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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펀드 잔혹사’와 헤어질 결심을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148호] 2022년 08월 01일 (월)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미술사학자

   
▲ 소더비 직원들이 2021년 10월2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에서 열린 피카소 작품 경매에서 전화로 입찰을 받고 있다. REUTERS

미술품의 사용가치는 보고 즐기는 데 있지만, 미술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과시욕과 투자수익 등 다양하다. 특히 고가의 작품을 살 때는 무엇보다 자산 보전 내지 투자수익이라는 요인에 더 큰 비중이 실린다. 실질적인 제로금리 시대를 지나면서 미술품은 꽤 그럴듯한 대체투자 수단으로 거론됐고, 최근에는 미술품을 공동투자하는 사이트와 상품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는 펀드 형태로, 일부는 다단계에 더 가까운 형태로 광고하는 이들 상품에 돈을 넣어도 될까.

아트펀드 원조 ‘곰의 가죽’
아트펀드의 원조는 1904년 앙드레 르벨이라는 사업가와 13명의 친지가 구성한 ‘곰의 가죽’이다. 이들은 11명이 매년 250프랑씩 갹출해 10년 동안 작품을 꾸준히 사서 1914년 일괄 매각했다. 모든 경비를 제하고도 두 배 이상의 이익을 얻었고 수익의 5분의 1을 작가들에게도 분배했다. 이미 10여 년간 미술품을 수집했던 르벨은 세잔·고갱·반고흐 등의 작품 가격 상승을 직접 보면서, 이제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수집가들이 눈을 돌린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신인이었던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을 매년 출자된 금액으로 지속적으로 구매해 작가 시장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투자 성과도 높일 수 있었다.
공적인 아트펀드로서는 1974년 영국철도연금기금 사례를 들 수 있다. 1조파운드를 운영하던 기금은 당시 석유파동과 인플레이션 여파로 분산투자를 하기로 하고 1974년에서 1980년까지 4천만파운드를 미술품에 투자했다. 이들은 소더비 경매에 매각을 위탁하는 조건으로 소더비의 조언을 받아 인상파와 모던회화를 비롯해 다양한 미술품과 금세공품, 프랑스 가구 등을 골고루 사서 연 11.3%의 수익을 냈다. 약 7년간 구매, 7년 거치 이후 약 14년에 걸쳐 매각을 완료했다. 1980년대에 인상주의 회화를 중심으로 미술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최장 28년의 장기간에 걸쳐 괜찮은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현재 활동하는 아트펀드 중 대표적인 것은 2004년에 출범한 파인아트펀드(Fine Art Fund)다. 1호 펀드는 1인당 25만달러 이상 투자 조건으로, 만기 10년에 이후 1년 단위로 세 차례까지 연장이 가능한 조건이었다. 투자자는 처음에 약정액의 20%를 납입하고 이후 4년에 걸쳐 나머지를 납입한다. 투자금액은 주로 모던 및 컨템포러리 거장들의 작품을 단기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수료는 초기에 4%, 이후 매년 2%씩 차감해 10년 기준으로 원금의 24%가 차감된다. 이후 몇 차례 추가 펀드를 모집했고, 최근에는 펀드 말고도 자문이나 미술품을 이용한 파이낸싱 서비스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사실상 10년 이상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아트펀드라고 할 수 있다.
파인아트펀드가 국내에서도 마케팅을 하던 2006년 9월 국내 최초의 아트펀드가 발매됐다. 이 펀드를 포함해 국내에서 당시 발매한 아트펀드는 실질적으로 미술품을 담보로 하는 채권상품이었다. 주로 만기 3~4년의 단기펀드로 이뤄져 미술품 투자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간을 확보하지 않았고, 시중금리가 5%대이던 시절에 10% 이상 고금리를 보장했다.
그즈음 한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첫 펀드 투자에서 고금리에 약간의 배당까지 수익을 보자, 두 번째 발행한 펀드에 다시 투자했단다. 그런데 만기에 상환은커녕 갤러리 오너가 파산신청을 해서 펀드 소유 미술품은 있는데 어떻게 돈을 찾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미술시장은 유동성이 낮고, 특히 침체기에는 매수와 매도 간 호가 차이가 커서 이런 악성 매물의 처분은 펀드 실적뿐 아니라 해당 작가의 시장가치에도 재앙적인 영향을 미친다.
당시 금융권의 미술시장에 대한 몰이해로 담보가치를 정확히 산정하지 못했고, 아트펀드 운영사라는 이미지와 눈앞의 목돈에 눈이 멀었던 갤러리들은 하필 미술시장 침체기에 만기가 겹치면서 뒤늦게 금융의 살벌함을 배웠다. 결국 몇몇 갤러리가 파산하거나 자금난을 겪는다는 흉흉한 소문과 함께 아트펀드는 한동안 잊혔다.
그 뒤 2017년 한 경매사가 자산운영사와 함께 실적배당형 아트펀드를 발행한다는 기사가 났다. 단색화를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움직이면서 미술품 투자의 유혹이 다시 기승을 부렸다. 이번에는 단순한 금융이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첨단기술과 금융이 결합한 상품으로 포장하거나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내세우며 공신력을 높이는 등 투자방식과 투자대상, 모객방식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미술품은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상품과 달리 가격정보가 없고 내부자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시장이 불투명하다. 가격변동성이 높은데다 해외 유수 경매사의 경우 위탁·매입 수수료가 각각 20%가 넘어서 구매자의 지급액과 매도자의 수령액 차이가 낙찰가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미술품이 분산투자라고 말하는데, 미술시장은 모든 자산 가격이 다 오른 뒤 막차로 오르고 제일 먼저 빠진다. 게다가 대중은 바닥에서는 움직이지 않고 오른 뒤에야 믿고 따른다. 상승기에 투자하고 하락기에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아트펀드의 잔혹사를 이미 경험했다.

불투명한 미술시장, 투자 위험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되면서 이제 미술시장의 수요 기반은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주식이나 채권은 원래 용도가 투자금액을 모으기 위한 것이지만, 미술품은 장식이든 과시든 보고 즐기기 위한 것이다. 미술시장은 불투명해 미술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미술계의 중심은 작가를 후원하는 컬렉터와 미술관, 갤러리다. 투자자와 딜러가 중심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고급 내부자정보를 원한다면 투자 전문가가 아니라 미술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투자로 사들인 작품은 매물화되면서 시장 수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술작품 투자는 정확히 제로섬이지만 애호와 후원은 작가의 성장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진정으로 미술을 통한 가치 창출을 원한다면, 투자와는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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