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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환경의 새로운 독점 기준은?
[CULTURE & BIZ] 빅테크 규제와 문화산업
[139호] 2021년 11월 01일 (월)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2021년 10월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이사회 의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광고 비즈니스는 돈 있는 기업만 혜택을 받고 돈이 없으면 진출조차 어렵지만 플랫폼 비즈니스는 그나마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혁신이라는 측면과 독점의 폐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2021년 10월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 카카오모빌리티의 비가맹점 수수료 차별, 골목상권 침해 등과 관련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이사회 의장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긴장감이 묻어났다. 약 3시간 동안의 질의에서 김 의장은 상생 방안을 적극 찾겠다며 거듭 사과했다. 20여 년 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과거에 없던 비즈니스로 도전하겠다던 젊은 벤처창업자 김범수와의 인터뷰를 기억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광경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빅테크 기업들의 사업 확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 플랫폼이라는 ‘시장’을 제공하는 사업자가 지나치게 ‘폭리’를 취하거나, 그 안에서 ‘선수’로도 뛰면서 공정 경쟁을 해친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던 재벌기업에 가해지던 비판이 이제는 빅테크 기업을 겨누는 셈이다.
이런 논란은 문화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 문화산업에서 독과점 문제는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스크린 독과점에 국한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과 기술혁신으로 음악, 영화, 만화, 소설 등 대부분 콘텐츠의 디지털화가 가속되면서 산업의 중심이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문화산업도 플랫폼 중심
지금은 주로 구글·넷플릭스·유튜브·애플 등 국외 플랫폼에 불공정 경쟁 이슈가 제기되지만, 점차 세분된 전문 플랫폼들이 등장함에 따라 국내 사업자에도 비판의 칼날이 돌아갈 수 있다. 배달음식 주문을 손쉽게 해주는 것으로 성장한 배달의민족이 음식점들의 성쇠를 쥐락펴락하는 빅테크의 상징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빅테크 사업자들에 대한 문제 제기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일어나는 빅테크 규제 움직임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특히 미국에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빅테크 기업을 겨냥하는 반독점 정책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이들이 시장독점적 지위를 활용하는 행태를 두고 볼 수 없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예컨대 애플의 시가총액은 이탈리아의 전체 국내총생산(GDP)보다 많고, 아마존과 알파벳(구글 모회사)의 시가총액은 우리나라나 스페인의 GDP보다 많다. 빅테크 기업들의 영향력이 이제 웬만한 국가를 뛰어넘는다.
미국 정부는 빅테크와의 전쟁을 앞두고 관련 분야에 전문가들을 포진시켰다. 조너선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 팀 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대통령 특별보좌관 등도 있지만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다. 칸은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영국 출신 32살 여성이다. 런던에서 태어나 11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예일대학 로스쿨을 나와 컬럼비아대학 로스쿨 부교수를 했다.

칼자루 쥔 아마존 킬러
칸의 임명이 파격적인 이유는 그가 ‘이민계’ ‘최연소’ ‘여성’ 연방거래위원장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로스쿨 재학 시절 지난 50여 년간 유지된 주류 경제학 반독점법 이론의 근간을 흔든 획기적인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을 써서 법학계 신성으로 떠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마존 킬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빅테크 독점에 비판적인 관점을 가져온 진보 성향 젊은 학자가 연방거래위원회의 칼자루를 쥔 것이다.
칸의 등장이 파격적이라는 점을 이해하려면 미국 반독점법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선 역사적으로 기업이 비대해져 독과점 상태가 되면 반독점법으로 이를 분할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온 전통이 강하다. 19세기 후반 주요 산업에서 나타난 독과점의 폐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카네기의 철강산업, 제이피모건의 철도산업, 록펠러의 석유산업 등 거대 기업들이 모두 해체의 길을 밟았다. 이런 반독점법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20세기 초 활동한 루이스 브랜다이스 연방대법관이었다. 그는 특정 기업에 힘이 집중되면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봤다. 독과점 기업은 경제적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경제학 전반에 시장의 효율과 작은 정부를 중시하는 시카고학파가 득세하면서 반독점법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 시대를 연 것은 1978년 로버트 보크의 논문 ‘반독점의 역설’이었다. 보크는 반독점법의 유일한 목적이 소비자 후생이고, 소비자 후생만 나아지면 독점도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특정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더라도 ‘가격 인하’ 효과가 있다면 독점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기업이 치킨게임으로 경쟁사를 모두 밀어내고 시장을 100% 독점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제품을 싸게 제공한다면 규제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반독점법에 메스를 대는 사례도 크게 줄었다.

