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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어떻게 자본이 됐나?
[미술로 보는 자본주의] 연재를 시작하며
[143호] 2022년 03월 01일 (화) 이승현 shl219@hanmail.net

이승현 전시기획자

   
▲ 오늘날 같은 형태의 미술 상품 생산과 미술시장은 세계 최초로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처음 나타났다. 이 나라 수도 암스테르담에 있는 증권거래소 모습. REUTERS

미술품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예술을 모독하는 천박한 행위라는 통념과 달리, 오늘날 미술시장은 자본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다. 일반 대중은 사실상 난해한 현대미술을 평가하기 어려우며 가격을 통해 가치를 짐작하기 때문에 자본은 미술품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미술과 자본의 긴밀한 관계가 애초에 자본시장과 미술시장이 동시에 탄생해서 함께 발전한 오랜 인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네덜란드 증권거래소에서 첫 등장
오늘날 같은 형태의 미술 상품 생산과 미술시장은 세계 최초로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처음 나타났다. 인도와 아시아까지 교역 범위를 확장했던 동인도회사의 상선들은 사업을 위해 과거보다 더 많은 자금이 더 오랫동안 필요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오늘날 중앙은행의 효시가 되는 네덜란드은행을 설립해서 아무런 비용 없이 보관증서를 발행해주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변 국가의 유휴자금을 대거 유치했고, 증권거래소를 설립해서 장기투자에 따르는 유동성 문제도 해결했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장거리 교역을 독점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게다가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의 수익은 회사의 주주인 시민들에게 고루 배분됐고, 부르주아 시민들의 자치국가이던 네덜란드에서 대다수 시민은 과거 교회나 왕과 귀족의 전유물인 미술품을 집집이 몇 점씩 소장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를 확보했다. 이처럼 수요가 많아지면서 주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미술작품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정물화·풍경화 등 특정 장르만을 그리는 전문화가가 등장했고, 이들에 의해 상품으로서 미술작품의 제작과 이를 판매하는 유통시장이 형성됐다.
이와 같은 미술품의 풍부한 수요는 렘브란트나 페르메이르, 프란스 할스 등 위대한 화가들을 길러냈다. 이처럼 최초의 증권거래소와 최초의 미술시장이 17세기 부르주아들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함께 나타났고, 그 시기에 네덜란드 미술이 최고의 화가들을 배출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자본시장과 미술시장의 관계, 그리고 자본과 미술의 관계가 긴밀함을 증명한다.
시민공화국이던 네덜란드에서 자본주의와 미술시장의 맹아가 싹텄다면, 본격적인 부르주아의 시대는 산업혁명과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근대의 두 제도가 완성된 19세기에 도래했다. 산업혁명이 늦었던 프랑스에서 19세기 초중반 미술품 거래를 취급한 곳은 전문갤러리가 아니라 미술재료를 파는 재료상이나 판화를 제작하는 인쇄업자 등이었다. 잉여자본 축적이 충분치 않고 미술품 거래액도 변변치 못한 상황에서 본격적인 자본투자가 이뤄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미술관 규모의 크고 화려한 갤러리가 등장하고 자본가와의 연계를 통해 특정 작가의 작품을 매집하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일부 화상의 이런 거대자본을 중심으로 각국 대사들, 거대 부호 컬렉터들, 유럽의 주요 미술관 관장들을 연계하는 서구 최상위 부르주아의 사교 모임이 형성됐다. 이들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당시 부상하던 미국과 독일의 신흥 부르주아의 구매력을 흡수한 것은 미술품 거래 규모의 급격한 확대와 더불어 오늘날 미술시장의 구축을 가능케 했다. 사실상 인상주의 이후 모더니즘의 다양한 사조가 만개한 것은 미술시장 발달에 힘입었다.
2021년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로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임을 공인받았고, 국제갤러리의 경우 세계 미술시장에서 메이저급으로 대우받을 정도로 자본력과 영향력을 키웠다. 자본시장과 미술시장이 긴밀하고 자본력과 미술의 발전이 밀접했던 서구 사례를 놓고 볼 때, 이쯤이면 한국 미술의 세계적인 위상 역시 제법 높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최근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와 실험미술에 대한 서구의 관심에 고무돼 있다. 이들 작가가 서구 현대미술을 도입해서 한국 현대미술사에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는 학술적 평가를 기반으로 서구의 메이저 갤러리들이 앞다퉈 주요 작가들을 전속하면서 작품 가격이 단숨에 수억원대로 올랐다. 그런데 막상 서구 갤러리에서 이들 작가의 작품을 사는 구매자의 대부분은 한국 컬렉터다. 우리 자본이 우리 작가의 작품을 사는데 유통마진은 우리 갤러리가 아닌 서구 메이저 갤러리가 챙긴다. 이뿐 아니라 메이저 갤러리들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며 거래관계를 튼 한국 컬렉터들에게 고가의 서구 작가 작품을 판매한다.
외견상 한국은 지금 자본시장과 미술시장의 성장이 서구처럼 함께 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미술시장의 양적 성장은 주로 몇몇 고가의 작가와 서구 미술품의 거래로 이뤄진다. 미술시장에 공급된 자본이 우리 미술시장 내에서 우리 작가의 지원으로 선순환되는 것이 아니라, 고가의 우리 작품이건 서구 작품이건 우리 미술시장을 통해 국외로 유출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술시장의 양적 성장은 17세기 네덜란드처럼 자국 미술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다.

미술과 자본의 긴밀한 상호작용
사실상 1990년 이후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부유층은 한국 미술작품보다 서구 미술작품을 주로 사들였고, 한국은 서구 미술의 주요한 수입처였다. 마치 19세기 말 급성장한 미국과 독일의 자본가들이 프랑스 귀족문화를 즐기기 위해 프랑스 미술품을 사 모았듯이 그동안 우리 부유층은 서구의 주류 미술을 사들였다. 그 덕분에 세계경제 성장에 따른 서구 미술품 가격 상승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자본은 근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한다. 자본력이 약할 때는 더 큰 자본이 만든 그들의 미술시장에 동참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자본력이 우월하다면 직접 우리의 미술시장을 일궈서 더 큰 이윤을 취할 수 있다. 우리 미술의 성장은 우리 자본의 관심과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며, 자본은 우리 미술을 키워야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윈윈이 가능하려면 자본은 미술을 이해하고 미술은 자본을 알아야 한다.

*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7년을 다니다 작은 금융자문회사를 차렸다. ‘선진’ 금융을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혼자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호텔에서 2주가량 지낼 정도로 미술에 미쳐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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