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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세력으로 떠오른 케이팝 팬들
[TREND] 새로운 팬덤 현상
[128호] 2020년 12월 01일 (화) 카타리나 그라사 페테르스 economyinsight@hani.co.kr

서구에선 케이팝을 깊이가 없는 10대들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케이팝 팬들은 케이팝을 정치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카타리나 그라사 페테르스 Katharina Graça Peters
<슈피겔> 아시아 정치 담당 기자·한국 특파원

   
▲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12월31일 미국 뉴욕에서 공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캐서린 보언(39)은 혁명도 멋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 어디 해볼까’라고 생각하면서 2020년 6월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털사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선거 유세장 좌석을 예약만 하고 참석하지 말자는 제안이었다.
좌석을 예약하는 데는 전화번호만 필요했다. 보언이 온라인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렇게 쉽게 만들다니 멍청한 일이지요.” 그는 미국 여성으로 약국에서 일한다. 혼자 12개 좌석을 예약했다. 자신과 남편, 세 아이, 친척 자리까지 예약했다. 예약한 뒤, 보언은 집이 있는 조지아주에서 1159㎞ 떨어진 오클라호마주 유세장으로 가지 않았다.
가장 먼저 틱톡(중국 동영상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에서, 이후엔 트위터에서 수많은 케이팝 팬이 이 속임수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보언은 그중 한 명이었다. 그의 침실에는 케이팝 그룹 BTS(방탄소년단) 포스터가 붙어 있다.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보라색으로 염색했는데, 보라색은 BTS 공식 색상이다.

BTS 팬이 트럼프 유세장에 가지 않은 이유
트럼프는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던 선거 유세를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도시 털사에서 다시 시작했다. 이 선택은 강한 비판에 부딪혔다. 1921년 털사에서 백인 군중이 수많은 흑인을 살해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BTS는 트럼프가 유세장에 등장하기 전 6월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 운동과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소속사와 함께 100만달러를 이 운동에 기부했다. 팬들도 따로 기금을 모아서 보탰다. BTS는 트위터에서만 300만 명의 팔로어가 있다. 선거 유세 며칠 전 트럼프는 100만 명이 선거 유세장 입장권을 신청했다고 떠벌렸다. 하지만 결국 6200명만 참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텅 빈 유세장에서 말해야 했다.
털사에서 트럼프가 당한 치욕이 전적으로 보언과 그와 뜻을 같이한 무리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행동은 새 움직임을 홍보하고 그 권력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움직임은 진보적 가치와 다양성을 옹호하며,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디지털을 이용해 조직을 꾸리며, 지역별로 공격한다.
민주당의 차세대 스타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트위터에 “케이팝 연대여, 여러분은 정의를 향한 투쟁에 기여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고 높이 평가합니다”라고 썼다.
사람들은 케이팝 팬을 자신의 스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케이팝이 정치세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반대로 많은 한국 팬은 외국에서 케이팝이 정치와 연결되는 것에 놀라면서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포럼에는 트럼프 선거 유세 방해 이후 많은 댓글이 달렸다. “케이팝을 거기에 들이밀지 마라.” 혹은 “왜 케이팝을 미국의 논쟁에 끌어들이는가?” 등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서구에서 케이팝은 얄팍한 10대 음악으로 치부됐다. 케이팝은 종종 고전 팝과 힙합, 일렉트릭댄스 음악을 섞는 스타일을 보여줬다. 독일, 특히 나이 든 층에서는 이국적인 문화 정도로 알고 있다.
케이팝은 오래전부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장르다. 가장 성공적인 케이팝 밴드인 BTS는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0.3%를 차지한다. 2019년 한국의 문화 관련 수출은 전년보다 22.4% 상승했다.
한국의 케이팝 가수 에릭남(31)이 말했다. “케이팝은 세계적 음악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두 문화 안에 살며 일한다. 이는 많은 오해를 낳았다.” 에릭남은 한국어와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미국에서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20살에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가수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산다. 그는 외국에서 자랐기에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고 한다. 한국 음악산업에 대해 그처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중 음악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혁명적이거나 정치적인 대중 음악인이 많은 서구의 틀에 동아시아에서 온 가수는 들어맞지 않는다. 동아시아 스타들은 규칙을 지킨다. 그들은 호텔 방을 망가뜨리거나 하지 않는다. 솜씨 좋게 만들어진 뮤직비디오에서 그룹 멤버들은 꿈에서나 나올 법한 파스텔톤 배경에서 노래한다.
그들은 종종 자신에게 힘을 부여하는 방법에 대해 노래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노래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케이팝 그룹인 블랙핑크나 BTS를 인터뷰하기 원한다면, 홍보 담당자가 질문 목록을 요구할 것이다. 질문이 너무 비판적이면 삭제한다.
얼마 전 경제잡지 <포브스>는 케이팝 팬과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해커 단체인 어나니머스와 비교했다. 케이팝 팬이 조직적이고 독창적으로 트럼프 보이콧을 벌였기 때문이다.
털사 사건이 있기 전, 6월에 선거캠프는 트위터로 트럼프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케이팝 팬들은 트럼프에게 디지털 생일카드를 폭탄처럼 쏟아부었는데, 카드가 아니라 한국 가수들이 춤추는 영상이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경찰이 경찰 앱에 BLM 시위와 관련한 불법행위를 찍은 익명의 비디오를 보내달라고 글을 올렸다. 많은 이가 시위자들을 감시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케이팝 팬들은 이 앱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비디오 클립을 대량으로 전송했다.
전세계 케이팝 팬은 과거에도 좀 다르긴 했다. 그들은 스타를 숭배하는 대신 스타를 전파하는 홍보대사라고 자처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들의 과제는 스타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8월부터 보언은 스마트폰에 쉬지 않고 BTS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틀었다. 수백만 팬이 보언과 똑같이 한 덕분에, 이 노래는 케이팝 사상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 BTS 추종자들은 다른 기록을 세우는 데도 공을 세웠다.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24시간 안에 조회수 1억100만 건을 기록하도록 했다. 신기록이었다.

