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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 인플레이션 그리고 경직성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45호] 2022년 05월 01일 (일) 조계완 kyewan@hani.co.kr

<한겨레> 기자

   
▲ 2022년 3월 외식물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식당가.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방전요속(放箭要速)과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 둘 다 전통 활쏘기 비법에 흔히 전해오는 말이다. ‘방전요속’은 뒷손이 화살 놓는 순간을 앞손이 알지 못할 정도로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신속하게 쏴야 한다는 뜻이고, ‘전추태산 발여호미’는 활을 쥔 앞손은 거대하고 웅장한 태산을 밀듯이 묵묵히 앞으로 밀고 팽팽하게 당긴 시위를 놓을 때는 호랑이가 꼬리를 떨치듯 부드럽게 말아 쏴야 한다는 뜻이다. 둘 다 21세기 기업의 사업과 투자에 영감을 주는 금언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2011)에서 신궁의 활 안쪽에 새겨진 ‘전추태산 발여호미’는 부드러움이 요체라고 설파한다. 방전요속은 “먼저 쏘고 나서 겨누어라”고 빠른 속도를 주창한다. 혁신이 들끓고 신제품 주기가 극도로 짧게 요동치는 경쟁시장에선 기회를 엿보고 확인하면서 계속 조준하는 ‘신중한 계획·분석·조사’보다는, 조준은 과감히 건너뛰거나 나중에 하고 지금 당장 민첩하게 발사·실행부터 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너무 오래 목표 조준에 몰두하다보면 오히려 근육이 경직되고 호흡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말하자면 두 금언 모두 부드러움, 즉 ‘유연성’을 비법으로 전수한다.
인플레이션 현상이 미국과 유럽 등 세계경제 곳곳을 휩쓸고 있다. 코로나19발 글로벌 가치사슬 공급망 균열이 촉발하고,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 기대감과 글로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각국의 정책·제도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복합 작용해 수많은 상품 가격이 동시 상승 중이다. 거시적 총수요·총공급과 개별 생산자·소비자의 미시적 생산·수요를 중앙에서 계획·명령하는 자가 없는, 일종의 ‘시장 무정부 상태’인 자본주의경제는 주기적으로 나타나 괴롭히는 경기순환과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인플레이션도 통화량, 수요-공급, 기술 등 어떤 내·외부 충격에서 오는 것이든 만성적 질병이었다. 지속적인 물가상승은 자본·노동 그리고 상품들의 상대가격 체계를 혼란시켜 경기변동과 순환을 일으킨다. 1960년대 이래 수십 년 동안 전세계 중앙은행과 경제기획 당국의 과업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었다. 경기안정화 정책은 곧 물가안정 정책을 의미했다.
경제가 변동할 때 ‘가격’이 즉각 유연하게 조정되는 메커니즘이 신고전파경제학의 이론세계라면, 케인스경제학의 단기 현실세계에서 가격은 경직적이어서 쉽게 조정이 어렵고 대신 ‘수량’이 조정된다. 즉 생산량의 과잉과 과소가 일어나고, 노동가격(명목임금)은 특히 경직적이라서 수량 변동에 따른 ‘불균형 실업’이 일어난다. 물론 장기에는 물가 수준에 따라 임금 등 가격이 신축적으로 조정된다.
만약 경제 내 모든 상품·자본·노동·통화 가격(물가·이자·임금·환율)이 경제변수 변동에 유연하고 신축적으로 오르내리는 경이로운 세상이라면 인플레이션도 ‘질병’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부닥치며 살아가는 현실 경제는 항상 경직성이 문제되는 세상이다. 각 경제주체가 장·단기 물가변동에 ‘정확하고 일치된 기대’를 형성해 대응이 어렵다. 특히 인플레이션은 실질구매력과 실질임금 등 ‘실질 가치’의 변동을 둘러싸고 종종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방식으로 사회집단 간에 다양한 재분배 결과를 낳는다. 채권·주식 등 자산을 많이 가진 기득권 부유층과 기업가들이 왜 그토록 인플레이션을 “가장 나쁜 경제적 질병”이라고 우려하며 20세기 내내 경기안정화에 집착했는지 우리는 안다. 요컨대 활쏘기와 인플레이션 모두 신축적 유연성과 경직성의 문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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