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인플레이션과 ‘오즈의 마법사’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137호] 2021년 09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한겨레 기자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021년 7월15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이날 인플레이션 대응이 현재 직면한 도전과제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오즈의 마법사>(1900)는 물가와 통화정책에 관한 우화로 경제학설사에 종종 등장한다. 1880∼1896년 미국 경제에서 일반 물가는 23% 하락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화폐의 실질가치 급변이었다. 자연히 부의 대폭적인 재분배가 일어났다. 서부에 살던 농민들은 동부에 있는 은행에 빚진 상태였다. 물가가 크게 하락하자 농민들이 진 부채의 실질가치는 급증했다. 반면 은행은 갑작스럽게 부자가 됐다. 농민의 이해를 대변한 정치인들은 은화의 자유 발행을 허용하자고 요구했다. 은도 금처럼 화폐로 통용하면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가 다시 상승하고, 농부들이 진 부채의 실질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 여겼다.

물가 급변동은 이처럼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방식으로 사회집단 사이에 다양한 재분배 결과를 낳는다. 주류 경제학자와 부유층·기득권층이 왜 그토록 20세기 내내 인플레이션을 “가장 나쁜 경제적 질병”이라고 설파하면서 경기안정화에 집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13~1950년 프랑스의 인플레이션은 연평균 13% 이상이었는데, 이 기간 전체로 보면 물가가 100배 상승했음을 의미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1913년 <스완네 쪽으로>를 출판했을 때 국가가 발행한 채권은 탄탄한 듯 보였다. 그러나 1950년에 이르러 국채의 구매력은 과거의 100분의 1로 줄었고, 그 결과 (국가에 돈을 빌려준) 1913년의 자본소득자와 그 후손들은 사실상 가진 게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선진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각국 경제부문에서 인플레이션 진단·전망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CPI)는 2021년 5∼7월 석 달 연속 5%대(전년 동월 대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코로나19에 억눌려 있던 수요가 폭발하는 일시적 요인(중고차·트럭 가격 등), 경기변동 요인(식료품·에너지 가격 등), 추세적 요인(주거비·의료비 등), 계절적 요인(곡물 가격 등)이 한꺼번에 결합하면서 각국 물가 급등세를 이끌었다.
물론 대다수 논의는 “인플레이션이 거시경제 안정성을 해친다”며 ‘우려’하는 쪽에 서 있다. “인플레이션은 알코올중독과 같다. 정부가 저지른 통화량 증가가 누구나 더 많이 돈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점차 합세한다. 더 많은 알코올, 더 많은 통화가 필요해진다. 처음의 행복감은 사라지고 숙취만 남게 된다.” 밀턴 프리드먼이 <선택할 자유>(1980)에서 한 말이다.
반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인플레이션을 (적어도 불황기에) 옹호하는 학설을 내놓아 수많은 경제학자를 일순간에 감염시켰다. (국가의 통화정책 개입으로) 물가가 상승하면 총생산이 증가하고 그러면 고용이 늘어나며(실업률 하락), 이제 노동의 수요(증가)–공급(감소) 힘에 따라 다시 임금이 상승해 경제 전반에 소비가 진작된다는 아주 단순한 설명이 ‘케인스 혁명’이었다. 대공황 시절이 아닌 때에도 이 학설이 통하는지는 논쟁거리다. 하지만 은화 주조, 프랑스 국채 사례와 더불어 인플레이션 현상을 둘러싼 계급·계층적 이해 상충을 뚜렷이 보여준다.
인플레이션은 강제력을 가진 사회경제적 제도도, 주먹도 아니다. 그러나 세금처럼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플레이션도 사회집단 사이에 부의 일부를 내놓도록(혹은 얻도록) 하는 역할을 시장기구 안에서 수행한다. 인플레이션을 향한 두려움은 거시경제적으로, 또 계급적으로 미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9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