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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CULTURE & BIZ] ‘오징어 게임’ 초대박이 남긴 것
[140호] 2021년 12월 01일 (수)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2021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특별행사에 참석한 주연 배우 이정재, 정호연, 황동혁 감독, 배우 박해수(왼쪽부터)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2021년 대한민국 콘텐츠산업에 경사가 많았다.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다. 9월17일 첫 공개 이후 17일 만에 1억1100만 유료가입 가구가 시청했다. 넷플리스는 한 달 뒤 이 드라마가 역대 가장 많은 시청 가구 수를 기록한 콘텐츠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오징어 게임>의 기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9월30일~10월1일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모든 나라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작품으로도 공인됐다. 특히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모든 장르를 총망라한 종합 순위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개별 순위에서 1위에 오른 한국산 콘텐츠는 지금까지 여럿 있었지만 모든 나라, 모든 장르에서 1위는 넷플릭스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이다.

넷플릭스 구원 투수
이렇게 대단한 기록을 낳은 콘텐츠답게 <오징어 게임>은 공개 직후부터 많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재미있었던 것은 드라마에서 내걸린 상금 456억원이 도대체 달러로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사람들의 검색이 몰린 사실이다. 구글트렌드에 따르면 드라마 공개 직후 원화 환율 검색량이 폭발적으로 늘어 원화가 세계 두 번째로 많이 검색된 통화로 기록됐다고 한다.
이 드라마의 파급력은 숫자로도 입증된다. 넷플릭스의 2021년 3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3분기 유료가입자만 438만 명에 이른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이 수치는 3분기 후반까지의 기록이다. 3분기 막바지에 공개된 이 드라마의 열기가 반영되는 4분기에는 신규 가입자가 800만~1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11월까지도 <오징어 게임>은 주요 국가에서 순위에 올라 있다. 이런 소식에 넷플릭스 주가는 다른 거대 기술기업의 하락세와 달리 홀로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얻은 직간접 수익이 8억9100만달러(약 1조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드라마 특수를 누린 것은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2021년 핼러윈에 <오징어 게임>은 새로운 주제로 주목받았다. 아마존과 월마트는 핼러윈 의상으로 이 드라마에 나온 분홍 옷이나 녹색 체육복을 발 빠르게 내놓았다. 이번 핼러윈에서 사람들이 하나만 고르는 ‘원픽’은 <오징어 게임>이 될 것이라던 현지의 반응도 재미있다.
이번처럼 콘텐츠 하나의 성공이 전체 시장을 흔든 게 처음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이 유독 더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들여 최고의 성과를 낸 ‘가성비 갑’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평균 제작비는 회당 22억원 안팎, 2140만달러(약 254억원) 정도 든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크라운> 시즌1에 회당 1300만달러, 같은 해 만든 <기묘한 이야기>에도 회당 1200만달러가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더 크라운> 에피소드 2개를 제작하는 예산으로 <오징어 게임>이 훨씬 많은 수익과 파급효과를 낳았다. 숫자에 민감한 시장이 넷플릭스 주가를 포함한 성장세에 긍정적 예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OTT 시장 다크호스
많은 국외 언론이 공개 당시 한국의 이름 모를 배우와 감독이 만든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흥행에 크게 성공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최근 미국의 한 행사에 초청된 이정재 배우를 비롯한 출연자와 제작진이 현지 언론과 팬들의 엄청난 관심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은 기사가 화제가 됐다. 드라마가 성공하기 전까지 현지에서 인지도가 별로 없던 한국 배우들이 일약 글로벌 스타로 등극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붕괴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들렸던 영화계에선 <기생충>의 아카데미수상보다 더 기뻐하는 분위기다. 드라마 제작진이 대부분 영화계 인물이기 때문이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활로를 찾던 영화인에게 <오징어 게임>의 흥행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넘어 실제로 자금과 인력이 집중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확실히 투자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에 회의적이던 투자자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선다.” 몇몇 제작자는 팬데믹 기간 침체됐다가 반전되고 있는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또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그 자체로도 최근 혼란 양상을 보이는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얼마 전까지 넷플릭스의 아성을 위협하던 새로운 경쟁자 디즈니다. 현지 SNS와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디즈니 주력 프랜차이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유명 작품을 뛰어넘는 수익률을 올린 이 한국산 콘텐츠가 ‘블록버스터 IP’를 전면에 내세운 디즈니에 크게 ‘한 방’ 먹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세계시장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오징어 게임>은 당연히 한국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도 큰 화두를 던졌다.

