신의 병원 앞에 늘어선 것이었다. 800여 명의 긴 줄은 흰색 병원 건물을 완전히 둘러싸서 주차장을 지나 다시 도로까지 이어졌다. 캠핑 의자에 앉아 보온병에 담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이들은 가정의가 필요해 슈미트 의사에게 상담받으러 왔다.
금발에 친절한 인상의 슈미트는 드레스덴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이후 12년 동안 여러 병원에서 내과의 수련 과정을 거쳤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지만, 독일에 가정의가 없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슈미트는 이날 아침 병원에 도착해 바로 프린터를 켰다. 그리고 간호사 그리트, 야퀼리네와 함께 정오 무렵까지 거리에 줄을 선 사람들에게 신청서 4천 부를 배포했다. 가족이나 친구 대신 줄을 선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신청서를 작성해 병원에 제출하면 됐다. 이날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인근 와인매장 플리케에서 산 와인과 케이크를 가져온 사람도 많았다. 신청서 봉투에 백신접종증명서와 증거자료 원본, 명함을 넣기도 했다. 신청서 봉투를 ‘지원서’라고 부르기도 했다.
슈미트와 간호사들은 첫 며칠을 시간대별로 우편함에 가득 모인 신청서 봉투를 꺼내야 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금요일에 지역의 다른 많은 가정의 병원과 마찬가지로 병원 입구에 공지문을 붙여야 했다. “현재 유감스럽게도 신규 환자를 더는 받을 수 없습니다.” 마치 태양이 두꺼운 구름을 아주 잠시 뚫고 얼굴을 내비쳤다가 바로 다시 자취를 감춘 듯했다.

   
▲ 독일의 시골 마을은 의사 부족 등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다. REUTERS

