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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비용 적어 규모 늘려도 무방
[ISSUE] 국가채무 논란
[133호] 2021년 05월 01일 (토)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가채무 부담이 전례 없이 낮아지면서 정부가 돈을 적극적으로 풀고 있다. 재정 보수주의는 이를 두고 미친 짓이라고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21년 3월10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왼쪽)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1조9천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기 부양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뒤 열린 기념식에서 ‘미국 구조 계획’이라고 이름 붙인 이 법안을 내보이고 있다. REUTERS

2021년 3월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례적인 경기부양안을 발표했다. 1조8600만달러(약 1119조5900억원) 규모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9%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2020년 12월 9천만달러 부양책에 이은 재정지출로, 3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는 인프라·교육 예산을 뺀 액수다.
이례적인 점은 액수 말고도 또 있다. (의회 지원 기구로 미 행정부의 예산안을 분석·평가하는) 의회예산국(CBO)은 국내총생산에 견준 국가채무가 바이든 행정부의 예산안을 빼더라도 2021년 100%에서 2050년 20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화폐 자산인 달러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정신 나간 도박일까? 아니면 다른 선진국처럼 미국의 국가채무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걸까?
분명한 사실은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벌어진 논쟁과는 한참 다른 논쟁이 오간다는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재정을 줄여야 나랏빚을 빨리 줄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 지금은 정부가 채무 한도를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이런 변화가 생긴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정부가 돈을 써야
우선 중앙은행의 정책이다. 유럽과 미국, 일본, 영국의 중앙은행은 대출비용을 낮추고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금리를 안정시키려 한다. 그런데 중앙은행 영향력이 바로 미치는 단기금리는 이미 0% 한계선을 찍어 더는 건드릴 수 없어졌다. 금리를 낮게 유지해야 하는 중앙은행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로 국채를 계속 사들인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주면 정부는 좋지만 침체된 경기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다. 디지털·교육·인프라·에너지 등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고 완전고용에 가까워지려면 재정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마침 정부가 재정을 마련할 여건이 완전히 바뀌었다. 프랑스 사례를 보자. 프랑스 GDP 대비 국가채무는 2000년 1분기 59.6%에서 2020년 말 120%로 두 배 늘었다. 반면 그동안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GDP 대비 3%에서 1.4%로 절반 이상 줄었다. 돈이 마땅한 투자처를 기다리며 통장에 쌓이고, 이렇게 은행에 돈이 넘쳐나니 돈의 가격(금리)이 내려갔다. 게다가 중앙은행은 중장기 금리를 지금처럼 계속 낮게 끌어줄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가 지금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빚 부담이 줄어든 정부가 돈을 왕창 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돈이 필요한 정부가 채권을 찍지(돈을 빌려 쓰지) 못하게 가로막는 진짜 걸림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GDP 대비 국가채무가 60%일 때보다 120%일 때 정부가 실질적으로 치르는 부담이 적은데, GDP 대비 국가채무 수치만 바라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유동적인 ‘플로’(한 해 총생산량)에 고정적인 ‘스톡’(누적된 빚의 총량)을 얹어놓고 빚이 이렇게 많다고 하는 셈이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플로(GDP 혹은 국내총지출)에 견줘야 하는 것은 같은 플로(한 해 이자비용)다. 정부가 돈을 끌어오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지금까지 낸 평균보다 높지 않으면 적자재정을 지속해도 좋다고 미국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과 로런스 서머스가 얘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은 정부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말이다.

