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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고 상처받기 쉬운’ 민주주의 약속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44호] 2022년 04월 01일 (금) 조계완 kyewan@hani.co.kr

<한겨레> 기자 

   
▲ 2022년 3월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소에서 개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은 항상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쉽다. 연합뉴스

0.73% 차이. 격렬했던 제20대 대통령선거는 거의 대등한, 무승부에 가까운 미세한 표 차로 승리와 패배가 결정됐다. 24만7077표 차이로 한 후보는 국가를 통치하는 모든 권력을 독점했고, 다른 후보는 아무런 권한도 갖지 못했다. 민주적 합의로 마련한 선거 제도·법률에 누구나 순응해야 하지만, 민주주의 선거 원리의 위력과 동시에 정서적 측면에서는 일종의 불합리성도 함께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민주주의는 반대를 전제로 하는 정치체제이다. 경쟁의 법칙에만 동의할 것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의 동의가 아니라 반대·경쟁·논쟁이 존재하는 정치체제”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그 갈등을 처리하고 사회집단 간의 투쟁을 종결시킨다. 정치경제학자 아담 셰보르스키도 “민주주의는 투쟁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체제지만 명백한 규율에 따라 특수한 방식으로, 종종 특정한 기간 내에 종결짓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거 민주주의는 어쩌면 허약한 제도다.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은 항상 깨지기 쉽고, 비난받기 쉽고, 상처받기 쉽다.” 민주주의는 계급·집단 이익을 대표하고, 가치·의견이 다른 많은 정당이 규칙으로 확립된 경쟁을 하는 체제로, 정당과 정부는 선거에서 주기적으로 패배하고 또 승리한다. 이 시한부적 정부라는 말은 갈등이 끝내 해결되지 않고 일시 종결·정지된다는 뜻이다.
누구나 1인 1표로 동등한 비중을 지닌 민주주의에서 개인과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 이익 보호를 ‘정치적 대표’에게 위임하는 민주주의는 정치경제적 ‘자유’와 ‘평등’이 근본적인 긴장을 이룬다. 근대 이후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이냐는 모든 문제는 자유와 평등 사이의 대립 관계를 푸는 게 근본 과제였다. 역설적이게도 평등의 가장 위대한 적은 자유였고, 자유의 적은 평등이었다. 특히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은 ‘매우 어려운 조합’이다. 0.73%는 이 둘의 싸움과 열망이 얼마나 사납고 격정적으로 벌어졌는지 보여준다.
물론 민주주의가 자유사회(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더 잘 작동한다는 사실은 20세기 각국의 역사적 경험이 가르쳐준 흔들림 없는 믿음이다. 오직 자유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치권력을 주고받는 투쟁의 과정만이 사회 생산물이 소수 권력자의 손에 축적되거나 독점되지 않도록 해준다. 언제든 패배하고 교체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 선거 원리 자체가 ‘또 다른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인간의 권력을 제도적으로 견제한다.
어떤 개인과 집단에는 민주주의가 반복적으로, 또 불가피하게 실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그들에게 민주적 선거 원리는 위압적인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장관이 아니다. 패자는 “내가 부족한 0.7%를 못 채워서 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분루를 삼킨 사람들은 울분과 열패감으로 얼룩진 정치적 일상생활을 보내기도 한다.
다만 결함을 고쳐 더 훌륭하고 좋은 민주주의를 고안하기 전까지는, 경제학의 경계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한 앤서니 다운스의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다. “오직 민주주의 체제에서만 시민은 피를 흘리지 않고 정부를 갈아 치울 수 있다. 빈번하게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던 민주주의의 형식적 규칙들은 사회적 갈등을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해결하는 공존의 기법을 선보였다. 이런 규칙이 존중되는 곳에서, 적대자는 전멸돼야 할 원수가 아니라 내일은 우리 자리를 대신하게 될지 모를 반대자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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