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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환호에 가려진 잃어버린 20년
[CULTURE & BIZ] 2021년 한국 영화계 빛과 어둠
[134호] 2021년 06월 01일 (화)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 영화 <미나리> 감독과 출연진. 판씨네마 제공


결국 해냈다. 2021년 4월25일(현지시각)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6개 부문 후보로 오른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 할머니로 열연한 윤여정 배우가 예상대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기대를 모은 감독상이나 작품상 부문은 놓쳤지만 그의 수상으로 2020년 아카데미에서 영화 <기생충>이 받은 한국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미나리>가 이어갔다.
엄밀히 말해 <미나리>는 미국 제작사와 자본이 만든 미국 영화다. 그럼에도 이민 2세 한국계 감독과 배우 윤여정·한예리 같은 한국 배우들이 참여해 한국 이민자의 삶을 다룬 영화이기에 사실상 한국 영화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아카데미 수상 소식이 전해져 한국 영화계는 또 한 차례 경사를 자축했다.
이웃 일본에서도 1957년 영화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의 아시아 배우 수상이라며 이번 수상을 반겼다. 특히 일본 경제 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한국과의 차이가 점점 커지는 일본 영화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생충>에 이은 한국 영화의 선전과 비교하며 “왜 우리는 아카데미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나”라며 한탄했다.
이 기사는 “일본에도 재능 있는 감독이 많지만 대부분 감독의 수입이 직장인 평균 연봉인 436만엔(약 446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해마다 4천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영화계에 지원한다. 일본은 2010년부터 한국 콘텐츠 지원 정책과 비슷한 대규모 영화 지원 정책 ‘쿨 재팬’을 시행했다. 하지만 제작 현장에서 느끼는 효과는 미미하다.
기사에서는 국가 지원에 힘입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 영화에 대해 나름 아시아 영화 종주국을 자처해온 일본 영화계가 지닌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또 콘텐츠 지원에 소극적인 일본 정부와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 영화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한국 영화계는 세계적으로 주목과 부러움을 받았지만 내부에서 느끼는 한국 영화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다. 어떻게 보면 위기 상황이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관 수입 격감
2020년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영화계는 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영화관 수입은 전년 대비 73.3% 줄어든 510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 영화가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섰던 2000년대 초반에 준하는 수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서 쓴 표현을 빌리자면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던 수치”가 한순간에 사라진 셈이다.
물론 코로나19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영화관만이 아니라 연극, 공연 등 오프라인 콘텐츠 부문에서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코로나 위기가 끝나면 다시 원래 수치로 돌아가리라 전망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업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영화계를 둘러싼 환경의 급속한 변화다. 영화산업이 예전과 같은 성장세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가장 큰 요인은 소비 행태의 변화다. 이른바 홈시네마로 통칭되는 영화 소비의 개인화와 함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같은 방식의 소비 행태가 점점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가정에서 간단하게 영화관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프로젝터 시장 규모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뒤 급성장했다. 삼성전자가 9년 만에 프로젝터 시장에 재진출할 정도다. 쇼핑몰 관련 상품 매출은 전년 대비 50% 가까이 성장했다. 고품질 영상을 시청하는 블루레이 플레이어 매출은 212%나 늘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미디어의 성장은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코로나 위기가 끝난 뒤에도 영화 소비 형태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뉴노멀(새 표준)의 탄생이다. 현재 영화 부문 전체 매출에서 50% 이상 차지하는 극장 매출이 현저하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 코로나 위기가 장기간 지속돼 한국 영화산업의 체력이 약해진 것도 위기 요인이다.
개봉 연기와 작품 제작 중단 등으로 많은 제작사와 관련 업체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계는 지금 상황이 1년 더 지속된다면 많은 영화사가 문 닫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물론 정부도 어느 정도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 2020년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로 한국 영화계가 사상 최대 위기를 맞은 가운데, 한국상영관협회 등 영화관 관계자들이 2021년 5월12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영화관 업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견된 위기
코로나 위기로 그동안 한국 영화계가 감춰왔던 여러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진행 중이던 한국 영화의 위기가 코로나 사태로 빨리 가시화한 것일 뿐 어차피 겪을 일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세하고 빈약했던 한국 영화산업이 아카데미상을 받는 수준까지 성장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핵심 요인은 모태펀드 등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공적 지원과 멀티플렉스로 상징되는 극장 위주의 외형 확대로 요약된다. 일본 기사에서도 지적됐듯이, 지금의 한국 영화산업이 있게 한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시대는 바뀌었고 달라진 환경에서 이런 시스템이 가진 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는 몇 차례 위기를 겪었다. 멀티플렉스 확장과 맞물려 한국 영화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2000년대 중반 인터넷으로 불법 유통이 성행해 타격을 입었다. 또 상업적 흥행만 노린 장르 편중 현상이 지나쳐 관객에게 외면당했다. 2005년 하반기부터 2006년 상반기까지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 <괴물>이 잇달아 천만 관객 흥행을 하면서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6년 하반기에 이 추세가 꺾였다. 잇단 흥행 실패로 전체 수익률이 -22.9%를 기록하며 한국 영화 위기론이 제기됐다.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꺼지면서 그나마 수익을 뒷받침해주던 일본 시장마저 사라졌다.

체질 개선 필요한 때
한계에 이른 한국 영화에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그동안 외면했던 부가 시장의 성장이었다. 2차 판권 시장이 커지며 어느 정도 수익률을 담보할 수 있자 투자 심리가 살아났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얘기처럼, 한국 영화는 2000년대 후반 위기를 극복하자마자 다시 10년간 한국 영화 2차 전성기를 향해 달려간다.
현재 위기는 생태계의 근본 변화에 기인한다. 장르 편중이나 다양성은 늘 있었던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다. 극장 위주의 매출 구조 역시 항상 지적됐던 부분이다. 기존 영화시장의 틀을 깰 계기가 마땅치 않았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로 야기된 한국 영화계 위기가 이런 틀을 깰 좋은 기회라고 많은 관계자는 말한다.
먼저 영화계 스스로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극장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다른 매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고예산 영화보다 중·저예산 영화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극장용 고예산 영화와 온라인 전용 중·저예산 영화로 라인업을 다양화하면 매출 구조가 자연스럽게 바뀐다. 부가 매출을 올리기 위한 영화 제작사의 사업다각화도 필요하다. 기획 단계부터 다른 분야와 적극 협업해 캐릭터 등 관련 상품, 출판, 온라인 프리퀄(과거 시점을 다룬 속편)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영화계는 극장 중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수록 더 많은 기회가 펼쳐진다. 넷플릭스 같은 OTT 미디어를 경쟁자로 볼 필요가 없다.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 사업구조를 바꾼다면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쳐도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이 길러진다. 물론 일시적으로 배급사나 투자자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시대는 급격히 바뀌고 있다. 많은 사람이 경고했던 것이 압축돼 나타나는 지금, 영화계에는 달라져야 살아남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방송 제작사들은 유튜브를 포함한 온라인 동영상 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출판사들은 전자책·오디오북 제작 같은 새로운 시도로 살아남으려 애쓴다.
다행인 것은 최근 영화계 전반에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는 몇 번의 위기를 거치며 아카데미상을 연속 수상하는 콘텐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번 위기도 잘 극복한다면 분명 지난 20년의 성장을 뛰어넘는 또 다른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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