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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죽음을 위한 마지막 대화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37호] 2021년 09월 01일 (수) 박중언 parkje@hani.co.kr
   
▲ 2014년 개봉한 영화 <화장>에서 주인공 중년 남성(안성기 분)이 뇌종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김호정 분)의 배설을 묵묵히 돕는 장면. 리틀빅픽처스 제공 스틸컷

“묵자(밥 먹자).” “아~는(애는 별일 없지)?” “자자.”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을 꼬집을 때 흔히 등장하는 세 마디는 정곡을 찌른 우스개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 문화에 짙게 물든 50대 이상 한국 남성의 가족 간 대화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모이면 목소리를 최대로 올려 요란을 떨지만 집에 들어오면 부부싸움 할 때 빼고는 무척 조용하다. 우리 사회의 가족 대화법 또는 대화의 기술은 서구 사회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대화의 소재가 일상생활이 아니라 인생의 마무리라면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몹시 힘들다. 더욱이 그것이 노부모와 나누는 대화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는데도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은 꺼린다. 하지만 삶을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지에 관한 ‘마지막 대화’만큼 의미 있고 효용가치가 큰 일도 없다. 그 대화는 남은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높이고 편안한 죽음을 맞게 해준다. 말기 치료와 장례에 드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주는 것은 덤이다.

세 가지 선택지
5060세대의 부모는 세상을 떠났거나 떠날 시기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요즘 중견기업 P부장에겐 80대 이상인 친구·동료 부모의 부고가 수시로 찾아온다. P부장의 노모도 80대 후반이다. 그의 노모는 자잘하게 아프지 않은 구석이 없고, 몇 년 전 심장 혈관이 좁아져 스텐트 시술을 받기도 했다. 다른 심각한 병은 없어 급하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큰 병을 앓거나 죽음이 가시권에 든 노부모라면 그 필요성이 더 크다.
노부모가 △회복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을 때 어떤 치료를 받기 원하는지 △견디기 힘든 고통이 지속될 때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지 △더 오래 사는 것과 더 높은 삶의 질 가운데 어느 쪽을 원하는지 △남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임종은 어디에서 맞고 싶은지 △장례는 어떤 식으로 해주기를 원하는지 등이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 내용이다.
이런 얘기에 익숙지 않은 것은 가족 간 대화가 활발한 편인 서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 들고 병든 부모 대다수는 그저 자녀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며 삶의 마지막 시기를 맞는다. 그러나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보듯이 말기 치료를 둘러싼 결정은 몹시 힘들다. 치료 강도가 매우 세고 고통은 감당하기 힘든 반면 치료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텔레비전 드라마여서 현실보다 대화는 많고 고통스러운 장면은 적다.
가족 간 대화가 전혀 없이 중환자실이나 응급실로 실려 가면 본인 뜻을 밝힐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릴 수 있다. 노부모의 바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노부모의 말기 치료와 죽음에 대한 결정의 책임을 오롯이 져야 하는 자녀의 심적 갈등이 훨씬 커진다. 때때로 멀리서 온 형제나 친척이 목소리를 높여 노부모 부양으로 지친 자녀의 속을 뒤집어놓기도 한다. 마지막 대화는 스스로 삶의 마무리와 죽음을 결정하는 동시에 남은 가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플 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연명의료, 제한적 의료, 완화의료가 그것이다. 연명의료는 어떤 수단을 써서든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제한적 의료는 생명 유지에 중점을 두면서도 심폐소생술이나 중환자실에서 이뤄지는 공격적 처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완화의료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통증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이런 내용을 알면 대화는 물론 노부모의 나이, 건강 상태, 증상 등에 따라 어떤 치료를 선택할지 결정하기 쉬워진다. 안젤로 볼란데스 미국 하버드대학 의대 교수는 특히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부착 등 중환자실 말기 치료의 실상을 그대로 담은 동영상을 환자와 가족이 직접 보기를 권한다. 말로 설명하는 것과 치료를 실제 어떻게 하는지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동영상 시청 이후 사람들의 선택이 좀더 분명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와 하버드대학 종양학자들이 뇌종양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동영상을 보지 않은 그룹에서는 연명의료와 완화의료 선택이 각각 25% 차지했다. 시청 그룹에서는 연명의료 선택자가 전혀 없고, 90% 이상이 완화의료를 선택했다.
완화의료를 원한다면 자연스럽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80대 이상 고령자 가운데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자녀인 5060세대가 적극 권하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가족과 꾸준히 얘기를 나눴다고 해도 법적 효력이 있는 이런 문서가 없으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동반하고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연명치료를 피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중대 질병에 걸렸다면 의사와 상의해 원치 않는 의료 처치를 더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도 있다.
이런 대화는 어느 하루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긴 시간을 두고 가족이 얘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부모의 건강 관리나 질병, 해마다 돌아오는 제사 등이 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P부장에게는 납골당 분양이 좋은 ‘마중물’이 됐다. 십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장을 당연시하던 그의 노모는 화장으로 방향을 틀고 납골당 분양을 알아봤다. 같은 성당 신도에게 인근 지방에 새로 만든 납골당의 분양 소식을 들어서였다. 코로나19 등으로 마주 앉을 기회가 줄어 대화의 진전은 느리지만 머지않아 노모의 말기 치료와 죽음 방식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대화의 실마리
노부모와 하는 이런 대화는 아름다운 인생 마무리를 위한 예습이 된다. 앞으로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의 자녀와도 나눠야 할 대화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평소 자신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면 자신이 갑자기 중대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의사소통 능력을 잃는 상황이 닥쳐도 고민이 줄어든다. 볼란데스 교수는 저서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에서 말기 치료와 죽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정리한 다음 가족과 충분히 얘기를 나누고 의사와도 적극적으로 대화할 것을 제안했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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