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 맞은쪽 승객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들은 어느 때보다 수다스럽다. 다만 수다스러운 것은 입이 아닌 손가락이었다.
시장조사 업체 닐슨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10대 청소년들은 깨어 있는 동안 평균 10분에 한 번꼴로 문자메시지(SMS)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10대를 겨냥한 문자요금제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시장 상황만 보아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문자란 시공간을 뛰어넘는 잡담이자, 붙잡힌 육체를 넘어 자유롭고자 하는 일이다.
문자가 10대만의 화제가 아님은 특히 스마트폰의 범람과 함께 찾아온, 사용자 일반의 문자 정보 폭증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구나 바쁘고 나름의 사연을 지닌 현대인, 불쑥 전화를 거는 것이 마음에 걸려 문자를 먼저 보낸다. 또는 굳이 이야기를 시작해 번잡해지는 것이 신경 쓰이니 용건만 간단히 문자로 보낸다. 문자 우선은 언어 예절이 되었다.

문자 우선이 언어 예절로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로 대변되는 소셜 네트워크는 단말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만으로도 본격적이고 광범위한 소통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장을 마련해줬다. 그 결과 우리는 문자로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최신 스펙의 인류는 발성이 아닌 문자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바로 몇 걸음 걸어가서 말할 수 있는 거리의 상대에게도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화면을 터치한다. 문방사우를 펼쳐야 했던 시절에 비하면 인간의 문자 생성 활동은 확실히 편해졌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말이 더 편할 텐데….
SMS 단문 활동이 보여준 활발함과 간소함에서 착안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만들어졌다. 특히 트위터나 미투데이와 같이 명시적으로 자수 제한이 있는 서비스들은, SMS와는 달리 애초에 그런 한계를 두어야 했던 기술적 제약 조건이 없음에도 짧고 간결하게 ‘글 대신 말을 쓰라’고 안내한다.
인간의 언어활동이 도구를 고안하고 제작해내는 도구적 인간의 완성과 밀접한 연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일은 언어학에서도 있었다. 언어도 도구도 모두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자, 인간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자연스럽게는 존재할 수 없는 어떤 형태를 분해 조립해 완성하는 일이 도구의 완성이라면, 자연음(自然音)에는 없는 분절과 형태소가 형성되는 과정이야말로 무소불위의 도구를 탄생시키는 일인 것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는 힘들이다.
분절과 그 조합으로 무한 생성되는 언어활동, 이 무한한 가능성에 의해 마찬가지로 넓어지는 의미의 세계. 인간의 언어가 지닌 가능성은 자연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언어에 의해 그 세계가 구성되고 보존된다. 인류는 그렇게 자라왔다. 인터넷과 문자질에 의해 국어가 망가진다고 눈살을 찌푸리곤 하지만, 이 역시 결국 무한 생성의 한 과정임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일이다. 아니 이 낯선 현상이야말로 인류가 또 한 번의 성장을 앞두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언어 도구로서 SMS와 SNS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속도와 힘으로 언어활동을 증폭시킨다. 이 과정에서 ‘의미의 세계’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사이버 공간은 그 넓어진 세계 중 하나일 뿐이다.

불수의(不隨意) 자율신경
이 팽창 중에 인공적 도구의 성과를 자연언어가 받아들이는 일도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시(詩) 같은 언어적 특이성은 결국 예술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소통 활동만이 줄 수 있던 감동을 특정 제약 조건하에서 언어로 동질적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망가지는 국어도 언젠가 미래의 시일지 모른다. 이런 말처럼 간편한, 아니 때론 그 이상의 편익을 제공하는 발화(發話)의 대체재로서 문자 기호가 자리잡을 수 있다면, 도구와 언어라는 인간의 2대 특질은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 기호를 처리하는 전자 도구로서 네트워크와 기호의 대명사 언어는 이미 밀월을 시작했고, 우리는 그 잉태물을 하나하나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웹, 그리고 이제는 소셜 네트워크.
언어가 지닌 의미의 보편성도 표현의 자의성도 이를 발휘하기 위한 수행을 견뎌낼 수 있는, 즉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대상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의 특권이던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다. 그런 보편성과 자의성이 매우 강력한 도구임을 알고 있었는지, 특권층은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언어의 일부 기능만 강화한다. 그것은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의 직접적 이동에 의한 명령 처리다. 정보란 언어 이전의 기호, 기호 이전의 그 무엇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정보를 처리하는 일이다.
근대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은 엄청난 발전을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지령 수신을 고도화하는 일에 불과했다. 이를 효율화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객체화할 수 있는 매스컴이 등장했고, 기계를 포함한 범통신망이 갖춰졌다.
다시 자연계에서의 생명 영위로 이야기를 돌려보면, 이보다는 바깥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정보, 혹은 여러 기관의 활동을 서로 조정하기 위한 수많은 미세 소통이 의식과 무관하게 이뤄짐을 알 수 있다. 생명은 이런 불수의(不隨意·의지나 의도와는 관계없이 나타나는 몸의 이상 움직임)의 자율신경이 지탱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산업사회에서 정보 소통이란 일부에 의한 단방향 지령일 뿐이라고 은연중에 여기며 살아왔다. 글을 쓰는 직업은 따로 있었고, 우리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제 모두에게 이런 기호 체계를 마음껏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속속 등장한다. 인터넷은 이 능력이 해방됐음을 증명했고, SMS·SNS의 성공은 언제 어디서나 문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모두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이 깨달음에 기인해 새로운 서비스가 범람한다. 누구나 장문의 블로그를 운영할 수는 없지만, 100여 자 끼적거리는 일은 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치 장문의 전자우편을 쓰는 일은 부담이 되지만, 문자 한 통은 가볍게 보낼 수 있듯이.
이 과정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정보에 대한 가치판단과 선택을 하게끔 한다. 세계의 민주화운동마다 이런 ‘문자’의 역할이 지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가치판단과 선택의 결과이자 전제조건이 바로 소통이기 때문이다. 기득권과 매스컴과 중앙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야말로 사회적 불수의 운동이 이 작은 조건에서 시작됐고, 언어를 지닌 생명체가 만든 소통 통로로서의 사회는 이제야 비로소 통합된 유기체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폰에 도착한 문자의 상당량은 카드 사용 내역이나 홍보물과 같이 기계가 보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네트워크로 보낸 수많은 문장은 검색엔진을 포함한 기계가 더 열심히 읽고 있다. 소통이라 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음성에 비해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호를 해석하게 할 수 있는 문자를 우리가 더 열심히 쓰기 시작한 이상, 정보의 전송·처리·축적이 가능해진 오늘날의 전자 네트워크가 우리 대신 소통을 시작하리라는 것도 예측할 수 있다.
인간은 폭발하는 정보량을 그대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지 못했다. 인간이 소외된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그래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또 데이터가 영겁의 축적과 윤회를 거치며 기계, 즉 적극적으로 차이를 승인하고 불확실성을 옹호할 줄 모르는 공평한 기계가 인간 대신 그 역할을 자처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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