   
▲ 촛불시위에 동참한 한국의 케이팝 팬들처럼 미국 케이팝 팬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내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 걸린 BTS 사진. 연합뉴스

케이팝 팬의 정치화 방식
서구 팬들의 정치화는 지난 몇 년간 천천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성소수자 운동과 강하게 엮여 있었다. 이 운동은 소셜미디어가 없었다면 사라졌을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로 연대를 강화했고 주목받았다.
BTS 노래 가운데 ‘자신에게 힘을 부여하는 법’에 관한 것이 있다. 이 노랫말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보라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보언은 인구 3천 명의 작은 도시에 산다.
그곳에선 여기저기 트럼프를 지지하는 푯말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보언에게 “왜 너는 그렇게 다르냐”고 종종 물었다. 보언은 대부분 공화당 지지자인 친척들과는 짧게만 만난다.
“BLM 시위와 트럼프 대통령의 적대적인 태도가 전환점이었다.” 케이틀린 파노 애드킨스는 미국 플로리다주 출신의 흑인 대학생으로 15년 전부터 케이팝 팬이었다. 그는 팬 커뮤니티 안에서 반인종주의 운동을 퍼뜨린 이 중 한 명이다.
“노래 한 곡을 수백만 번 재생할 수 있는 디지털 동원 방식은 정치 행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애드킨스는 말했다. “어떤 시위에서 행동가들은 우리에게 ‘케이팝 팬 여러분, 참여해주세요!’라고 권고한다.”
서울에 사는 여성 한형승(19)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그룹이 미국 국내 정치에 연루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는 BTS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믿는다. 한형승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에 그가 BTS 노래를 8만 번 들었다고 나와 있다.
한형승은 학교에서 겪는 압박과 자아에 대한 의심을 담은 BTS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을 되찾았다고 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노래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에선 누군가가 유명할수록 점점 더 많이 스스로를 드러낸다. 한국에서는 좀 다르다. 유명할수록 정치에는 무관심해야 한다.”
2019년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BTS 공연 티켓이 매진됐을 때, 서구 TV쇼 진행자들은 이 그룹에 대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농담을 던졌다. 노래하고 춤추고 랩을 하는 젊은이들이 화장하고 염색한 모습이 그들이 가진 남성성에 대한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부드러운 미적 요소가 필요하다. 슈퍼스타로 성공하려면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 다년간 훈련받아야 하고 행동가짐 훈련도 받아야 한다. 사생활을 포기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리얼리티쇼에선 스타의 일상 전체를 훑는다. BTS 안무는 미국 보이 밴드 안무보다 훨씬 어렵고, 그들의 얼굴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매끈하다.
가사는 깊이가 있지만 항상 조심스럽게 사회 안에서 고통받는 개인을 그려낸다. 사회비판은 다루지 않는다. BTS는 한 노래에서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고 압박하는 부모 때문에 절망한 10대를 그렸다. “다른 이의 꿈에 붙잡히지 마”라고 노래했다.
한국 음악이 혁명의 문화와 연관이 없는 것은 한국 역사와도 관련 있다. 한국은 몇십 년 만에 전쟁이 일어난 나라에서 과학기술이 뛰어난 나라로 뛰어올랐다. 한국 대중가요는 과거에도 지금도 기적적으로 성공한 한국 경제의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 세계적인 인기만큼 정치적 메시지의 중심에 선 BTS 멤버들이 2020년 1월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2회 그래미상 수상식장에 도착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Jim Ruymen/ UPI

다른 처지의 한국과 미국의 케이팝 팬들
한국 대중가요에서 추구하는 내용은 항상 모든 게 이전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삶이나 일의 모든 영역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 문화 전반에 깊이 새겨졌다. 최근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신기록을 세웠을 때,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BTS에 축전을 보냈다.
미국에서처럼 케이팝을 통해 차별을 극복하려 하는 소수자 집단은 한국에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동성애만큼은 한국에서 금기다. 동성애자들은 케이팝 네트워크 안에서 드러내놓고 조직을 만들 수 없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좌파 진영의 의견 차이가 크다. 한국 문화는 미국 문화와 다르다. 한국에선 자신의 명확한 견해를 밝히는 것을 금기시한다. 어떤 입장을 명확히 나타내면 그 결과가 금방 되돌아온다.
2019년 케이팝 가수 설리가 자살했다.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인물이 되었다. 이는 미투운동(성폭행이나 성희롱을 여론의 힘을 결집해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것) 이래 한국인이 얼마나 힘들게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지 보여준다. 여전히 연예인에 대한 한국의 이상형을 깨려는 케이팝 스타는 어려움을 겪는다. “정치 성향을 밝힌 스타 중 오직 한 명만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형승이 말했다.
미국 교포 출신 가수 에릭남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개적으로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 그는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팬들은 내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안다.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교육받고 의료 혜택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BTS 멤버 7명은 처음부터 다른 케이팝 스타들과 달랐다. 그들은 같이 활동하지만 부분적으로 자신들에 관한 글을 쓴다. 그래서 덜 가식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은 유니세프 홍보대사가 되었다. BLM 운동을 지지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에 확고한 생각을 말하는 것엔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아마 한국 팬들이 직접 이런 상황을 바꾸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던 2016∼2017년 한국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케이팝 팬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콘서트에 참여했고 LED 조명을 흔들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시위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것은 함께 노래하는 일이다.”

ⓒ Der spiegel 2020년 제41호
Der Neue Schwarm
번역 이상익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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