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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버느냐, 어떻게 쓰느냐
[정혁준의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129호] 2021년 01월 01일 (금) 정혁준 june@hani.co.kr
   
▲ 유일한 박사와 딸 유재라 여사. 유한양행 누리집

1960년 3월15일, 대통령과 부통령을 함께 뽑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해 자유당은 기업에서 돈을 걷었다. 자유당은 선거비용과 정권 유지를 위해 정치자금이 필요했다. 기업에 여러 특혜를 주는 대신 반대급부로 정치자금을 챙겨왔다. 대부분 회사는 자유당의 정치자금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냈다.

어떻게 벌 것인가
한 기업은 달랐다. 자유당이 유한양행에 3억환(옛 화폐 단위)을 정치자금으로 은밀히 요구했지만, 유한양행은 끝까지 내지 않았다. 그러자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뒤따랐다. 유한양행에 세무서 직원이 몰려왔다. 그들은 유한양행 경리 장부를 압수해 일일이 조사했다. 정상적으로 일하기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유한양행이 자유당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세무서는 유한양행에 6천만환의 탈세 혐의를 씌워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유한양행 임원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경찰이었다. 치안국 경제계 형사 17명이 유한양행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사무실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탈세 증거를 찾으려 했다. 회계과장 직원을 치안국 지하실로 끌고 가서 고문하기도 했다. 세무서 직원과 형사는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지만, 이들 역시 지쳐갔다. 위에서 시켜 탈세 조사를 벌였지만 탈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당은 3·15 부정선거를 치르기 위해 56개 기업에 62억9천환을 끌어모았지만,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 정권은 부정선거로 무너졌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 역시, 이승만 정부처럼 기업에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유한양행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치자금을 건네주고 권력에 잘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국세청이 강도 높은 세무 사찰을 벌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달 동안 조사해도 탈세 사실을 밝혀내기 힘들었다. 오히려 세무서 직원들이 탈세 없는 장부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탈세 혐의로 조사가 힘들어지자, 이번에 빼든 건 약 함량 분석이었다. 세무조사로 나오는 게 없자 약점을 잡기 위해 방향을 튼 거였다.
관계 당국은 유한양행이 제대로 된 함량으로 약을 팔고 있는지 과학기술처에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세무 당국은 결국 손을 들었다.
권력자의 불법적인 요청을 단칼에 거부한 사람은 유한양행 최고경영자(CEO)인 유일한 박사였다. 당시 많은 임원이 정치자금을 줘야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건의했다. 그런데도 유일한 박사는 원칙을 지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끝내 세무 당국은 유한양행에 국세청 선정 모범 납세업체라는 동제 현판을 보내주기도 했다. 유일한 박사는 1968년 ‘세금의 날’ 기념식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유한양행은 기업을 투명하게 경영하고, 무엇보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서 세무 사찰이 나와도 걸릴 게 없도록 했다. 세금 납부는 국민과 기업의 기본 의무라는 창업자의 생각을 경영이념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정경유착, 부정부패, 관치금융, 부동산 투기, 황제경영, 문어발식 확장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유한양행은 이런 원칙이 있었기에 그런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한국 대기업들이 ‘절세’라는 이름으로 탈세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승계한 점과 견줘보면, 유한양행은 그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어떻게 쓸 것인가
1971년 3월11일 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기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들에게 회사를 넘겨주지도 않았다. 회사 임원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건 우리나라에서 유한양행이 사실상 최초였다.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쯤 되는 1991년 3월18일, 유 박사의 딸 유재라 여사가 63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 여사도 아버지 뜻을 따라 200억원 재산을 공익재단인 유한재단에 기증했다. 남긴 재산은 아버지 유 박사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었다. 스스로 모은 것이었다. 유 여사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유한양행 주식을 사 모아 21만5천 주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서울 대방동 집터 1800평을 유한재단에 기증했다.
유일한 박사 이야기는 나와 관계없는 어느 훌륭한 기업가가 펼친 노블레스 오블리주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돈벌기가 목적인 사람을 종종 본다. 하지만 돈은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 역시 중요하다.
요즘엔 이른 시일 안에 돈을 모아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40대 초반까지는 조기 은퇴하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돈을 모으는 파이어족(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 모은 돈을 어떻게 쓸지를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모으는 것 자체에 재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다음엔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보는 게 좋다. 유일한 박사처럼 사회에 기부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힘들게 번 돈을 어떻게 의미 있게 쓸지 고민해보란 얘기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그럴 만한 돈이 없어 그런 생각을 못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보다 돈이 훨씬 많은 기업 임원 역시 상당수가 그렇게 답한다.

* 몇 해 전 나온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에서 중고생 18%가 “10년 감옥 사는 한이 있어도 10억원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해 논란이 됐다. 돈을 향한 비뚤어진 가치관은 ‘물신주의’를 향해 내달리는 우리 사회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매일 돈과 관련한 정보가 쏟아지지만, 정작 돈과 우리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에는 익숙지 않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독자와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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