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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깨어나는 판도라의 상자
[FUTURE] 선사시대 바이러스
[139호] 2021년 11월 01일 (월) 피올라 킬 economyinsight@hani.co.kr

동토층 빙하가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면서 수천에서 수만 년 전의 선사시대 미생물이 출현하고 있다. 이 유기체 중 어떤 것이 인류의 생명을 구할지, 아니면 인류를 공멸케 할 위협이 될지 알 수 없다. 바야흐로 선사시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인가.

피올라 킬 Viola Kiel <슈피겔> 기자

   
▲ 북극 영구동토층이 녹아 탄저균 병원체 등 위험한 미생물이 발견되면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노르웨이 북쪽에 있는 빙하섬 모습. REUTERS

베아트 프라이(59)는 알프제 호숫가에서 이미 목적지를 볼 수 있었다. 그의 목적지는 만년설의 회색 띠 부분이었다. 미생물학자인 그는 동료 세 명과 함께 오르막을 올라 좁은 길을 통과했다. 산양을 만나기도 했고 암석 조각이 모여 있는 곳도 지났다. 마침내 드넓은 설원에 도착했다. 희미하게 딸각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연구원들은 머리를 산비탈 쪽으로 돌려 소리가 커지는지 확인해야 했다. 만일 낙석이 생긴다면 현장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가야 한다. 알프스 빙하가 녹으면서 낙석의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은 빙하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있는가’뿐만 아니라, 그 유기체의 기능과 가능성을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 염기서열을 연구한다. 네덜란드 과학자가 연구를 위해 지구온난화로 녹은 빙하의 동굴에 들어가고 있다. REUTERS

미지의 미생물을 품은 빙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 다마 빙하는 계곡 아래쪽으로 100m 정도 더 길게 뻗어 있었다. 그을린 갈색 피부에 마른 체형을 지닌 프라이는 심각하게 태양을 바라봤다. “연구원으로서 녹아내리는 빙하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지만, 사회 일원으로서 빙하가 녹는 건 슬픈 일이다.” 5천여 년 전, 동쪽으로 몇 개의 산봉우리와 계곡을 지난 곳에서 우리에게 ‘외치’라고 알려진 남성이 어깨에 화살을 맞고 얼음 미라가 됐다. 그때도 스위스 우리(Uri)주의 빙하는 지금의 암석지대까지 펼쳐져 있었다.
프라이는 얼음 갑옷이 지구 표면에서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얼음 속에 숨겨진 비밀을 캐내려 한다. 그는 수천 년 동안 얼음 안과 아래에서 외부와 단절됐던 미생물을 연구하고 있다. 얼음이 녹으면서 이 미생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프라이는 “미지의 미생물 중에는 사람을 병들게 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생명체도 있다. 예를 들어 신약 개발에 이용할 수 있는 미생물 말이다.
프라이는 얼음이 녹아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 서 있었다. 더러운 회색 얼음이 그의 머리 위쪽에 있었다. “10월이 되면 이 모든 게 사라질 것이다.” 프라이는 곡괭이로 빙하에서 얼음 조각을 떼어냈다. 곡괭이를 내려칠 때마다 얼음 조각이 튀었다. 동료 연구자들은 멸균 장갑을 사용해 얼음 조각 샘플을 담고, 눈을 이용해 차게 유지했다. 자동차에 있는 아이스박스에 넣으려면 몇 시간 더 걸어야 하고 가파른 언덕도 내려가야 한다.
스위스연방 산림·눈·지형연구소(WSL)에 도착할 때까지 얼음이 녹아서는 안 된다. 프라이 박사팀은 이 연구소에서 토양생물의 다양성을 조사하고, 기후변화가 알프스 토양의 미생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연구하고 있다. 알프스의 기온은 세계 평균보다 거의 두 배나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 결과 엄청난 양의 빙하가 녹았다. 1850년 이후 스위스의 빙하 얼음 부피는 60% 감소했다. 스위스 빙하 모니터링 기관인 글라모스(Glamos)의 데이터에 따르면, 2014~2019년에만 스위스 빙하는 10분의 1 이상 잃었다.
