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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박육아’ 고통 없는 부모양육 시스템
[핀란드 복지국가 산책]
[141호] 2022년 01월 01일 (토) 신소영 soyoung.fin@gmail.com

신소영 자유기고가

   
▲ 핀란드에서는 엄마가 출산 예정일 30~50일 전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갈 수 있다. 아빠는 아빠휴가를 9주 동안 쓸 수 있는데 그중 18일을 엄마의 출산휴가와 동시에 쓸 수 있다. 헬싱키 중앙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방문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책을 읽고 있다. REUTERS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직장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의 동료 B는 아내가 여름에 출산을 앞둔 상태였다. 그런데 B가 여름휴가 8주와 ‘아빠휴가’를 연달아 쓰겠다고 하는 바람에 같이 진행하던 실험이 몇 달 동안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덩달아 동료 H 역시 비슷한 시기에 아내가 출산할 예정이라서 그마저 휴직하고 나면 실험실이 텅 비게 생겼다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편은 동료들을 일할 의욕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핀란드라는 나라가 삶을 너무 편하게 해줘서 그렇다며 안 그래도 일 처리가 느린 사람들인데 차라리 혼자 일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B나 H나 법에서 정한 자신의 권리를 쓰겠다는데 누가 나서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상사도 뭐라 말을 안 하는데 말이다.

출산휴가와 부모휴가에 더해 육아휴직
핀란드에서는 엄마가 출산 예정일 30~50일 전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갈 수 있다. 아빠는 아빠휴가를 9주 동안 쓸 수 있는데 그중 18일을 엄마의 출산휴가와 동시에 쓸 수 있다. 부모휴가는 엄마 아빠 중 누구나 쓸 수 있고 158일이 주어진다. 부모휴가 이후에는 육아휴직을 3년 동안 쓸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각종 휴가와 휴직 이후 엄마 아빠가 직장에 돌아가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법에 정한 것은 한국이나 핀란드나 마찬가지다.
필자의 남편은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필자가 복귀해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혼자서는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도 아니었다. 남편은 대학교 연구원이어서 시간 활용이 다른 직종에 비해 자유로웠다. 아마 B와 H도 그렇기 때문에 아빠휴가와 여름휴가를 연달아 사용하겠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8시간을 근무해야 하는 남편은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출근했다가 8시간을 채우고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아침 6시30분에 집을 나서는 남편은 7시에 사무실에 도착해 오후 3시면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남편의 직장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어 각자 도시락으로 해결하거나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해결했다. 대신 오전 오후 한 번씩 ‘커피 브레이크’가 있다. 주로 이 시간에 동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그러나 내 남편은 근면성실한 한국 사람의 기질을 발휘해 10시간을 근무하고서 오후 6시가 다 돼야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는 필자를 생각해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기도 했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4시에는 집에 들어와 같이 아이를 보고 산책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많은 직장인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기에, 이른 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이 정도의 시스템도 필자에게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둘째가 생긴 뒤로, 남편은 아침 7시40분쯤 집을 나서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 뒤 간단하게 운동하고 오후 5시면 집에 들어왔다. 퇴근 뒤에는 둘째를 목욕시키고 함께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고 아이와 놀아주는 것으로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
이렇게 여유로운 핀란드 근무 환경에서도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이는 9개월 이후 어린이집에 등록할 수 있는데, 엄마가 일찍 복직해야 하거나 공부하기를 원하면 남은 기간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를 돌보기도 한다. 남편의 동료 B가 넉 달 동안 자리를 비워도, 심지어 H와 휴직 기간이 겹쳐도 그것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굳이 여름휴가와 아빠휴가를 연달아 쓰면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중단시켜야 했을까’ 생각하더라도 그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다.
개인의 처지에선 법에서 정한 자신의 휴가를 사용할 뿐이고 그것을 언제 쓰느냐는 각자의 상황에 따르기 때문에 직장에서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물론 휴직 기간만큼 생기는 동료들과의 격차라든가, 그때 이뤄지는 직장에서의 평가가 걱정돼 개인적으로 휴가 쓰는 것을 꺼릴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아빠휴가를 쓰는 비율은 80%, 부모휴가를 쓰는 비율이 50%를 넘는다. 그런데도 핀란드에서는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을 높이기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조정하고 부모 사이에 휴직 기간을 양도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는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다.
핀란드의 근무환경과 육아휴직 사례는 정해진 연차를 다 소진하지도 못하는 한국 사회에선 꿈같은 일이다. 필자도 워킹맘들이 야근을 안 하거나 회식에서 빠질 때 듣는 험담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집안일과 아이 때문에 회사일에 빠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핑계에 불과했다. 일을 완수해야 능력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동료 아빠들은 일에 치여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남의 손에 맡기는 게 현실이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
한국 사회에선 아직도 직장에서 보여야 하는 헌신과 과도한 충성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기란 누군가의 ‘독박육아’가 있어야 하거나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수밖에 없다. 행복하게 살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인데 오히려 일에 자신을 불태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니. 직장생활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는 어디에 미뤄둘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우리도 직장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을 더 고심해야 하지 않을까. 핀란드처럼 남녀가 동등하게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직종 간 육아휴직 사용 편차도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삶의 중심이 가정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한국에서 법조 전문지 기자로 일하던 중 핀란드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 낯선 땅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만 6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이력을 살려 간간이 핀란드의 정치·교육·문화 뉴스와 한인 동포 소식을 고국에 전하는 YTN 핀란드 해외리포터로 활동했다. 더불어 국내의 한 장애인권단체가 발간하는 월간지에 핀란드 장애인 관련 복지제도를 소개했다. 최근 고국에 돌아와 핀란드에서 겪은 출산·육아 경험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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