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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뿌리는 저항정신과 반문화
[세계는 지금] 실리콘밸리
[137호] 2021년 09월 01일 (수) 김욱진 oogie.kims@gmail.com

김욱진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 과장

   
▲ 미국 샌프란시스코 콜럼버스 거리에 있는 서점 ‘시티라이츠’의 비트문학 코너. 앨런 긴즈버그의 시 ‘울부짖음’(Howl)이 진열돼 있다. 김욱진 제공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도, 애플 캠퍼스가 있는 쿠퍼티노도 아니었다. 근무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도착해서 짬이 나자마자 바삐 찾아간 곳은 샌프란시스코 콜럼버스 거리에 있는 2층짜리 서점 ‘시티라이츠’(City Lights)였다. 1953년 문을 연 이 서점은 수십 년 동안 새로운 세계를 꿈꾼 젊은이들의 문화적 해방구였다. 거대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기를 거부한 1950년대 미국 저항세대의 성지답게 서점 한쪽은 ‘비트(Beat) 문학’ 책으로 가득했다. 시 ‘울부짖음’(Howl)을 통해 획일화되는 세상에 맞선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여전히 방문객들에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실험적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를 발표하며 미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소설가 잭 케루악은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작은 서점을 찾은 까닭
실리콘밸리에 왔는데 왜 작은 서점부터 찾아갔을까? 단초는 스티브 잡스의 한마디였다.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늘 배고프게, 늘 우직하게 갈망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며 축사를 마무리한다. 사실 잡스가 처음 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이 표현이 자신이 즐겨 본 1960~70년대 반문화(Counterculture) 세대의 교본 <홀어스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ue)의 슬로건임을 연설에서 명확히 밝힌다.
잡스의 전기를 보면 그는 뼛속까지 반문화주의자, 즉 히피(Hippie)였다. 그가 선택한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대학은 자유로운 정신과 히피 생활 방식으로 유명했다. 대학 시절 잡스는 영성과 깨달음에 심취했다. 동양사상과 선(禪)불교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젊은 시절의 객기나 잠시 스쳐가는 흥미가 아니었다. 잡스는 특유의 열정으로 불교에서 강조하는 직관적 통찰을 받아들였고 이는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이 됐다. 잡스의 리드대학 친구이자 초창기 애플 엔지니어인 대니얼 콧키는 그를 이렇게 정의했다. “잡스는 선에 심취한 사람이다. 그의 모든 접근 방식은 온전한 미니멀리즘 미학과 강렬한 집중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모두 선에서 얻은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실험하기 위해 많은 히피가 자연에서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일부는 테크놀로지에서 미래를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샌프란시스코만을 둘러싼 유(U)자형 ‘베이(Bay) 지역’, 다시 말해 실리콘밸리에서 성장한 잡스의 내면에도 그의 출신지가 말해주듯이 전자공학 괴짜 기질이 다분히 자리하고 있다. 1960년대 말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지역’에는 다양한 문화적 흐름이 함께 존재했다. 우선 냉전시대 방위산업이 날로 성장하며 최첨단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기술 진보에 따라 전자회사, 마이크로칩 제조사, 비디오게임 개발사, 컴퓨터 회사가 속속 생겨났고 컴퓨터광(狂)을 중심으로 하는 하위문화도 꽃피웠다.
또한 비트 세대를 주축으로 일어난 히피 운동, 버클리대학의 언론 자유 운동을 발판 삼은 정치적 저항 움직임이 괄목할 만한 물줄기를 형성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 깨달음과 자유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시도도 차츰 확대됐다. 선불교와 힌두교, 명상과 요가, 감각 차단을 통한 깨달음 얻기, 인간 잠재력 개발 운동 등이 대표 사례다.
초기에 기술광과 히피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반문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컴퓨터를 인간성 말살을 조장하는 불길한 기계이자 권력자들이 남용할 도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선임기자인 존 마르코프는 “과거 권력자들의 중앙화된 통제 도구로 취급된 컴퓨터가 점차 개인의 표현과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 실리콘밸리의 뿌리는 비트 세대의 저항정신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있는 전후 미국의 비트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잭 케루악’의 이름을 딴 거리의 모습. 김욱진 제공

