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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득 우대하는 낡은 세제 바꿀 때
[FINANCE] 주요국 증세 움직임
[134호] 2021년 06월 01일 (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1년 4월1일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법인세 인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상한 데 이어 자본이득세를 두 배 가까이 올리겠다고 밝혔다. REUTERS


주요국의 증세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법인세와 자본이득세를 올리려 하고, 독일 등은 부유세를 부활하려 시도한다. 증세 논의가 활발한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대응과 경기부양을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가 재정건전성 보완과 양극화 완화를 위해 증세를 권장한다.
사람들은 흔히 국가가 세금을 징수하는 이유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 조달에 있다고 믿는다. 일리 있다. 하지만 재원 조달과 재정건전성 확보란 차원에서만 증세를 논의하는 건 본질을 벗어났다. 세금은 재원으로서 기능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이용 혹은 배분이란 경제 원칙을 달성하는 주요 수단이다.

부자 증세의 한계
국가는 세금을 통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세금으로 정부는 특정 행동을 장려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담배에 세금을 부과하고 부동산 투기 방지를 위해 양도세를 중과한다. 특정 행위를 막기 위한 ‘죄악세’다. 어떤 행위를 장려하는 수단으로 기업의 설비 투자에 세금을 깎아주는 게 대표적이다. 투자 촉진이 공적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세금이 가진 또 하나의 주요 기능은 소득분포 개선이다. 정부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세금을 이용할 수 있다. 부자 증세로 하위 계층의 복지를 강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시장 기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의 배분을 강제로 이루려는 수단이 세금이다.
그런 점에서 눈에 띄는 증세 논의가 있다.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 인상이다. 그것도 미국과 영국 등 자본주의 대표 국가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불을 댕긴 것은 미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을 팔 때 생기는 자본이득, 즉 투자 수익에 대한 세율을 현재 20%에서 39.6%로 두 배 가까이 올리려 한다.
물론 투자 수익이 100만달러(약 11억원)를 넘을 때의 얘기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른바 ‘부자 증세’임을 강조한다. 사실 100만달러 이상의 투자 수익을 거두는 사람은 극히 적다. 미국에선 상위 0.3% 가구가 해당한다. ‘핀셋 증세’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는 보편 증세에 있지 않다. 미국의 고소득층에 유리한 조세 구조를 고치는 데 방점이 찍혔다. 경기부양에 쓸 재원을 마련함과 동시에 고소득층에 유리한 체계를 바로잡아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현재 각국의 증세 논의는 미국 사례에서 보듯이 부자 증세를 통한 불평등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얼핏 최선의 방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핀셋 증세는 핵심을 놓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의 세제는 낡은 체제의 산물이다. 새 시대에 어울리는 세제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변화는 생각보다 느리다. 낡은 세제의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불평등과 저성장이란 세계경제의 구조적 모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구조적 문제
주요국은 팬데믹을 극복해가고 있다. 경제는 확실히 나아졌다. 2022년에도 그럴 수 있을까? 기저효과가 사라진 경제는 다시 정체 현상을 보이거나 침체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는 바이러스 발생 이전에 안고 있던 거대한 문제를 팬데믹 극복 과정에서 더욱 키웠다. 불평등과 불균형, 그로 인한 만성적 저성장이다. 그것은 팬데믹 극복 이후 더욱 확연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고착화한 것의 정체는 명확하지도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분명 실재하지만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설사 알고 있더라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세금 시스템이다.
미국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생산성이 지속해서 높아졌지만 시간당 평균임금은 그렇지 않다. 1948~1979년에는 생산성과 비례해 움직였으나 이후 정체됐다. 미국경제정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1948~1979년 생산성은 108.1%, 시간당 임금은 93.2% 증가했다. 서로 비례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79~2018년에는 생산성이 69.6% 올라갔지만 시간당 임금은 1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생산성 향상은 보통 투자의 결과물이다. 신기술을 습득한 노동자에 의해서도 이뤄지지만, 대부분은 기업이 더 좋은 장비나 도구에 투자했을 때 발생한다. 투자하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자본이 부족한 시기엔 그것을 끌어들여 투자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선 1978년과 1981년에 투자 소득, 즉 자본이득에 우대해주는 세제 변화가 있었다. 부족한 자본을 투자로 이끌기 위한 방책이었다. 투자 자본에 대한 세율이 낮아지면서 기업주는 노동을 절약할 수 있는 기술에 투자한다. 이로써 기업은 노동 투입량을 늘리지 않고도 더 많은 산출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임금 정체로 이어졌다. 그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중산층 몰락, 계층 불평등 심화가 시작됐다.
이런 세제는 과거에 의미가 있었다. 자본이 풍부하지 않았을 때다. 저축과 투자는 성장을 촉진한다. 이들을 장려하려면 유인책이 필요하다. 세율을 낮춰 잉여자본을 가진 사람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투자와 저축에 대한 일종의 보상책이다. 과거엔 이런 정책이 지극히 공익적이었다. 특히 금리가 높았던 시절에 그것은 필수적이었다. 고금리란 자본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자본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유인책으로 세율을 낮추는 것만큼 좋은 당근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초저금리로 돈이 넘쳐난다. 투자 자본 부족은 더 이상 없다. 미친 듯 오르는 주식시장은 외려 자본 과잉을 염려할 정도다. 그런데 세제는 여전히 노동보다 투자에 더 많은 보상을 해준다. 세제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부분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른다.
한국만 해도 노동 소득에는 가차 없이 과세하지만 투자 소득에는 후한 세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건강한 투자가 아닌 자본이득도 우대한다는 것이다. 연봉 7천만원을 받는 직장인의 소득세율은 24%다. 편의상 공제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다. 반면 주식투자로 7천만원을 번 전업 투자자에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2023년에야 과세가 시작된다. 그것도 주식양도소득을 비롯한 모든 금융상품을 통해 얻는 수익을 합쳐 5천만원 이하일 때는 비과세다. 3억원 이하에는 20% 세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이 상황에서 부유층이 자본이득으로 돈을 벌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업주는 급여 대신 스톡옵션으로 이득을 취하려 하고, 자본가는 자산시장 투자로 이익을 보려 한다. 노동보다 투자를 우대하는 세제가 자본의 투자 행위, 그것도 자산시장 투자를 부채질한다.

