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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디플레이션을 더 걱정해야 할 때?
[FINANCE] 인플레이션 논란
[135호] 2021년 07월 01일 (목)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1년 6월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버리힐스 주유소의 기름 가격표. 최근 미국에서 기름값이 크게 올라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REUTERS

“인플레이션이 밀려오고 있다.” 분석가들은 연일 물가 오름세를 강조한다. 미디어는 한발 더 나아가 특정 부문의 물가를 강조하며 곧 물가 폭등이 닥칠 거라고 한다. 기름, 구리, 목재, 달걀, 각종 채소 등의 무서운 상승세가 그림으로 표현된다. 어느새 인플레이션은 공포 자체가 돼버렸다.
미국 중앙은행과 정부는 의외로 태연하다. 각종 물가 지표가 곧추서고 있는데도 말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미 정부도 이런 인식엔 큰 차이가 없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인플레이션이 ‘고질적’인 게 아니라고 한다.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현재의 물가상승세가 기저효과 때문이라 강조한다. 2021년 하반기는 상승률 2% 안팎에서 물가가 움직이고, 2022년에는 기저효과가 상대적으로 줄어 1%대 중반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왜 이렇게 자신만만한 것일까? 이들은 인플레이션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구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상품 가격과 임금 상승
인플레이션 공포가 짙어지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원자재를 포함한 상품 가격 오름세다. 흔히 기름, 구리, 철 등 상품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면 상품 가격은 실제 인플레이션과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미국에선 대표 상품시장 지수인 CRB지수와 근원소비자물가지수(코어 CPI)의 연관성이 없다. 1960년부터 추적한 자료를 보면 둘의 상관계수는 0.02에 불과하다(로젠버그리서치).
현재의 상품 가격 급등 이면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충격으로 상품 생산자 상당수가 파산했거나 문을 닫았다. 북미 셰일오일 생산자가 대표적이다. 상품시장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수많은 재화, 서비스 생산자가 같은 처지에 몰렸다. 이른바 공급망 훼손이다. 이런 상황에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엷어지며 수요가 늘었다. 이는 공급 부족 혹은 병목의 원인이 됐다.
둘째, ‘팬데믹 머니’로 인한 투기적 수요 급증이다. 실제 상품 가격을 견인하는 중국 시장의 신규 수요는 예년보다 크게 늘지 않았다. 지금은 실제 수요보다 투기적 가수요가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투기적 수요는 지속될 수 없다.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은 허구에 가깝다. 임금이 오른다고 하지만 이는 데이터로 입증되지 않은 일회성 이벤트로 봐야 한다. 수치로 증명된 게 아니다. 미국에서 임금이 오르는 것은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들에게 뿌린 정부 이전소득 때문이다. 정부에서 주는 돈이 임금보다 후한데 누가 일하려 하겠는가?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려우니 임금이 올랐던 것이다.

