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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과 체제 전환의 지난한 두 길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녹색복지국가를 향하여 ③ 녹색전환
[134호] 2021년 06월 01일 (화) 이창곤 goni@hani.co.kr
   
▲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4월2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세계기후정상회의가 열린 데 이어 5월 서울에서 P4G정상회의(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가 개최되면서 기후위기, 탄소중립,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개념이 언론에 많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이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고, 논의가 적절했는지 등을 다룬 국내 언론의 심층 보도는 눈에 띄지 않았다.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생태 위기의 심각성에 여전히 둔감한 우리 사회의 태도와 이해 수준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생태 위기 담론, 이제는 비전과 전략으로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 위기를 향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언론·미디어와 학계의 역할이 한층 더 강화돼야 하는 것은 물론 그 담론의 중심도 ‘경고’에서 비전과 전략에 무게를 둔 ‘대안’으로 분명하게 이동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학계와 언론·미디어가 천착해야 할 개념은 녹색전환이다. 생태 위기를 환경이나 에너지문제라는 “기술관료적 이해와 대응의 좁은 틀”을 넘어,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하고, 녹색정치와 복지국가란 큰 틀에서 대응을 모색하는 이념이자 비전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거대한 문제인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인 녹색전환에 대해 최병두 대구대 명예교수는 2020년 환경부가 발간한 책 <녹색전환>에서 말했다. “학술 개념으로 체계화되지 않았고, 대중적 합의를 구축하지 못했다. 근본적인 사회 생태적 변화를 개념화할 용어로 사용할 수 있다.” 아직 널리 쓰이지 않고 모호하지만 △녹색성장 △에너지전환 △지속가능한 발전 등 기존 개념의 핵심을 포괄하면서 그 한계를 넘어설 개념이란 논지에서다. 기존 개념의 한계에 대해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장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1987년에 발간된 유엔 환경과 발전에 관한 세계위원회의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확립된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요구를 충족하는 발전”을 뜻한다. 구 소장에 따르면 이 개념은 지속가능성과 발전이란 두 특성을 결합한 개념이지만, 지속적인 개발과 경제성장이라는 의미가 중심에 있다.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은 부차적인 수식어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실상 기존 체제의 유지·개량을 지향하는 개념으로 쓰일 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가 국가발전 기본 전략으로 주창하면서 비교적 꽤 널리 쓰인 개념이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는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기후변화와 환경 훼손을 줄이고 청정에너지와 녹색기술을 연구·개발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나가는 등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성장”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 개념은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와 가치로 전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후변화와 환경 훼손을 줄이는 일을 부차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개념”이라고 구 소장은 설명한다. “기술 개발과 약간의 제도 개선으로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에 대처하면서 산업자본주의를 온전히 성장시키는 전략이 내포된 개념”이란 것이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내재한 성장 담론에 녹색 가치를 적당히 버무려변형된 성장 담론이며 ‘그린 워싱’이란 비판도 있다.
구 소장은 이에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면서 녹색전환을 주창했다. 그에게 녹색전환은 “공업 중심, 인류 중심의 기존 체제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담론”이며 “인간이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공업 중심의 사회경제체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생명과 생태 중심의 틀로 바꾸는 장기 과정”이다.
녹색전환 주창자들에게 전환의 궁극적 도달점은 탄소사회의 종말이며 탈탄소사회다. 환경은 물론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란 녹색 가치가 실현되는 녹색사회다. 그들은 녹색전환에 두 개의 길이 동시에 전개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하나는 인식의 전환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경제체제의 전환이다. 전자는 “자연을 (공존의 터가 아닌) 지배의 대상, 성장의 수단으로만 인식해선 더는 안 된다”는 인식 전환의 길이며, 후자는 인식 전환으로 “지구 시스템을 위기에 처하도록 한 탄소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는 사회경제체제 전환의 길이다.

반드시 승리해야 할 기나긴 싸움
그러나 어떤 이념적 구상도 현실이란 통로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념과 현실의 간극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다. 이념적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강조하지만 현실에서 녹색전환 과정은 “우리가 경험하는 구체적인 현실과 조건” 속에서 전진과 퇴행을 반복하며 전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환은 불가피하게 “점증적 이행”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모든 이념과 비전이 그렇듯 “결국 현실 정치사회 구조의 행위자, 제도 등의 관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김수진 고려사이버대학 강사)이다.
역사와 현실은 한 사회에서 작은 정책 하나를 바꾸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지 일깨워준다. 하물며 바꿔야 할 대상이 기득권으로 얽히고설킨 강력한 행위자들과 결합된 강고한 신자유주의적 탄소자본주의 시스템이다. 녹색전환에서 난관은 현 탄소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각 분야의 수많은 행위자의 저항과 그들이 조장하는 왜곡과 편견, 우리 안의 익숙한 관성 등 숱한 “장벽들”(조효제 성공회대 교수)과의 지난한 싸움이다. 다만 “너무 늦기 전에” 반드시 승리해야 할 싸움이다.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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