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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 시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녹색복지국가를 향하여 ⑧ 국가의 녹색화
[139호] 2021년 11월 01일 (월) 이창곤 goni@hani.co.kr
   
▲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2021년 9월2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후위기를 막을 현실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뚜렷한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꼽으라면 바로 ‘국가의 귀환’이 아닐까 싶다. 한때 그 역할의 축소를 미덕으로 내세우던 주장은 어느새 힘을 잃었다. 국가는 어느 때보다 시민의 삶을 지키는 ‘구세주’를 자처하며 ‘통치의 권위체’란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국가와 정부가 감염병의 위험에 맞서 시장과 공동체를 지키는 보루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시대에 따라 변화한 국가의 역할
기실 국가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존재해왔으며, 역사의 발전 단계에 따라 다양한 얼굴로 변화했다. 이를테면 고대 노예제와 중세 농노제 시대에 국가는 수탈과 억압의 폭력기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 시대와 산업혁명 이후 “사회의 공동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포괄적인 정치사회 조직”으로서 국가가 출현했다.
이런 성격을 지닌 국가의 진수는 바로 복지국가였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과 유럽 등지에서 본격화한 복지국가 시대에 국가는 규모와 조직을 대폭 확대하고, 역할의 중심을 무엇보다 시민의 안정된 삶을 위한 복지 제공에 두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은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하는 데 있다는 인식의 전환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경제위기에 이어 후기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복지국가의 토대인 완전고용이 흔들리는 틈을 타 19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전위로 앞세운 신자유주의가 나타나 오랫동안 맹위를 떨쳤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와 정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공공 영역을 최소화하는 한편, 작은정부와 규제완화 그리고 민영화를 추구했다. 이 흐름은 2000년대 후반 잇따른 글로벌 부동산 및 금융 위기로 한때 종말을 고하는 듯했으나 끈질긴 복원력을 과시하며 지구촌을 더욱 지탱 불가능한 ‘위험사회’란 낭떠러지로 밀어붙였다. 바로 이 위태로운 역사 위에 코로나19가 습격했고, 이는 마침내 다시 국가를 소환한 것이다.
코로나19에 따른 보건 및 경제사회 위기를 맞닥뜨리면서 지구촌은 “우수한 인력, 효율적 조직, 강력한 재정이 없는 미약한 정부가 이 시대의 총체적 위험에 대응할 수는 없다”(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인식을 확고히 한 듯하다. 이는 최소국가, 작은정부로서는 감염병 유행에 따른 위기는 물론 우리 시대가 직면하는 디지털 쇼크와 기후위기 등 가공할 복합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과 공감대는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의 물질적 가치생산 증진과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에만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코로나19가 남긴 중요한 각성 가운데 하나인 자연이 건강해야 인간이 건강할 수 있다는 것, 인간 사회의 생명적 기반인 자연생태계의 지탱 가능함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담겨 있지 않다.
바야흐로 디지털 쇼크,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이중의 생태위기, 악화하는 불평등 등 대형 위험이 복합적으로 불어닥치는 대전환의 시대다. 이 시대는 개인, 기업, 지역공동체만으로 맞설 수 없으며 국가 차원의 공적, 선제적, 적극적 대응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런 국가의 대응은 이제 인간의 물질적 삶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넘어서야 할 때다. 인간의 생명적 기반의 해체를 방어하고 회복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생태위기 시대에 요청되는 국가의 역할이다. “물질적 부의 생산을 관리하는 성장조절자에서 생명의 지속성을 관리하는 생태조절자로 국가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는 뜻이다. 바로 국가의 녹색화다.
녹색복지국가가 기존 복지국가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이런 국가의 녹색화에 있다. 국가의 녹색화란, 국가의 역할을 인간 중심에서 인간과 인간의 호혜성을 복원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인간과 자연의 생명 의존적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다스리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 즉 생명 중심, 생태 중심으로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가 목표로 한 인간의 존엄성 실현, 사회권 보장, 형평성과 분배정의 실현에 더해 인간과 자연의 호혜적 공존이란 가치를 병행 실현하는 것을 국가의 운영과 역할, 기능의 중심에 두는 것이기에, 녹색복지국가는 본질에서 보편적 복지국가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국가의 녹색화란, 국가의 기본적 역할인 축적과 정당화가 녹색인 생태사회적 가치로 재정의되고 재구성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녹색축적은 그린뉴딜, 녹색경제, 녹색소비 등을 제도화해 지속가능한 생태경제를 구축하는 길이며, 정당화는 국가 지배의 정당성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와 함께 인간 생명의 기반인 자연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길이다. 이 길은 응당 일부 생태주의자처럼 국가의 존재를 거부하고 초월하기보다 “국가가 가지고 있는 법 제도적 자원과 역량, 그리고 긴 역사를 통해 축적한 통치기술과 기구들을 녹색가치, 즉 생태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지배와 통치의 기구로 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국가의 녹색화가 어느 정도로 진행돼야 하는가는 생태위기의 시급성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실현을 위해서는 정치와 거버넌스의 재구성이 일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이런 재구성만으로 그 실현이 가능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시민의 적극적 동의와 기업의 참여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게 국가의 녹색화란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미래는 녹색 대안세력의 영향력에
더불어 어느 한 나라의 힘, 즉 일국적 차원으로도 실현할 수 없다. 지구촌 각국의 신뢰와 협력 없이 어떻게 국경을 초월한 생태위기에 온전히 대처할 수 있겠는가. 수백만 명의 희생을 대가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우리 각자의 건강과 웰빙이 지구 전체 및 자연의 건강과 웰빙과 긴밀히 연계돼 있으며, 국가 간의 협력과 연대만이 이런 자연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생태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인식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공동의 안전한 미래’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의 녹색화와 그 가치 실현을 지지하는 대안세력이 얼마나 출현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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