반문화 히피족과 컴퓨터광의 조화
반문화 히피족과 컴퓨터광이 조화를 이루도록 기여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앞서 말한 <홀어스 카탈로그>의 창시자인 스튜어트 브랜드다. <홀어스 카탈로그> 표지에는 우주에서 본 지구 사진을 담았는데 ‘도구로 향하는 통로’(Access to Tools)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브랜드가 만든 간행물의 기본 철학은 기술이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홀어스 카탈로그>의 대표적인 열성 팬이 바로 스티브 잡스다. 특히 스탠퍼드대학 졸업연설에서 인용한 “Stay Hungry, Stay Foolish” 문구가 적힌 최종판에 완전히 매료됐다. 대학생활을 할 때와 사과농장에서 지낼 때도 책자를 곁에 둘 정도였다. 훗날 브랜드는 <홀어스 카탈로그>가 지향한 문화적 융합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로 잡스를 꼽았다.
이처럼 1950년대 저항운동의 중심이자 1960~70년대 반문화 조류를 이끈 공간인 ‘베이 지역’이 혁신의 아이콘 ‘실리콘밸리’로 우뚝 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부, 자선, 환경문제 등 사회운동에 앞장서는 록밴드 유투(U2)의 리더 보노(Bono)는 이렇게 평가했다. “록음악과 반항정신에 바탕을 둔 반문화 세대가 퍼스널컴퓨터(PC) 산업이 태동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1세기를 창조한 사람들은 결국 미국 서부 해안 지역의 히피였다. 왜냐면 그들은 다르게 사고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색다른 사고방식은 그간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미국 동부나 영국, 독일, 일본의 기존 전통 세대는 그런 종류의 사고를 장려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는 오랜 세월 새로운 세계를 꿈꾼 청년들의 강한 열망이 축적돼 있다. 잡스는 젊은 시절, 마음이 맞는 구도자들과 함께 사과농장 공동체에서 머물곤 했다. 그는 동양종교에 심취한 다른 거주자와 사과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으며 과일만 먹는 식단을 실험했다. 이때의 경험이 그가 회사 이름을 ‘애플컴퓨터’로 짓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애플’과 ‘컴퓨터’라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에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을 혁명적으로 드러냈다.
1997년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광고는 이를 더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이 광고는 애플컴퓨터의 기능과 장점을 전혀 강조하지 않는 대신 창의적인 사람이 컴퓨터를 이용해 성취할 수 있는 진보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했다.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세상의 미친 사람들을 찬미하는 응원 메시지나 다름없다. 광고 문구처럼 그들은 흔히 ‘부적응자, 반항아, 사고뭉치, 네모난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비친다. 하지만 혁신은 문자 그대로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을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엉뚱하고 허무맹랑한 사람들이 혁신의 중심에서 기술혁명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한국의 실리콘밸리 담론이 반복됐다. 한때는 대전 대덕이 떠올랐고, 어떤 때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가 유망했으며, 근래에는 경기도 성남 판교가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탄생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사회·문화·정신적 토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혁신 중심지의 생명력은 길지 못했을 것이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제2의 실리콘밸리가 되겠다는 계획도 야심에 차지만 한국 특유의 기업가정신을 대표하는 제1의 혁신 요람을 목표한다면 우리의 도전은 더 항구적일 수 있다. 잡스뿐 아니라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가가 여전히 선불교와 도교 등 동양사상에 심취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내재화한 정신·문화적 배경에 혁신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출발점은 현재에 안주하지(Status quo)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세다.

혁신가의 자세는 어디서 오는가
6개월 전, 실리콘밸리에 도착하고 시티라이츠 서점에서 치른 나만의 신고식은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끝났다. 서점 문을 나서는데 커다란 숙제가 주어진 느낌이었다. ‘안주하지 않으려는 혁신가들의 자세는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오랜 시간 답을 구해야 할 과제였다.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정처 없이 걸었다. 방황하다가 들어선 차이나타운의 골목길 이름은 ‘잭 케루악’이었다. 어쩌면 그의 소설처럼 영원히 ‘길 위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안주하지 않으려는 이만이 길을 나서고, 길을 나선 이는 결코 안주할 수 없는 법이니까.
샌프란시스코에서 베이 지역 광역철도(BART)를 타고 돌아온 세계 혁신의 중심지는 예상과 달리 너무도 평온한 모습이었다. 호수 위의 오리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아주 치열하게 발을 움직인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전부가 아니듯 평온함의 이면에는 분명 혁신가들의 바쁜 발놀림이 있을 터였다. 앞으로 현상과 본질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 실리콘밸리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갈 길이 멀다.

*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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