일부 작은 빙하는 녹아 없어져 빙하 모니터링 지도에서 조용히 지워졌다. 반면 어떤 빙하는 시끌벅적한 작별 행사를 누리기도 했다. 2019년 스위스 장크트갈렌주에선 피졸 빙하 장례식이 치러졌고 250명이 문상을 왔다. 일부는 검은색 옷을 입었다. 2100년까지 현재 존재하는 빙하의 3분의 2가 사라질 것이다. 이조차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속한다. 최악의 경우 이번 세기말이 되면 알프스에서 더는 빙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막을 수 없다”고 프라이는 말했다. 빙하가 녹는 과정은 자체적으로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밝은 표면은 어두운 표면보다 더 많은 햇빛을 반사한다. 밝은 부분이 줄어들고 어두운 표면이 커지면 온도가 오른다. 기후는 점점 더 따뜻해지고, 반사하는 밝은 표면은 계속 줄어든다. 지구온난화는 빙하를 녹일 뿐만 아니라 영구동토층도 공격한다. 1년 내내 얼어 있는 토양은 북반구 육지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스위스 토지 면적의 5%가 영구적으로 얼었다.
프라이는 얼음 샘플을 수집한 뒤 조심스럽게 설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의 직원 중 한 명이 앞서가고 프라이는 뒤따라갔다. 프라이는 항상 조심스럽게 앞사람의 발자국에 발을 디딘다. 한번 잘못 디디면 죽을 수도 있다. 1년 전 산림·눈·지형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일한 연구소장이 탐사차 그린란드를 방문했다. 그는 경험이 많고 여러 차례 빙하 위를 탐색한 빙하학자였지만, 2020년 8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발아래에서 눈으로 형성된 다리가 무너졌고, 빙하 사이 물이 가득 찬 틈에 그가 빠졌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가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주검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프라이와 동료들은 빙하지대 기슭에 있는 측정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여기서도 연구자들은 바닥과 공기에서 샘플을 채취한다. 이런 것들을 측정함으로써 연구자들은 빙하가 없어질 때 토양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내려 한다. 이 변화는 부분적으로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직 두꺼운 얼음층이 있던 곳은 모래 심토가 됐다. 여기에 이제 조류(藻類)와 이끼가 덮였다. 그리고 씨앗이 처음으로 싹을 틔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식물이 자라고 언젠가는 나무도 자랄 것이다.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프라이가 말했다. 마치 기후변화에 대해 한번은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므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꽝꽝 얼었던 토양은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미생물은 점점 활동적으로 되고 신진대사를 시작한다.
프라이는 땅에 무릎을 꿇고 회색 빙하 모래를 손가락으로 파냈다. 그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며 새 장갑으로 갈아끼고 작은 숟가락으로 토양을 조금 덜어냈다. 부슬부슬한 토양 샘플을 비닐봉지에 넣었다. 나중에 실험실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토양에 사는 생명체 유전정보의 총합인 이른바 메타게놈(Metagenome·특정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의 유전체 집합)에 관심이 있다. 이를 통해 토양과 빙하 얼음의 샘플을 분석하면 어떤 박테리아와 곰팡이, 조류가 존재하는지 알게 된다. 어떤 바이러스가 존재하는지도 알게 된다. 운이 좋으면 유전정보를 통해 유기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유기체는 좋은 일을 할 수도, 나쁜 일을 할 수도 있다.

