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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고속도로를 위하여
[경제와 책]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고속도로의 인문학> 최영준 외 18명 지음 | 한국도로공사 | 2010

   
 
고속도로는 일단 건설되고 나면 국가의 핵심 기간 시설로서 국민의 생활과 국가 전체 및 지역의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고속도로는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고속도로는 직접 사용하거나 고속도로 근처 지역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사회·경제·문화적 측면, 즉 국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고속도로 건설은 경제의 고정자본을 증가시키고, 이것은 경제의 총생산 증가를 가져온다. 소득이 증가하면, 노동 고용이 증가하고 수출이 증가한다. 수출은 다시 총생산에 영향을 끼친다. 고속도로 건설 투자는 이런 상호 연관적인 과정을 통해 경제 전체의 주요 변수에 두루 영향을 끼친다. ‘경제재’로서 고속도로에는 대개 이런 설명이 붙게 마련이다. 그런데 고속도로는 ‘길’이다. ‘길’에서는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날개를 펴게 된다. <고속도로의 인문학>은 역사·경제·사회·정치·문학·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문·사회과학자 19명이 가세해 고속도로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적고 있다.

“길은 오래전부터 문학적 상상력을 풍요롭게 만든 문학의 소재로 문학과 깊은 친연성을 보인다. 길에서는 늘 만남과 이별이 있고, 사건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시인과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지 못했고, 그들에게 흥미로운 글감을 제공하지도 못했다. 예전의 길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고속도로에는 이야기가 없다. 고속도로는 점과 점을 최단 거리로 이어주는 효율성과 속도성, 그리고 신속한 공간 이동이라는 목적의 단순성은 문학의 속성과 이질적이기도 하다.”(문학평론가 이남호).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는 ‘대중가요 속의 길과 대중의 욕망’을 고속도로를 통해 이야기한다. “고속도로가 당대 우리 사회에 지니는 중요도와는 달리, 고속도로를 다룬 대중가요가 매우 드물고 그다지 인기도 얻지 못했다. 이는 식민지 시대의 새로운 길이었던 철도, 뱃길 등이 대중가요 속에서 빈번히 등장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현상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일일생활권’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재가 대중가요에서 이토록 드물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김민기 작사·작곡의 노래 <강변에서>(1974)는 ‘높다란 철교 위로 호사한 기차’가 ‘시커먼 연기’를 피우는 ‘강 건너 공장’과 배치된다. 하덕규 작사·작곡의 노래 <GNP>(1991)는 ‘GNP가 오르고 당신의 아이들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이 거리를 달려도/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허무할 거예요’라고 노래한다.

현대사회에서 고속도로는 자동차의 생산·보급과 관련된 경제적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자동차 이동성을 위한 고속도로 건설이 물리적 경관과 공간의 인식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켜서 정치권력의 강화에 이바지했을까, 라고 묻는 이도 있다. 고속도로에 대한 지리공간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최병두 대구대 교수의 글이다. “실제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개발된 자동차 문화와 그 영토는 결국 사람 문화, 사람 공간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교통로의 건설은 당시의 경제적 특성뿐만 아니라 이를 추진한 정권의 특성을 반영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건설 자본의 특혜적 성장과 더불어 시공간적 압축에 따른 운송 비용 및 시간의 단축으로 생산성 증대와 경쟁력 강화를 통한 급속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또 건설 과정에서 속도전에 따른 위험과, 고속도로 이용에 따른 교통사고의 급증과 더불어, ‘빨리빨리’를 강제하는 군사적 문화의 일반화를 초래했다. 경부선을 축으로 한 접근성 네크워크에의 포섭과 배제를 가르는 구획선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통한 상호작용의 일방향 효과로 인해 이에 포섭된 도시들 간에 불균등 발전이 초래됐다. 최 교수는 이를 ‘고속도로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자 박만섭(고려대)은 “경부고속도로는 경인고속도로와 함께 국가의 산업 동맥 역할을 모두 짊어져야 했다”며 “한국의 경제 도약이 바로 경부고속도로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 교수는 한국의 경제와 고속도로가 궤를 같이하면서 성장했음을 각종 고속도로 관련 지표들을 통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자들은 서문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단순히 점과 점을 잇는 ‘직선’으로 고속도로를 보는 생각 틀에서 벗어나, 인적·물적 교류와 함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고 환경 및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공생하는 길, 즉 ‘곡선’의 길 관념을 포섭하는 방향으로 고속도로가 진화해나가기 바란다”고 말한다. 이 책은 비매품으로 발행됐다. 한국도로공사는 올해 상반기 중 유료 판매로 바꿔 이 책을 다시 낼 예정이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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