잘못된 처방
오늘날 기업이 건강한 투자를 머뭇거리는 건 돈 때문이 아니다. 정책을 포함한 불확실성과 지속적인 수요 부족이 주된 이유다. 혹은 자본이득이 건강한 투자 수익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성장을 선도하는 주요 기업들이 건강한 투자 대신 가상자산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주된 이유다.
수요 부족이 주된 이유라면 소득을 저축으로 향하게 하는 세제는 의미가 없다. 소득이 더 많은 실질 수요로 가게끔 물꼬를 터줘야 한다. 하위 50% 가구의 소비 여력을 늘려줘야 한다. 이들이 더 많은 가계소득을 얻어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다시 말해 버는 돈을 즉시 소비할 수밖에 없는 계층의 소득을 높여주는 정책이 절실하다. 실질 수요가 증가하면 별다른 세제 우대 혜택이 없더라도 기업은 건강한 투자를 하게 된다.
자본이득이 건강한 설비, 인적 투자로 얻는 이득보다 큰 것이 문제라면 세제는 당연히 자본이득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본이득이 아니라 실제 설비나 인적 투자에 보상하는 세제가 필요하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민간투자를 대체해야 한다. 이런 투자가 기업들의 실질 수요를 만들어내고 이는 다시 고용·가계소득 확충, 소비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자본이득보다 실제 상품과 서비스 구매에 더 많은 보상을 하는 정책이 필요한 시대다. 오늘의 구조적 문제는 노동을 뛰어넘는 자본이득 우대 정책에 있다. 노동이 밥이 되고, 집이 되고, 노후의 편안함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넘쳐나는 돈이 투자란 명목으로 자산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가히 광풍이라 할 수 있는 자산시장의 고공행진 뒤에 초저금리와 낡은 세금 시스템이 있다. 최소한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 우대 정책은 폐기할 때가 됐다. 돈이 넘쳐나는 시대다. 자본이득을 우대해서는 결코 자본이 건강한 투자로 향하지 않는다.
세금이 단순히 국가의 재원 조달 기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책 목표를 위해 강력한 수단이어야 한다. 물론 그 목표는 건강한 경제여야 한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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