   
▲ 연구자들은 알래스카 외딴 마을의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된 여성의 주검에서 1918년 유행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가 보존된 것을 확인했다. 과학자들이 1991년 한 독일인 여행객이 발견한 5천 년 전 선사시대 남자 ‘외치’ 를 살피고 있다. REUTERS

비상사태 부른 얼음 속 탄저균
북극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불길한 것이 점점 많이 발견되고 있다. 2016년 러시아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탄저균 병원체가 발견된 것이 그 예이다. 이로 인해 순록이 2천 마리 이상 죽고, 90여 명이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으며, 소년 1명이 사망했다. 해당 지역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어디서 이 위험한 박테리아가 생겨났는가? 영구동토층은 수년간 냉동실처럼 포자를 보존했다. 탄저균은 다양한 지역에서 발생하지만 주로 따뜻한 지방에서 나타난다. 툰드라 지역에서는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해 여름이 섭씨 30도 이상으로 매우 따뜻하지 않았다면 영구동토층은 녹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탄저병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몇 년 전 연구자들은 알래스카의 외딴 이누이트 마을의 영구동토층 토양에서 주검 여러 구를 발굴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해 공동묘지에 묻힌 사람들이었다. 과학자들은 한 여성의 주검에서 그들이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였다. 이 바이러스는 여성의 체지방과 1m 두께의 흙과 얼음층의 보호를 받아 폐 안에 온전히 보존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자들은 이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완전히 알아낼 수 있었다.
토양 속 냉동실에서 많은 병원체가 수십 년을 넘어 수천 년 동안 생존하기도 한다. 2014년 연구자들은 3만 년 이상 된 토양에서 감염성 바이러스 입자를 찾았다. 이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유형의 거대 바이러스(Giant Virus)였다. 피토비루스 시베리쿰(시베리아에서 발견된 그리스 항아리 모양의 바이러스)이라고 이름 붙은 이 거대 바이러스는 인체에 무해하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가 깨어난 것은 후일 영구동토층의 해빙이 동물과 인간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바이러스 학자들은 경고했다. 이 거대 바이러스는 영구동토층에서 휴면 중인 수많은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라이의 연구가 보여주듯, 빙하에서 병원균을 찾기 위해 북극지방으로 여행할 필요는 없다. 스위스 알프스의 빙하에서 그의 팀은 이미 레지오넬라속(屬)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박테리아 유전자 입자를 발견했다. 이 박테리아는 독감과 유사한 발열이나 레지오넬로시스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프라이는 알프스 빙하에서 나온 질병이 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체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미생물을 발견한다고 해서 이런 병원체가 새로운 인간 숙주에 즉시 적응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고, 얼음과 영구동토층의 알려지지 않은 미생물에 대해 지식을 최대한 많이 쌓아야 한다고 프라이는 경고했다.
프라이는 영구동토층에서 나오는 유전자 입자가 어떤 종에 속하는지를 분석했다. 지금까지 30~40%에 이르는 유전자 입자가 기존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빙하 샘플 안에도 연구자들의 기존 지식에 맞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 있었다. 프라이는 이 미생물들이 “완전히 무해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뜻했다.
연구소로 돌아온 프라이 박사팀이 일을 시작했다. 프라이는 산에서 입던 기능성 소재 옷을 벗고 하늘색 폴로셔츠와 베이지색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동료인 베아트 슈티얼리는 이미 실험실의 멸균 작업대에 앉아 다마 빙하에서 채취한 얼음 샘플이 녹은 물을 여과하고 있었다. 작은 유리구슬을 사용하는 특수 공정을 거치면 미세 기공 필터로 거른 박테리아, 곰팡이, 조류의 세포를 기계적으로 파쇄할 수 있다. 세포 내부에서 방출된 유전물질은 이른바 완충용액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프라이는 “이 용액에서 더 자세히 조사하려는 미생물의 유전물질을 추출한다”고 설명했다.
프라이의 연구실 소속 연구원들은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있는가’뿐만 아니라, 그 유기체의 기능과 가능성을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 염기서열을 연구한다. 미생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한 프라이의 동료 마르게리타 에시는 플라스틱을 먹는 박테리아를 찾고 있다. 그의 추론은 이렇다. 고산지대 영구동토층의 생명체는 극한의 조건에서 생존하는 데 능숙하다. 이를 분자생물학적으로 풀이하면 분해하기 어려운 탄소화합물도 이용하게 만들어 이를 먹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박테리아 중 일부는 플라스틱에서 탄소화합물을 분해하고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프라이 그룹 소속 연구원들은 잠재적으로 플라스틱을 먹이로 추정하는 유전자를 30개 정도 발견했다. 에시는 영구동토층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관리하기 용이한 대장균 안에 넣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다. 또한 이 조작된 박테리아가 PLA플라스틱(옥수수와 사탕수수 등의 식물로 만드는 생분해성 수지)을 분해하는 효소를 생성하는지도 연구하고 있다.
포장재 등으로 쓰이는 PLA플라스틱은 생분해된다. 하지만 생분해가 가정의 퇴비 더미에서 썩는다는 뜻은 아니다. PLA플라스틱이 다른 플라스틱보다 쉽게 ​​분해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PLA플라스틱 실험이 성공하면 선사시대 유전자를 가진 박테리아를 다른 플라스틱 분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영구동토층 미생물의 유전자를 가진 박테리아가 플라스틱을 대규모로 분해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프라이가 얼음 속 생명체에서 본 두 번째 희망은 생존력과 관련 있다. “미생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름다운 상상 속 이야기일 것이다. 극도로 희소한 자원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 그들은 상대를 죽여야 한다.” 이는 그들이 항생물질을 분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하면 신약이 나올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빙하나 영구동토층에서 얻은 항생제는 의학계의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항생제 내성이 증가해 건강시스템에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베르트코흐연구소(Robert-Koch Institution)는 독일 병원에서만 다제내성균(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는 사람의 수를 연간 3만~3만5천 명으로 추정한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독일에서 다제내성균 감염으로 매년 2400명이 사망한다.

   
▲ 토양 속 냉동실인 빙하에서 많은 병원체가 수십 년을 넘어 수천 년 동안 생존한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선사시대 바이러스가 깨어나 현시대 동물과 인간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REUTERS

동토의 박테리아에서 항생물질을
초기 분석에서 영구동토층에서 나온 박테리아가 실제 항생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하지만 이 항생물질을 정확하게 식별하는 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프라이가 말했다. 박테리아가 항생물질을 생산하게 하는 유전자도 아직 정확하게 식별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얼음에서 나온 미생물을 배양하기는 쉽지 않다. 미생물은 매우 천천히 자라며 1년 내내 어둡고 서리가 내리는 온도에 익숙하다. 실험실에서는 영구적으로 얼어 있는 산비탈과 동일한 생존 조건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우리가 미생물의 생존 조건을 상세히 알게 된다면 좋을 것”이라고 프라이가 말했다.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Der Spiegel 2021년 제39호
Viren aus der Urzeit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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