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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어떻게 신화가 됐나
[COVER STORY] 암호화폐 전쟁- ② 창세기
[145호] 2022년 05월 01일 (일) 팀 바르츠 economyinsight@hani.co.kr

팀 바르츠 Tim Bartz
미하엘 브레허 Michael Brächer
우베 부제 Uwe Buse
하우케 구스 Hauke Goos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슈피겔> 기자

   
▲ 비트코인은 지금껏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암호화폐로 2009년 발행했다. 2022년 4월6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전시된 비트코인 자동지급기 모습. REUTERS

비트코인은 지금껏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암호화폐다. 2009년 발행했다. 엄격하게 규제되고 지구상 모든 정부가 주권 영역으로 간주하는 (화폐) 시장에서 비트코인은 디지털통화로서 성공했다. 블록체인이라고 부르는 디지털 장부 기술은 은행과 증권거래소뿐만 아니라 모든 중개자를 필요 없게 한다. 비트코인 코드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알고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의 무가치한 것의 한정된 공급
그래서 억만장자 투자자 존 폴슨의 (암호화폐가 가치 없다는) 비판은 대부분 맞지만 그렇다고 전부 옳은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은 ‘무가치한 것의 한정된 공급’이 아니라 ‘거의 무가치한 것의 한정된 공급’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디지털 희소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최초로 생성한 50개의 비트코인은 ‘제네시스 블록’(Genesis-Block)이라고 명명됐다. 제네시스는 성경 용어로 창세기를 뜻한다. 창조의 이야기다. 이 50개의 코인은 손대지 않은 원형이며 거래할 수 없다. 일부 비트코인 ​​신도는 이 상태를 “원죄 없는 잉태”라고 한다. 손대지 않은 제네시스 블록은 암호화폐 교회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카모토가 ‘채굴’한 다른 98만 개의 비트코인도 손대지 않았다. 현재 가격을 반영하면 그는 400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돈을 훔치지도, 위조하지도, 벌지도 않고 그냥 단순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다. 익명의 인물이 기술과 금융의 역사를 새로 쓰고, 수세기 동안 이어진 시스템을 전복하면서도 명성과 재산에 완전히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400억달러를 방치하는 것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는 경멸의 제스처이자 거대한 자유의 표현이다. 다만 나카모토가 액세스 데이터를 단순히 잊지 않았다는 것이 전제다.
나카모토는 누구인가? 그의 정체를 탐색하는 것은 지금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됐다. 전문가들은 9쪽으로 이뤄진 백서의 전문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는지 조사했다. 작성자는 영국식과 미국식 철자를 섞어 사용했다. 작성자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거나 복수의 작성자임을 시사한다. 나카모토는 이미 셰익스피어, 잭 리퍼만큼이나 신화적인 인물이 됐다.
디지털 세계의 뱅크시(Banksy·영국의 가명 미술가)가 된 그는 동시에 ‘빈 공간’이기도 하다. 비트코인 이전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사용한 전자우편은 추적할 수 없어 마치 그가 세계와 게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뉴스위크>는 2014년 ‘비트코인 뒤의 얼굴’이라는 표지 기사를 올리면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의 64살 남성 사진을 게재했다. 그러자 자취를 감췄던 나카모토가 나타나 <뉴스위크>가 보도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반박문을 올렸다. 곧바로 그는 다시 사라졌다.
나카모토는 일관되게 익명성을 유지했다. 그가 만든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전적으로 시스템 자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코드, 모두를 위해 공개적으로 기록된 거래에서 나와야 했다. 나카모토의 시스템은 정부의 권위도, 발명자의 권위도 필요하지 않다. 나카모토가 더는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추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당황해하면서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1년 4월에 그는 이제 다른 일에 눈을 돌릴 것이라고 썼다. 이후 그는 침묵했다.
