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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시총 2위, 사모펀드 투자로 휘청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헬릭스미스
[128호] 2020년 12월 01일 (화) 박종오 pjo22@edaily.co.kr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 2019년 코스닥 시가총액 2위 바이오기업, 2005년 국내 증시에 특례 상장한 1호 회사. 정부가 공인한 혁신형 제약기업인 헬릭스미스가 위기를 맞고 있다. 헬릭스미스 누리집

이 회사에 붙는 수식어는 많다. 2019년 코스닥 시가총액 2위에 올랐던 바이오기업. 1996년 서울대 학내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기술력을 인정받아, 9년 만인 2005년 국내 증시에 특례 상장한 1호 회사. 정부가 공인한 혁신형 제약기업.
최대 주주이기도 한 대표이사 이력은 더 화려하다. 서울대 학사,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하버드대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학 박사를 거쳐 하버드대학 의대 조교수, 서울대 교수를 지냈다. 그와 함께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의 석·박사급 연구 인력은 76명에 이른다.
이처럼 ‘스펙 왕’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코스닥 상장사 헬릭스미스(옛 바이로메드)가 위기를 맞았다. 부실 사모펀드 투자 논란과 상장 폐지 후보(관리 종목)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서다.

주주가 낸 돈 2600억원,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
이 상장회사가 사모펀드 사태에 얽힌 건 투자자에게서 받은 돈으로 고위험 펀드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서다.
헬릭스미스는 유전자 치료제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아직 상용화에 성공한 신약은 없다. 회사는 매년 적자를 낸다. 들어오는 돈은 적은 데 신약 연구개발에 쓰는 지출은 많기 때문이다.
연간 매출액은 40억원 안팎이다. 건강기능식품과 피부보습제를 팔아서 버는 돈이다. 반면 신약 연구개발비 지출액은 2019년 400억원을 넘어섰다. 헬릭스미스 매출에서 직원 월급 등 판매관리비와 연구개발비를 뺀 영업 적자는 2019년 420억원 정도였다.
신약 개발은 달리기에 비유하면 마라톤과 같다.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해 전임상과 임상 1~3상을 거쳐 품목 허가를 받고 최종 판매에 이르기까지 평균 10년 내외가 걸린다. 신약 개발을 준비하는 일반 바이오기업처럼 헬릭스미스도 주로 회사 주식을 발행해 주주 등 투자자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조달한다.
문제는 이렇게 마련한 돈을 고위험 금융상품에 넣었다는 점이다. 헬릭스미스가 2016년부터 최근까지 신주와 전환사채를 발행해 주주와 금융회사 등 외부 투자자로부터 조달한 자금은 약 4800억원이다. 같은 기간 회사가 사모펀드와 파생상품 등 손실 위험이 큰 금융상품에 투자한 금액은 그 절반이 넘는 2600억원가량이다.
물론 회사 사정도 일부 이해할 수 있다. 당장 연구개발비로 지출하지 않고 쌓인 돈을 이자 한 푼이라도 더 주는 상품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해명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주식을 사들여 투자금을 댄 주주들은 이런 사실을 감쪽같이 몰랐다. 헬릭스미스가 주식을 발행할 때 주주들이 납입한 돈을 신용등급이 우수한 제1금융권 예금 등 안전한 상품에 예치하겠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관리종목 지정 우려에 속 끓는 주주들
소액주주들은 회사를 향한 배신감보다 절박함을 더 크게 느끼는 분위기다. 헬릭스미스의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 때문이다. 투자자 돈을 엉뚱한 곳에 쓴 회사를 상대로 문제 제기하기에 앞서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는 것이다.
헬릭스미스의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 사실이 드러난 계기가 바로 회사가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추진한 유상증자였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심사받는 과정에서 사모펀드 등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 세부 내용을 처음 공개한 것이다.
헬릭스미스는 2019년 세전 순손실액(법인세 차감 전 계속사업 손실)이 1082억원이고 1년 전보다 3배 넘게 증가했다. 기대주였던 당뇨병 신경병증 치료제인 ‘엔젠시스’가 2019년 미국 임상 3상에서 고배를 마신 여파다.
바이오기업은 임상 3상부터 지출한 연구개발비를 회사 비용이 아닌 무형자산으로 반영할 수 있다. 지금 쓰는 돈이 미래에 회사 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봐서다. 하지만 헬릭스미스는 임상 3상 실패에 따라 그간 개발비 자산에 반영했던 818억원을 한꺼번에 회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이 때문에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이 커졌다. 코스닥 상장사는 최근 3년 중 2년간 자기자본에서 세전 순손실이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초과하면 관리종목 지정 대상에 해당한다. 상장 폐지 예비후보가 되는 셈이다.
헬릭스미스는 2019년 이 비율이 50%를 넘었다. 2020년 상반기에도 33.3%를 기록해 관리종목 지정 턱밑에 도달했다. 회사의 연간 적자를 최대한 줄이거나 자기자본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연내 신주 750만 주를 새로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주주들에게서 추가로 자금을 조달해 자본을 확충하고 관리종목 지정 우려를 해소하려는 고육지책이다.
현재 상황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헬릭스미스가 투자한 사모펀드 가운데 이미 부실이 기정사실이 된 펀드도 일부 포함됐다. 최근 검찰 수사에서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지른 것이 적발돼 폐업한 팝펀딩 연계 펀드가 대표적이다. 사모펀드 투자 손실액이 재무제표에 추가 반영되면 회사가 증자로 조달해야 하는 자본 규모가 예상보다 늘어날 수 있다.
헬릭스미스 소액주주는 6만 명이 넘는다. 일부 투자자는 이미 태운 돈이 억대다. 주가 하락으로 이미 큰 투자 손실을 보고서도 관리종목 지정만은 피하길 바라는 주주들의 간절함을 이해할 수 있다. 한때 코스닥 시장의 바이오 대어로 불리던 헬릭스미스를 향한 시장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데, 부활을 기대하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 바이오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최대 관건은 결국 신약 개발의 성공 여부다.
헬릭스미스의 사모펀드 투자 논란이 자본시장과 금융 당국에 시사하는 것은 제도 보완 필요성이다. 여전히 적잖은 상장사가 주주로부터 조달한 자금을 깜깜이로 굴린다. 사모펀드는 그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사적 투자기구 성격이 강해서 투자자 신원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사모펀드에 투자한 주체가 불특정 다수의 주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사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모펀드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만큼이나 소액주주의 권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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