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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과 성장 그리고 경제구조
[박상인의 경제직설]
[129호] 2021년 01월 01일 (금) 박상인 sanpark@snu.ac.kr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

   
▲ 한국 자동차산업의 원·하청 구조는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불평등 해소와 포용적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현대차 제조공장 모습. 연합뉴스

불평등과 경제성장에 대해 여러 이론·실증적 연구가 경제학에서 최근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실 불평등이란 용어는 경제 측면뿐 아니라 정치·사회 측면도 포괄한다. 이 글에선 경제학 논의에서 주로 쓰는 소득 불균등의 의미로 불평등을 협소하게 정의해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다.
초기 경제학적 논의에선 소득 재분배 정책이 저축·투자·혁신에 대한 유인을 줄일 수 있으므로, 강력한 재분배 정책은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뤘다.
한편으로 경제발전론 측면에서, 불평등한 상황일지라도 어느 정도 소득을 가진 소수가 인적자본이나 금융자산에 투자할 수 있으면, 경제성장이 시작되고 성장 효과가 다른 소외계층에게도 확대되면서 경제가 발전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최근에는 불평등과 성장이 부정적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이론·실증적 논의가 더 많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불평등으로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투자 회수 불안감을 키워 오히려 투자가 저해된다는 것이다. 경제발전론적 측면에서 봐도 극단적인 저소득 상황이 아니라면, 좀더 많은 사람이 인적자본이나 금융자산을 축적하도록 균등하게 소득이 배분되는 것이 오히려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소득 불균등과 성장에 대한 긍정적 상관관계를 주로 강조했던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에는 가처분소득의 불균등 수준이 낮을수록 경제성장이 더 높고 지속적임을 확인하는 실증연구를 내놓고 있다.
극단적인 재분배 정책이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그렇지 않을 때는 재분배 정책 자체가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실증적 연구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란 아이디어로 요약될 수 있겠다.
한국 경험을 보면, 1980~94년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득 불균등도 감소하나, 1994년 이후부터는 소득 불균등이 계속 증가하다가 2010년대 들어 등락하면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994년 이후 소득 불균등이 증가한 근본 원인으로, 대다수 연구자는 노동소득 불균등 확대를 꼽는다. 물론 개별 노동자의 임금과 가계 수준의 소득이 다르고, 자영업이나 특수고용노동자의 증가, 노인 1인 가구 비중 증가와 노인 빈곤 등 다양한 요인도 있다.
그럼에도 1994년 이후 소득 불균등이 늘어난 가장 큰 요인은 임금소득 격차가 커진 데 있다. 임금소득 격차 확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확대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등을 반영한다. 결국 한국에서 노동소득 불균등의 근본 원인은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있다.
이런 경제구조 아래, 소득의 공적 이전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공적 이전 자체가 소득 불균등을 완화하는 효과는 굉장히 미미하다. 그 이유는 임금수준과 연금, 고용보험 혜택의 비례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취업자는 임금노동자와 비임금노동자로 나뉘는데, 비임금노동자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자영업자 대부분과 특수고용노동자의 상당수가 포함된 개념이다.
그런데 비임금노동자 대부분과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이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실정이다. 임금·비임금 노동자를 합친 전체 취업자의 절반 정도만 고용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임금이나 취약 업종 노동자는 대부분 국민연금 기여분이 적고 가입 기간도 짧다.
결국 임금소득과 밀접하게 연동된 지금의 사회안전망은 임금소득 불균등이 심한 상황에서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이에 비해 사회부조 성격의 노인연금 도입은 소득 불균등 개선에 큰 구실을 했다. 따라서 사회보험 위주의 사회안전망이 가지는 한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도 요구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동소득 불균등의 근본 원인인 경제구조의 개혁 없이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가 노동소득 불균등의 근본 원인임을 이해하기 위해 자동차산업을 살펴보자.
현대자동차의 실적이 좋았던 시기인 2011~2014년 자료를 보면, 현대차 수익률이 100이면 어림잡아 1차 벤더(중간 유통업자)는 60~65, 2차 벤더는 30~40을 기록했다. 이 수익률 구조는 재벌 대기업, 1차 벤더에 해당하는 중견·중소기업, 2차 벤더인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와 거의 동일하다. 즉, 한국에서 대기업·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란 바로 이 단가 후려치기에 기초한 하청 구조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발짝 더 들어가보면, 현대차는 노사협약에 따라 정규직이 퇴직하면 정규직을 뽑게 돼 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신규 충원이 필요할 때 정규직을 안 뽑고 거의 비정규직만 뽑아왔다.
노동자 처지에서 대기업 비정규직과 경쟁하는 노동시장은 1차 벤더에 해당하는 기업의 정규직이 되고, 결국 대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이 1차 벤더의 정규직 임금과 거의 같아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자동차산업은 우리 노동시장의 단절적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재벌 대기업 중심의 전속적 하청 구조를 바뀌지 않고서는 임금 불균등, 소득 불균등의 문제를 해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불평등 해소와 포용적 성장은 연목구어(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것)인 셈이다.

*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한국 경제의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해 직격하는 논설형 칼럼으로, 재벌 개혁 등 여러 경제 현안을 제기하며 대안 또한 제시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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