   
▲ 2021년 10월31일 세계적 흥행을 거둔 <오징어 게임> 출연자들의 복장을 한 홍콩 시민들이 핼러윈 축제를 즐기고 있다. REUTERS

국내 업계의 한계
일각에는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넷플릭스 성장세가 두드러질수록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의 넷플릭스 종속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으로 넷플릭스가 어마어마한 금전적 수익을 얻었지만, 국내 제작사가 번 돈은 미미한 데 분노를 터뜨린 언론도 있다. 여론을 의식한 듯 처음에는 ‘초기 계약대로’라고 하던 넷플릭스가 ‘추가 보상’을 암시했지만, 넷플릭스가 한국 문화콘텐츠 생태계를 위협할 ‘외래종’임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업계는 어떨까? 업계에서도 눈초리가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넷플릭스라는 ‘메기’의 출현으로 일부 기득권 세력이 지배하는 한국 콘텐츠산업의 관행이 크게 달라지리라는 데는 동의한다. 몇몇 배급사가 영화 배급망을 통해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독점적 압력과 일부 방송사가 자원을 선점하다시피 한 제작 환경에 따른 폐해는 없었을까.
어떤 제작자도 없었다고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오징어 게임>이 한국의 지상파방송에서 제작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에는 많은 사람이 ‘기존 한국 콘텐츠 시장 환경에서는 이런 작품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에 동조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도 언론 인터뷰에서 케이블이나 지상파에 내놓기도 어려워 오직 넷플릭스만 가능한 작품이라는 취지의 소감을 밝혔다.
물론 이 드라마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흥행이 단지 드라마 시리즈 하나가 세계적인 흥행 대박을 거둔 것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고 제작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외면해왔던 제작 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기회라는 것이다.
유례없는 ‘저성장 시대’에 콘텐츠는 몇 안 되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돼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름 없던 감독도, 대학생도, 평범한 주부도 창작 아이디어만 갖고 있으면 인정받고 콘텐츠를 만들어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콘텐츠산업이다. 지금까지 콘텐츠산업에는 불필요한 관행과 기득권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했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1930년대 할리우드는 대형 제작사가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제작부터 인력, 자본, 유통, 배급까지 영화산업의 모든 것을 독점했다. 물론 ‘할리우드의 황금기’로 불린 이 시기에 영화사에 길이 남는 대작이 많이 쏟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폐해도 만만치 않았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현재 한국 콘텐츠산업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다른 기득권?
일부에서 제기하듯이 넷플릭스가 또 다른 기득권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OTT 시장의 재미있는 점은 콘텐츠로 사용자를 늘릴 수도 있지만, 경쟁사의 킬러 콘텐츠 때문에 사용자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콘텐츠 내용만으로 싸워야 하는 이 시장에서는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갑’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제작자에게 불리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작자들은 말한다. <오징어 게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세계에 먹히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한국 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유행처럼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2020년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이미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국외 필름 마켓이나 TV 견본 시장 등에서 한국산 콘텐츠가 홀대받는 일이 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몸이 들썩이지 않는 제작자가 있을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오징어 게임>에 버금가는 한국산 콘텐츠를 조만간 만날 수 있고, 그 콘텐츠의 제작자가 본인이면 더 좋겠다는, 그런 꿈을 하나씩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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