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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마땅치 않아 추상적 선언 그쳐
[ANALYSIS] 유럽연합(EU)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줄이기
[145호] 2022년 05월 01일 (일) 앙투안 드 라비냥 economyinsight@hani.co.kr

앙투안 드 라비냥 Antoine de Ravigna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해야 할까? 2022년 3월11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유럽연합 특별정상회담에서 27개 회원국은 모두 함구했다. 상황이 긴박한데도 말이다. 회담 뒤 선언문에서 “되도록 빨리 러시아산 천연가스, 원유, 석탄 의존도를 낮추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유럽연합 회원국과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전례 없는 제재를 하면서 러시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금도 원유와 천연가스 등 원자재를 다른 나라에 수출해 전쟁자금을 벌고 있다. 게다가 최근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러시아 경제의 돈줄이다. 연방 예산의 45%, 외화의 3분의 2를 화석연료 수출로 번다. 2020년엔 러시아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원유를 수출한 나라였다. 세계 원유 시장에서 약 10%가 러시아산이다. 천연가스 비중은 그보다 더 크다. 2020년 2390억루베(세계 수출량의 20%, 1루베=1㎥)를 수출해 세계 1위로 떠올랐다. 이 두 연료의 수입을 중단하는 즉시 러시아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실천할 나라는 거의 없다. 자국 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중단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뿐이다. 애초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낮은 이들 나라에는 상징적 조치에 가깝다.

원유와 천연가스의 차이
유럽연합이 러시아 에너지 제재에 동참하면 상황이 달라질까? 유럽연합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원유와 천연가스는 러시아산이 각각 27%, 41%를 차지한다(2019년 기준). 유럽연합이 러시아 원유 수입을 당장 멈춘다고 해도 기대한 만큼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원유 시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원유를 선박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갈 때도 원유는 운반선으로 나른다. 유럽이 사지 않은 러시아 원유는 다른 나라에 팔릴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센터 에너데이터(Enerdata)의 연구코디네이터인 모건 크레네스는 “역으로 러시아 원유를 새로 수입한 나라에서 사지 않은 원유는 유럽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새 거래처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조정 과정에서 지금처럼 원유 가격이 일시적이나마 크게 오를 것이다. 물리적 생산량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로 러시아보다 유럽연합이 (가격 인상에 따른) 피해를 더 크게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유럽을 대체할 시장을 금방 찾을 수 있고, 원유 가격 상승으로 손해를 만회할 것이다. 원유 수입 중단은 유럽연합이 되도록 빨리 해결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다만 그것은 기후와 에너지 자립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유럽연합에서 쓰는 에너지의 36%가 원유다. 러시아의 다른 주요 수출품인 석탄에도 원유와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천연가스는 다르다. 천연가스는 유럽연합 전체 소비 에너지의 22%를 차지한다. 유럽연합의 천연가스 수입 중단은 기후와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천연가스의 90%가 외국산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러시아를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러시아가 수출하는 천연가스의 3분의 2를 유럽연합이 산다. 파이프라인으로 보내는 천연가스는 선박으로 실어 나르는 원유와 달리 대체 시장을 찾기 어렵다. 천연가스 운송시설은 단기간에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천연가스 금수 조치는 러시아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 천연가스의 공급이 끊기면 유럽연합이 받을 충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유럽연합이 최근 5년간 러시아에서 수입한 천연가스는 연평균 1550억㎥(전체 소비 에너지양의 9%)에 이른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전체 소비 에너지양의 10%)과 맞먹는다. 원유에 견줘 해상으로 나르는 천연가스의 양이 많지 않다.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은 2011년 10%에서 2020년 20%로 늘었지만 여전히 너무 작다.