   
▲ 2021년 4월21일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장 지명자가 상원 상업과학교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REUTERS

독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런데 2017년 칸이 이런 흐름을 뒤집으며 기존 반독점법 시각을 빅테크 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상장 이후 6년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지금까지 흑자를 기록한 해가 적자인 해보다 적다. 하지만 아마존 같은 플랫폼 사업자는 약탈적 가격 책정으로 성장을 꾀한다는 특징이 있다. 소비자에게 매우 낮은 가격으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판매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공짜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많이 묶어두면 판매업체들은 저절로 따라붙을 것이므로 이런 전략이 가능하다. 기존 반독점법의 시각으로는 이런 기업을 독점기업으로 규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플랫폼에 종속된 여러 소상공인 또는 노동자들의 후생은 이런 전략 때문에 나빠질 수 있다. 게다가 이런 기업들은 해당 시장에서 독점사업자 면제를 받은 탓에 다른 시장에서도 비슷한 전략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소비자 데이터 수집으로 더 큰 경쟁력을 확보해 경쟁업체 지위를 약화한다. 결국 지금은 적자를 내며 서비스하지만, 모든 것을 장악한 뒤 언젠가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가격정책을 쓴다. 그렇게 돼도 소비자는 그 플랫폼을 떠나지 못한다. 이미 그 기업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장 지배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가격정책과 상관없이 사업 영역을 제한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칸은 주장했다. 필요하다면 기업 분할로 독점을 종결해야 하고, 미래의 경쟁사가 될 신생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규제해야 한다고 봤다. 모두 독점력을 강화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칸은 연방거래위원장 취임 2주째인 2021년 7월 초, 2015년부터 유지한 연방거래위원회의 법 집행 기준인 ‘소비자 후생의 증진’을 폐지했다.

데이터 가치 vs 민주주의 수호
법 적용의 방향은 분명히 바뀌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아직 정립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무엇을 근거로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논의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 편집인이자 경제 칼럼니스트인 라나 포루하는 저서 <돈 비 이블,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에서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하나는 데이터 가치에 기반한 논의다. 소비자가 제공하는 개인 데이터를 생각하면 빅테크에 지급하는 진짜 가격은 크게 오른다. 문화산업의 개인 취향 데이터는 활용도도 높다. 이 방식은 물품·서비스 가격 외에 제공하는 데이터 가치까지 포함한 소비자의 후생을 계산하는 형태이므로, 기존 시카고학파의 철학을 흔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물론 소비자 데이터의 가격과 가치를 어떻게 계산하냐는 숙제가 남는다.
다음은 과거 브랜다이스의 관점으로 돌아가 빅테크 기업들이 막강한 힘으로 어떻게 시장과 정치, 경제를 왜곡했는지 민주주의 수호 차원에서 입증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복지’에서 ‘시민 복지’로 가치관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시카고학파 중심의 경제학이 내놓지 못한 답을 완전히 넘어선다는 의의가 있다. 문화산업에서라면 이전의 ‘스크린쿼터제’처럼 문화 다양성의 가치 등을 내세우는 것이라 친숙하지만 과거의 틀을 뛰어넘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어떤 쪽이 중심이 될지는 미국에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반독점법 적용 대상인 빅테크 기업의 기준을 시장가치 6천억달러(약 720조원) 이상, 사용자 5천만 명 이상의 기업으로 한정해놓았다.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런 기준조차 조금 모호하다. 단순히 조금 큰 플랫폼 기업인 것 같다고, 악한 힘을 휘두르는 것 같다고 달려들 수는 없다. 소는 언제나 외양간의 틈을 노린다. 우리 소는 착한 소라 걱정 없다고 말하기 전에 구멍 난 외양간은 늘 보수하는 게 중요하다.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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