“옛날에 로스 울브리히트라는 남자가 있었어.” 비트코인 동화는 이렇게 또 계속된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블록체인 혁명의 밝은 면이라면, 울브리히트는 어두운 면이다. 사실 범죄자들이 비트코인에 열광하지 않았다면 이 기술이 그렇게 빨리 대중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텍사스 출신 청년인 울브리히트는 2009년 중고책 온라인 판매점을 개설했다. 도서 판매 사이트가 실패하자 그는 ‘공포의 해적 로버츠’(Dread Pirate Roberts)라는 가명으로 실크로드(Silk Road)라는 이름의 다크넷, 블랙마켓을 열었다.
짧은 시간 내에 실크로드는 인터넷의 주요 마약거래처로 발전했다. 실크로드에서 받는 유일한 지급 수단이 바로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비트코인이다. 울브리히트는 거래마다 최대 10%의 수수료를 받았다. 이는 일차적으로 그를 부자로 만들었고, 이차적으로는 디지털 화폐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실크로드 사용자는 익명 유지에 관심이 많았기에 비트코인 거래와 암호화 자산용 디지털 지갑인 월릿 개설에 참여하려는 강한 동기가 있었다. 오늘날까지 범죄는 암호화폐 분야를 지탱하는 핵심 동인이고, 비트코인은 수많은 파생상품 및 후속 코인과 마찬가지로 지하세계의 주요 화폐 중 하나다. 지급이 상대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협박 같은 사업모델, 특히 암호화된 ‘트로이목마’(악성프로그램)를 활용해 기업을 협박하는 것이 대규모 현상이 됐다.
독일연방범죄수사청(BKA)의 사이버범죄부 책임자인 카르스텐 마이비르트는 최근 동향에 대해 “암호화폐가 없었다면 이런 공격이 빈번하고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요구액이 많이 증가했고, 그와 함께 랜섬웨어(시스템을 잠그거나 데이터를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뒤, 이를 인질로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프로그램) 범죄자가 벌어들이는 수익도 증가했다. 안할트-비터펠트 같은 지자체, 브렌타크(Brenntag) 같은 기업뿐만 아니라 병원도 피해를 봤다. 해커는 소유자가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악성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몰래 투입한다. 보통 피해액이 요구액보다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는 요구액을 지급한다. 게다가 범죄자는 러시아에 있는 경우가 많아 거의 체포가 불가능하다.
독일 수사청에는 블록체인 범죄 전문 수사관이 있다. 정보기술(IT) 전문가와 경찰이 긴밀하게 협력한다. 암호화폐 분야는 역동적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마이비르트는 “조사 방법의 지속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당 부처에서 거둔 성공 중 하나는, 2019년 당시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지하시장이던 ‘월스트리트 마켓’(Wall Street Market)의 운영자에 대한 타격이었다. 한때 이 플랫폼은 고객 115만 명을 보유한 5400개 이상의 판매자가 있었고 이들을 통해 대마초와 코카인, 메스암페타민이 전세계에 판매됐다. 수사관들은 구매자인 척하면서 세 명의 사업자를 식별해낼 수 있었다. 수사청은 결국 이들의 전자지갑에서 2257.3비트코인과 4884.7모네로를 압수했다. 이 사례는 일시적인 성공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다른 공급업자들이 신속하게 그들의 공백을 메웠고, 이들은 당국이 더는 형사범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암호화폐 결제 경로를 위장하겠다고 고객에게 약속했다.

   
▲ 다크넷 ‘실크로드’를 설립한 로스 울브리히트.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는 지금 감옥에서 비트코인의 승리 행진을 지켜보고 있다. 위키피디아

체포된 비트코인 선구자
로스 울브리히트는 감옥에서 비트코인의 승리 행진을 지켜보고 있다. 2013년 수사관들이 공공도서관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있던 그를 체포했을 때, 미 연방수사국(FBI)은 비트코인 12만7천 개를 확보했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실크로드에 수수료로 유입된 비트코인은 61만4천 개에 달했다. 2015년 울브리히트는 미국 법원에서 2회 연속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21년 6월에 녹취된 옥중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맛을 세계의 가장 먼 구석까지 전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사법시스템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Der Spiegel 2022년 제13호
Im Schleudergang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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