인플레이션 제한 요소
팬데믹이 엷어지면서 이른바 ‘공짜 돈’ 역시 줄어들고 있다. 실직자들은 이제 먹고살기 위해 노동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시장 참여자가 늘면 임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임금이 오르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실업 상태에 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이 몇 개월 뒤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 백신 접종이 늘면 그만큼 일자리 안전성이 확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총임금 상승을 누르게 된다. 최저임금이 올라 식당과 호텔 등 일부 업종의 임금 상승 압력이 가중된다 해도 그것이 전반적인 임금 인상으로 번지기에는 역부족이다.
오늘날 핵심 문제는 지나친 부채다. 과다 부채란 그 증가가 성장률을 웃돌 때를 말한다. 국제결제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2년 국내총생산(GDP)의 190%이던 글로벌 부채가 2020년 4분기에 280%를 돌파했다. 부채는 구조 문제이고 고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수요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정도로 늘어날 수 없다. 투자와 소비 자체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부채 거품은 인플레이션 유발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나 디스인플레이션, 즉 약한 디플레이션으로 귀결됐다. 그것이 경제 역사였다.
일부에서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화폐 공급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인플레이션 유발 인자는 돈의 절대량이 아니다. 그것이 움직이는 속도다. 화폐유통속도는 사상 최저 수준이다. 미국에서 1997년 2.2였던 속도가 2021년 1분기 1.1226으로 떨어졌다. 화폐유통속도는 대공황이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보다 느리고 지속해서 느려진다. 과다 부채가 화폐유통속도 저하의 원인이다.
거시경제에서 주요 변수는 순국가저축이다. 부채는 저축을 감소시킨다. 저축은 경제와 물리적 투자의 원천이다. 저축이 줄어들면 투자가 줄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는다. 부채는 또 총수요 증가를 막는다. 투자와 소비가 늘 수 없으니 화폐유통속도가 빨라질 수 없다. 반도체 등 특정 부문의 투자 증가만으론 한계가 있다. 지나친 부채 상황에서 화폐유통속도 저하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일시적 인플레이션이 있을 수 있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기간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부채가 지나치게 늘수록 화폐유통속도는 떨어진다. 총수요는 줄어든다. 특정 부문의 일시적 가격 오름세는 가능하지만, 지속적이며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은 그런 조건에서는 불가능하다.

   
▲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60만 명을 넘어선 2021년 6월10일 텍사스주 휴스턴의 아트 스튜디오 벽면에 사망자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REUTERS

과다 부채의 족쇄
인플레이션에는 연료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그 연료가 돈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무차별로 공급되는 돈은 분명 인플레이션의 한 요소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공급망과 수요다. 만약 공급망이 복원되지 않는다면 물가가 상당 기간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공급망 복원은 시간문제다. 북미에서 셰일오일 생산이 재개되고, 문을 닫았던 생산자들이 공장 가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수요는 어떤가?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가 일시에 분출할 수 있다. 그것이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장기적으로 부채에 갇힌 경제주체의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팬데믹에 따라 평균 사망률을 웃도는 초과사망자 역시 총수요 감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021년 6월6일 기준으로 미국에서만 61만 명 넘게 사망했다. 세계적으로 374만 명이 죽었다.
인간의 생명 자체가 경제 자원이다. 개개인은 생산자이자 소비자다. 개인이 사고나 질병으로 조기 사망하지 않았다면 더 살았을 추가 햇수를 ‘잠재수명 손실연수’라고 한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잠재수명 손실연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과학적 통계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코로나19가 아니면 몇 년 혹은 몇십 년 더 경제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경제 자원이 사라진 것은 분명하다. 총수요 감소는 불가피하다.
사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글로벌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국가별 편차가 크다. 주요 20개국에서도 물가상승률이 2% 이하인 나라가 많다. 일본, 스위스,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이 대표적이다(국가별로 2021년 4·5월 기준). 일부 국가의 인플레이션을 세계적 현상이라고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다. 선진국에선 백신 접종률 증가 추세가 주춤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12살 이하 어린이도 접종 사각지대에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팬데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국은 여전히 그 수렁 속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요 폭발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난 40년은 디스인플레이션 시대였다.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더 강한 세월이었다. 팬데믹이 엷어진다고 이런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까? 기저효과와 공급망 혼란에서 유발된 인플레이션 기간은 생각보다 짧을 수 있다. “현재 지속되는 유의미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단기에 그칠 것이다. 중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약화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강화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현재 기업들은 회복 국면의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팬데믹 때의 몇 배에 이르는 주문을 한다. 반도체 등 특정 부문의 투자도 봇물이 터지듯 한다. 이르면 2021년 말 혹은 2022년 초에 과잉 투자를 동반한 심각한 재고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디플레이션 원인의 하나가 과잉 투자, 과다 재고다. 여전히 세계는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의 선악을 떠나 디플레이션 압력은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그것은 ‘뉴노멀’(새 표준)이다.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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