밀려드는 환자들
4월 말 어느 화요일 아침 8시9분. 슈미트 가정의 대기실. 독일 약국 전문잡지 <아포테켄 움샤우>(Apotheken Umschau)의 가로세로 낱말퍼즐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을 의미하는 다섯 글자 낱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채워져 있다. 천장의 스피커에서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이 흘러나왔다.
“상상해보세요 세상 모든 사람이”
(Imagine all the people)
남편이 대신 줄을 서준 덕택에 한 젊은 여성이 마침내 차례가 되어 대기실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50대 중반 남성과 그의 78살, 82살 노부모는 새벽 5시 병원 앞에 도착해 줄을 섰다. 진찰실에서 슈미트 의사는 <슈피겔> 취재진에게 첫 몇 주 동안 당뇨병, 고혈압, 만성질환자 등 자신이 진단한 병명을 읊었다. 그렇게 3주가 흐른 뒤 의사는 일주일 휴가가 필요할 정도로 지쳐버렸다.
작센주 도시 바우첸에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성장한 슈미트는 학창 시절에 소풍 갈 돈이 없을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아비투어(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렀고, 성적을 받은 뒤 전공을 결정하려 했다. 그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돈도 벌고 싶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은 어떨까? 자신이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던 환자들을 어떻게 했을까?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며 보냈다.”
당시 환자로 받지 못했던 사람 중에는 다시 병원에 와서 수납 데스크에 100유로 지폐를 놓고 가는 이도 더러 있었다. 누가 봐도 공동묘지에서 꺾은 것이 분명한 꽃다발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찰실 책상에는 사람들이 가져온 선물이 놓여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정의가 돼달라고 간청하는 편지가 선반에 수북이 쌓여 있다. 회신이 필요한 편지들이다.
“저는 시급하게 약이 필요합니다. 콩팥 수치 관리가 너무나 시급합니다. 하지만 가정의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이 저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도로테아 친들러가 보낸 편지 내용이다. 편지 마지막에는 친들러의 전화번호가 정성스럽게 적혀 있다. 전화번호는 오렌지색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다. 그 옆에 젊은 사람의 글씨로 보이는 “거절하세요”란 문구가 적혀 있다.
50대의 야퀼리네 간호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운동화를 신고 조용히 걷는다. 그가 친들러에게 아쉽지만 환자로 받을 수 없다고 연락하는 일을 맡았다. 야퀼리네는 친들러에게 아직 전화하지 못했다.
슈미트의 병원 창문 밖으로 니스키 지역이 펼쳐져 있다. 니스키 지역은 주도로의 양옆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도로에는 레스토랑 ‘뷔르거하우스’(Bürgerhaus), 펜션 ‘보디 선’(Body Sun), 자갈이 깔린 시장 등이 있다. 니스키에는 축구장과 테스니스장 등 각종 클럽과 아이스링크, 야외수영장, 심지어 소규모 종합병원도 있다. 니스키는 마치 아동서적을 위해 그린 듯한 아름다운 지역이다. 도로에는 쓰레기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니스키의 가정의 자리에 관심 있는 젊은 의사들이 법정건강보험의사협회(Kassenärztliche Vereinigung)에 전화로 많이 하는 질문에는 “배우자 일자리도 있는지” “버스를 운행하는지” “인터넷은 되는지” 등이라고 한다. 법정건강보험의사협회 인력담당부서가 의사들의 각종 문의에 답하고 있다.
법정건강보험의사협회는 ‘수요 계획’에 따라 가정의 자리를 배분한다. 특정 지역 가정의로 지원하는 의사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첫 2년 동안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며 수당을 지급한다. 니스키에 가정의로 개원하는 의사는 지원금 6만유로(약 8천만원)를 받는다. 가정의 자리가 74% 채워진 인근 지자체 바이스바서는 지원금 10만유로를 지급하고 있다.
슈미트의 병원은 최근 전면 수리를 마쳤다. 병원 면적은 200㎡로, 진찰실 6곳이 있다. 진찰실 하나는 침을 놓는 곳이다. 접수창구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단발의 지모네 슈텔러가 일한다. “접수창구에는 좀 뻔뻔한 직원이 필요하다”고 슈미트는 말한다. 슈텔러는 방금 남자 환자 한 명을 받아줄 수 없다고 돌려보냈다.
오전 11시9분. 20대 후반 여성이 병원에 들어온다. “여기 환자를 더 받는지 물어보려고 들렀습니다.”
오전 11시22분. 61살 남성이 병원에 들어온다. “환자를 아직 받고 있습니까?” 남성은 천식약과 심장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슈텔러는 “저희는 더는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남성에게 말했다. 남성은 턱수염 사이로 힘겹게 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는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마치 구걸하듯이 서 있다. 남성이 병원을 떠나자 슈텔러는 말했다.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의사와 대화하는 사진 속 모녀는 그나마 다행인 경우다. REUTERS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남성처럼 끝까지 공손함을 잃지 않는 사람만 있지는 않다. 집에서 살림하는 프랑크 마르틴(54)은 철물점을 운영했고 뢰바우에 자가주택도 있었는데, 사업이 망해 집도 날렸다고 한다. 그는 현재 옛 농가를 수리해 월세로 살고 있다. 그는 여기서 아내와 적응해 잘 지내고 있으며, 염소를 키우고 조그만 작업장도 있다.
그는 고혈압을 앓고, 과거에 심장마비를 앓은 적이 있다. 그는 2021년 여름 바우첸 지역 가정의 한 명을 포함해 지역 가정의 30~40명에게 전화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같은 해 12월 병원 응급실에서 약을 타왔지만, 이미 1월에 약이 다 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자가용을 타고 인근 병원을 모두 돌아다녔다. 마침내 한 병원에서 아주 오랫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린 끝에 처방전을 받았다.
응급실 의사들은 소량의 약만 처방이 가능하고, 환자들의 혈액 수치를 지속해서 잴 수는 없다. 옛 동독 시절에는 다양한 진료과목의 의사들이 한 병원 건물에서 진료했던 종합병원이 있었는데, 통일 뒤 이런 병원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느덧 니스키를 포함한 인근 지역에 소규모 의료센터 여러 곳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기 가정의들도 이제 환자 포화 상태로 더는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2022년 3월, 프랑크 마르틴은 지역에 슈미트 가정의가 개업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접수창구의 슈텔라와 대화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른 환자들은 드레스덴까지 가정의를 찾아다니거나, 아니면 빈손으로 집에 돌아갔다고 슈텔라는 말했다. “이제는 병원까지 찾아와 자신을 환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슈미트는 이제 접수창구에서 소동이 일어날 걱정 없이 진료실에서 조용히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게 됐다.

ⓒ Der Spiegel 2022년 제29호
NOTRUF AUS NIESKY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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