   
▲ 2021년 2월8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최근 금리가 살짝 오르는 모습이 보이자 곧장 금리 안정에 나섰다. REUTERS

미친 적자재정?
재정 보수주의는 이런 식으로 정부가 돈을 푸는 건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비판한다. 금리가 낮으면 돈을 빌릴 때야 좋지만, 금리가 갑자기 뛰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며 따져 묻는다. 이론에 충실한 이 질문에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자면, 금리가 그렇게 빨리 오를 리 없다는 것이다. 돈이 예·적금 통장으로 쏠리는 현상은 금방 해결될 일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다.
세계 인구의 평균연령이 꾸준히 높아지고 점점 많은 사람이 노후에 쓸 돈을 움켜쥐고 있다. 여윳돈을 많이 저축해둔 부유층의 자산이 더 불어나는 사이, 나머지 가계는 살 집을 마련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불균형이 악화한다. 기업은 오래전부터 투자하기보다 배당금 나눠주기에 더 열심이거나, 투자해도 투자비용이 끝 모르고 낮아지는 디지털 자산에 집중한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현 자본주의 구조가 통째로 뒤집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더구나 세계 중앙은행들은 국채 금리를 낮게 유지하려고 앞으로 몇 년은 시장 개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몇 주 금리가 살짝 오르는 모습이 보이자 곧장 금리 안정에 나섰다.

인플레이션 두려움
그때 유럽 금리가 상승한 까닭은 바이든의 경기부양안에 있었다. 투자자들은 새 대통령이 돈을 너무 많이 풀어 수요가 늘어나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물가가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빌려준 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투자자가 미국에서 금리를 올려달라고 하자 그 충격이 유럽까지 ‘전파’된 것이다. 물가 상승과 이에 따른 금리 인상이 일어나지 않게 정부가 채권을 그만 발행해야 할까?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를 지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나틱시스은행 경제자문위원 파트리크 아르튀스는 “블랑샤르가 무역수지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내수 시장이 뛸 때마다 미국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때 물가가 오르는 게 아니라 수입이 늘어나는 현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블랑샤르 생각은 다르다. 그는 경기가 회복돼 실업률이 낮아지고 임금이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아르튀스는 또 반박한다. 미국의 공식 실업률이 6.2%라고 한다. 이는 고용시장에서 소외돼 일할 의욕을 잃었지만 일이 있으면 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빼놓은 수치다. 그런 이들을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10%에 가깝다. 실제 임금이 상승할 때까지 끌어올려야 할 고용률 폭이 그만큼 더 크다는 뜻이다.
영국 중앙은행(BOE)의 수석경제학자 앤디 홀데인은 “코로나19 위기로 불확실성이 전례 없이 높아져 인플레이션이 생길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결국 금리도 불확실하다. “지금껏 이렇게 큰 충격을 받은 적도, 통 큰 부양책을 쓴 사례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한동안은 금리가 반등할 위험이 적고, 장기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을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적자재정의 여파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장기 상환 기간의 장점
좋은 소식은 이 모든 걱정을 한번에 해결해줄 해법이 있다는 것이다. 국채 상환 기간을 늘려주면 된다. 프랑스에서 국채 상환 기간은 평균 8년6개월이다. 2021년 1월 정부는 금리 0.593%에 50년 만기로 70억유로를 빌렸다. 프랑스 정부에 돈을 빌려주겠다고 모인 투자자가 제시한 액수는 750억유로에 이르렀다. 물론 마이너스 금리에 10년 만기 채권을 찍으면 이자비용이 덜 든다. 하지만 차이가 거의 없다. 채무 상환 기간을 넉넉하게 두면 금리가 올라 상환 부담이 커지는 때를 늦출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정부가 돈을 빌려 쓸 여력이 지금만큼 큰 적이 없었다. 지금이 부채비용을 관리하면서 사회(돌봄·의료·청년), 생산(연구개발), 환경 모델을 바꿀 절호의 기회다. 어쨌거나 바이든 대통령이 실현하려는 목표는 이와 맞닿아 있어 보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을 지낸 가디너 민스가 그랬다. 뉴딜정책의 성공은 “관점의 변화”에 있다고. 미국의 새 대통령도 지금 관점의 변화를 시도하는 건 아닐까.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1년 3월호(제410호)
Y a-t-il une limite à la dette publique?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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