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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유희, 관료 그리고 자유
[김국현의 IT 인문학]
[10호] 2011년 02월 01일 (화) 김국현 economyinsight@hani.co.kr

게임이란 참 신묘하다. 그 순간만큼은 무념무상 속으로 나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현실과 분리된 환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게임의 매력이다.
출근하고 집안일하고 공부하는 우리의 일상. 이 당연한 듯 보이는 일정한 질서, 평화로운 일상이란 결국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과 노동을 해야 하는 ‘벌어먹기 위한 치사하지만 반복적 삶’이 포장된 것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반복적이고 평온한 일상, 그렇지만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모인 사회의 일상은 늘 위태롭다. 일상을 일상답게 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사회를 움직이기 위한 전제 조건인 일상을 방해할 만한 모든 것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성스러움을 추구했고 그것을 이벤트화했다. 달력의 빨간 날이 모두 어느 시점에서 그런 성스러움의 날이었음은 우연이 아니다. 종교는 그렇게 일상의 부조리를 덮어버릴 수 있는 얼개가 된다. 그러나 종교가 지닌 규율적 의미가 퇴색한 현대. 벗어날 수 없는 무거운 현실과 별로 지켜내고 싶지 않은 일상을 대체할 만한 저 너머의 세계를 종교가 대변해주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을까?
일본의 번화가마다 파친코 게임장이 있다. 공허한 표정의 사람들은 가까스로 일상의 끝을 붙잡고 있는 듯하다. 언제 누가 칭찬 한번 해준 적 있었나? 그러나 파친코 기계는 번쩍이며 잘했다고 용기를 준다. 언제 누가 희망을 말한 적 있었나? 그러나 파친코 기계는 언젠가 구슬을 쏟아낼 것만 같은 표정이다.
유희는 그렇게 일상의 냉혹함을 어루만진다. PC방도 마찬가지다. 담배 연기 자욱한 공간에서 괴로운 일상이 치유되는 것이다. 문예비평가 로제 카유아는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야말로 일상을 지키는, 즉 유희를 통해 폭력과 중독과 미신과 이중인격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이들
최근 “주차장 지붕 때문에 게임 심의 좌절”이라는 실화 개그는 인터넷에서 수없이 회자되면서 게임 심의 문제를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옮겨놓았다. 게임 하나 심의받기 위해 여러 단계의 복잡한 절차를 밟으며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결국 세들어 있는 오피스텔의 주차장 지붕이 불법이라 허가가 나지 못했다는 사연은 수천 번 트윗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급기야 게임등급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해명까지 하게 되었다.
사실상 정부 산하 기구에 의한 사전심의 제도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드문 일인데다, 그 절차의 절망적 부조리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스마트 시대’로 상징되는 시대 변화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사전심의 제도 탓에 한국의 게임들은 기회를 잃고 있다. 이 위기감은 게임 따위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편이 좋다고 진심으로 믿는 듯한 이들의 간절함 앞에서는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지난 1월19일 서울 시내의 한 PC방에서 게임하고 있는 청소년들.

사람들은 게임이 사회에 미치는 폐단을 조목조목 나열한다. 타당하기도 하고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중 ‘중독성’과 ‘의존성’에 대한 논거는 특히 가족이 그런 처지에 있다면 백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게임에 빠져 일상을 등한시한 피해는 누군가가 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고, 일상을 지켜주리라 기대했던 유희가 광신적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침범한다면 이에 대해 집단적 질타가 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 사전 심의나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처럼 정부도 질타에 나선다. 그런데 이 질타가 정부기구의 지배관계에 의해 이뤄지는 일이 타당할까? 이 물음은 우리를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초적 질문으로 되돌려버린다. 한낱 유희를 다루는 문제가 이처럼 권위에 대한 복종을 전제로 이뤄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꽤나 자유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자유의 힘을 믿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자유가 주어지는 순간 그 자유를 살릴 수 있는 목표를 찾지 못한다면 고독과 불안에 휩싸이고, 그 자유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한다. 급기야 자유야말로 자신의 행복을 위협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복종의 권위주의로 치닫게 된다.
사행성을 규제한다는 미명하에 창조력에 기반한 신생 산업이 고사되는, 실로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애초에 존재 의미가 모호한 게임산업진흥법은 여전히 온존하고 있다. ‘자유를 견딜 수 없는 사회’에 유희는 사치인 것인가?

현실 밖 가능성의 세계와 현실 속 관료
전세계적으로 정부에 의한 사전심의 제도를 채택한 곳은 거의 없다. 세계 각국도 게임의 등급을 매기고는 있지만, 북미의 오락소프트웨어등급위원회(ESRB)는 민간 자율 기구이며, 일본의 컴퓨터오락등급기구(CERO)는 비영리활동법인, 유럽의 범유럽게임정보(PEGI)는 범정부적 비영리단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게임회사들은 스스로 사회에 적합한 유희를 제공하는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 즉 영속적 비즈니스를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등급 심사에 참여하고, 각 시장은 등급품만 유통한다. 푸코가 말했듯, 감시받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스스로를 감시하는 제2의 감시자가 생겨나게 돼 있다. 인간의 내면에서 스스로를 규율하는 힘은 자유의 끝에 생겨난다. 우리는 타인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규율하는 자유로운 주체를 기다릴 줄 몰랐다. 다만, 자유로운 정글의 무질서에 겁먹고 이를 참지 못해 가까스로 얻은 자유를 권력에 내주며 포기한다. 사회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었던 자생적 판단력을 그렇게 다시 국가와 정부와 관료에게 되돌린다.
사전 등급 심의가 법에 지정된 관료기구에 의해 집행된다는 것도 걱정거리다. 게임을 포함한 온라인 영역에서는 ‘민주주의의 실험실’이라 불릴 만큼 새로운 제도의 실험이 지구적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자생적으로 규율이 정비되는 소중한 사고 실험을 짓밟으며 현실의 관료제가 개입하는 것은 문화적으로도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다.
굳이 파킨슨의 법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관료 조직은 업무와 무관하게 생겨나고 팽창하는 속성을 지녔다. 내 식구를 만들고 내 영토를 만들려는 감투의 욕망이 온라인마저 넘보는 것 또한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관료제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본래 목적과 무관하게 일을 벌이면서 부풀어간다. 게임산업진흥법의 본래 목적도 진흥에 있다. 그런데 산업의 진흥이란 늘 자유의 힘, 창조력이 있을 때 가능하고, 그것은 늘 관료보다 더 우월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 인생을 건 개인적 관심과 사적 영리에 대한 이해관계를 지닌 당사자, 즉 창업가에 의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늘 다섯 가지가 없다고 말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예산 없다, 인력 없다, 규정 없다, 전례 없다, 담당자 없다.” 그런데 역시 이 다섯 가지가 없는 상태에서 펼쳐지는 것이 창업이자 예술이고, 게임도 그중 하나다. 애초에 관료제로 이해 가능한 세계가 아닌 셈이다.
한 줌의 심의위원이 변별력을 지니지 못한 우민을 위해 등급을 지정한다는 발상은 실로 전근대적으로 건방지다. 베버는 “근대적 관료제가 틀에 박힌 인간만 양산하면서 인간의 삶을 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소화에 대한 살아 있는 실증 자료를 21세기의 한국이 지금 만들어가려는 셈이다.
goodhyu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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