   
▲ 독일 서부 레덴에 있는 러시아 가스프롬 자회사 아스토라의 천연가스 저장소. 독일은 천연가스 소비량의 50% 가까이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REUTERS

서로 다른 의존도
천연가스는 파이프라인으로 옮겨야 하는 물리적 한계로 공급원을 여럿 두기가 어렵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저마다 다르게 대응했다. LNG 수입에 필요한 기반시설(LNG터미널, LNG재기화시스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 스페인은 전체 천연가스의 60%를 LNG 형태로 수입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전체 수입량의 9%밖에 되지 않는다. 포르투갈도 각각 90%, 2%로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매우 낮다.
프랑스는 37%(LNG)와 20%(러시아산)로, 두 나라에 견줘 러시아산을 많이 수입하는 편이다. 독일·이탈리아와 같이 유럽 대륙 동·중부에 있는 나라는 러시아 의존도가 훨씬 높다. 2019년 기준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는 각각 460억㎥, 330억㎥를 수입했다. 두 나라 모두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50%에 가깝다. 이탈리아는 다른 회원국에 견줘 LNG 기반시설이 적다(전체 수입량의 20%가 LNG). LNG를 들여오고 다시 기체로 만드는 데 필요한 LNG재기화시스템이 아예 없는 독일은 최근에야 이 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과 영국에 규모가 큰 LNG재기화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과 영국에 있는 시설로 유럽의 연간 LNG 소비량(2019년 기준 1050억㎥)보다 두 배 많은 2080억㎥를 재기화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로 유럽연합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더욱 심해졌다. 연평균 수입량이 크림반도 합병 전 5년간 1230억㎥에서 이후 5년간 1570억㎥로 늘었다.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의 카롤 마티외 연구원은 “유럽연합이 유럽 대륙의 서부와 동부(LNG터미널이 있는 항만 지역에서 중부 내륙까지)를 횡단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면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수십억유로가 필요하다. “문제는 늘 그렇듯 누가 비용을 대느냐”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에나가스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스페인은 전체 천연가스의 60%를 LNG 형태로 수입해 러시아 의존도가 9%밖에 되지 않는다. REUTERS

정치적 선택
유럽연합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면 전반적으로 경기가 위축될 것이다. 회원국마다 피해 규모가 다르더라도 말이다. 독일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지만 금수의 충격을 감당할 여력이 있다. 독일 IFO경제연구소가 러시아 에너지 수입 중단에 따른 경제적 여파를 전망한 자료를 보면, 금수 조치가 장기적으로 독일 경제에 이득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은 0.5~3%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0년 독일 GDP는 4.5% 감소했다.
러시아 에너지 금수의 충격을 완화하려면 유럽연합 차원의 연대와 각 회원국 국민의 연대가 필요하다. 어느 나라도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베르사유 정상회담에서 “되도록 빨리”처럼 모호한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1년 뒤 겨울 난방용으로 쓸 1500억~1600억㎥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여유가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연합이 러시아가 아닌 나라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물량은 LNG 200억㎥를 포함해 300억㎥밖에 되지 않는다. 재생가능 전력 생산시설을 ‘건설계획 심사과정 없이 자동승인하는’ 조건으로 늘린다고 했을 때 대체할 수 있는 천연가스의 양은 60억㎥다(유럽연합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 4천억㎥ 가운데 1200억㎥는 전력 생산에 쓰인다).
여기에 더해, 원자력 전력 생산량을 최대치로 올리고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면 130억㎥를 대신할 수 있다. 소비 단계에서 일반 가정과 산업시설의 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 시스템으로 바꿔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 연간 20억㎥의 천연가스를 아낄 수 있다. 주택에서 보일러 온도를 1℃ 낮추면 100억㎥가 더 절약된다.
이 모든 방안을 어떻게든 실현한다고 해도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다른 나라에서 원유·석탄을 수입(가격 인상과 탄소배출 문제가 생긴다)해야 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어도 유럽연합은 당장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에너지 절약을 실천할 수 있다. 이는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화석연료를 더는 수입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어느 정부도 나서서 실천하지 않는다. 망설이는 사이 전력과 원유의 가격은 계속 오른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 손실이 크고 사회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길을 택했다. 전기요금 동결과 원유가격 리터(ℓ)당 15상팀(약 201원) 인하가 그것이다. 그 대신 정부는 저소득가정에 난방료를 지원하고,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110㎞로 낮추고, 행정기관 승인을 기다리는 풍력·태양광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해야 했다. 모두 대선을 앞두고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다. 하지만 그런 결단 없이 베르사유에서 정한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 낮추기 목표는 공허한 약속이 될 것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2년 4월호(제422호)
Peut-on se passer du gaz russe?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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