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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감염 방지와 환자 고독의 딜레마
[LIFE] 코로나 시대의 요양시설 ①
[127호] 2020년 11월 01일 (일) 코르넬리아 슈메르갈 economyinsight@hani.co.kr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따른 요양시설 면회 금지로 입소자와 그 가족이 괴로워한다. 노인들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고립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르넬리아 슈메르갈 Cornelia Schmergal <슈피겔> 기자

   
▲ 요양원에서 지내는 89살 할머니가 그의 이웃 사람들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나고 있다. REUTERS

에델가르트 뷘쉬는 훨씬 더 힘든 시절도 겪었다. 1945년 독일 베를린에서 폭격이 있던 밤, 뷘쉬와 부모는 집 지하실에 파묻혔다. 전쟁이 끝난 뒤 어머니가 장티푸스에 걸렸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결핵 환자가 피를 토하는 모습도 봤다. 그러니까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감당할 수 있다고 이 89살 여성은 말했다. 단지 모든 접촉을 피해야 하는 비상사태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 무서울 뿐이다.
2020년 7월 어느 날, 뷘쉬는 엄밀히 말하면 그가 사는 바이에른의 양로원에서 여전히 합법적이지 않은 일을 감행했다. 조카 손을 잡은 것이다. 서로 껴안고 뺨을 맞대는 일은 뷘쉬에게 대화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소통 형태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닿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그랬다.” 보조침대에 앉은 뷘쉬의 조카 페트라 히칭거가 말했다.
히칭거는 어린 시절 이모인 뷘쉬와 한집에 살았다. ‘어머니의 날’이 되면 히칭거는 선물을 두 개 준비해서 한 개는 이모에게 주었다. 히칭거에게 뷘쉬는 “두 번째 어머니”고, 노부인에게 조카딸은 “가장 중요한 외부 세계와의 접촉 통로”다. 양로원에 입소한 뒤 뷘쉬에게는 조카가 방문해 조카와 함께 나가는 야외 소풍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이러스가 일상을 덮치고, 코로나19 방역 조처가 시작됐다. 3월13일 바이에른주 총리 마르쿠스 죄더는 노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뮌헨 리엠 지역에 있는 요양시설 루이제키젤바흐하우스는 모든 방문객 출입을 금지했다. 히칭거도 오지 못하게 되었다.
뷘쉬에게 남은 것은 조카가 일주일에 한 번 양로원 정문으로 가져다주는 잡지, 요구르트, 빵에 발라 먹는 소시지가 담긴 봉투뿐이었다. 히칭거는 봉투를 현관 첫 번째 유리문 뒤에 놔둬야 했다. 그 안쪽 두 번째 문 뒤에서 이모는 그저 문이 조금이라도 천천히 닫히기만을 바라며 조카를 바라봤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요양시설에 침투하면 참담한 사태가 벌어진다. 나이가 많을수록 감염 사망률이 높다.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에 따르면 독일 코로나19 사망자 중 85%가 70살 이상이다. RKI 연구소장 로타르 휠러가 보고하는 새로 발견된 ‘집단감염 사례’는 대부분 양로시설 감염이다.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건 당국은 방역을 위한 요양시설 면허 금지 조처와 입소 노인들의 고독이란 인권 사이에서 좀체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REUTERS

바이러스
볼프스부르크의 한 요양시설에서 입소자 40여 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뷔르츠부르크의 양로원에선 25명이 희생됐다. 뷘쉬가 있는 뮌헨의 루이제키젤바흐하우스에선 8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입소자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는 건 시설 책임자에겐 악몽과도 같다.
요양시설 입소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 연방주는 2020년 3월 극단적인 조처를 했다. 대부분 주에서 방문객 출입을 금지하고, 입소자의 외출을 막았다.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가운데 국가가 국민에게 부과한 가장 심각한 자유의 제한이었다.
이 엄격한 조처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삶을 얼마나 제한할 수 있는가? 생명 보호가 자동으로 모든 것에 우선한다면 인간의 존엄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보건부 장관 카를 요제프 라우만에게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내리기 힘들었던 결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요양시설 방문 금지”라고 답했다. 양로원 상황을 이야기할 때 이 기독교민주연합(CDU) 소속 정치가는 괴로워했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삶의 마지막 몇 달을 보낸다. 당연히 그들은 그 기간에 혼자여서는 안 된다.”
이 문제로 매일 수백 통의 편지를 받는다고 라우만 장관은 말했다. 편지에는 “우리 엄마가 반응이 없어졌다”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사실 엄격한 관리 규정은 이미 완화됐어야 한다. 엄격한 방역 조처를 지키는 것을 전제로 5월부터 독일 전역에서 요양시설 방문이 다시 가능해졌다. 하지만 각 주 보건부에서 허용하는 범위가 다르다. 연방요양전권대표 안드레아스 베스터펠하우스는 아직도 봉쇄 해제 조처를 실행하는 데 “매우 주저하는” 시설이 있다고 경고하지만, 각 주는 벌써 2차 코로나19 유행으로 재봉쇄 조처를 걱정하고 있다. 가장 공포에 떠는 이는 뷘쉬 같은 요양시설 입소자다.
어쩌면 4월 말까지 윤리위원회 위원장을 한 신학자 페터 다브록처럼 냉정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야 할지도 모른다. “목숨을 건지더라도 사회적으로 사망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고독
처음에 뷘쉬는 격리를 유머 감각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조카가 생필품을 내려놓는 유리문 뒤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양로원 현관 앞을 오가는 입소자 가족과 이들이 두고 가는 선물 바구니를 보면서 뮌헨의 카를스광장 스타흐하우스처럼 붐빈다고 농담했다. 그의 곁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문 옆에 놓인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구르릉거렸다. 고양이는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데, 노부인은 건물에서 나갈 수 없었다. 뷘쉬는 시간이 지나자 “감옥에 갇힌 것”처럼 느껴졌다.
조카 방문도, 야외 소풍도, 친구와 만나는 것도 금지됐다. 우느니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전화조차 하기 싫은 날도 있었다. “우울증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텔레비전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점심은 공동 식당이 아니라 개인 방에서 먹어야 했다. 노래, 체조, 그림 등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활동이 취소됐다. 공허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양로원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집은 장소가 아니라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그 순간이다.
절망은 차단벽 다른 쪽에서 도달했다. 양로원 차단벽을 기어오르는 아들, 몰래 복도에 숨어드는 남편이 있었다. 다른 양로원은 경비원을 고용했다.
첫 봉쇄 해제의 날이 왔다. 양로원 직원들이 카페의 테이블을 한데 모으고, 아크릴 칸막이를 중간에 세웠다. 45분 동안 홀 방문이 허용됐다. 하지만 뷘쉬는 이날 자기 방에 머물렀다. 뷘쉬는 “너무 시끄러워서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나았다”고 조카가 덧붙였다.
7월부터 히칭거가 다시 이모의 방을 방문하는 것이 허용됐다.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그래도 분리벽은 없다. 두 사람은 이제 바이러스가 다시 대유행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뷘쉬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안전한 고립인가? 아니면 조카의 손을 잡을 기회인가?
“나는 너를 만나고 싶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89살 이모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방문하지 않을 거예요. 이모를 감염시킬까봐 너무 무서워요.” 조카가 답했다.

   
▲ 코로나19는 노인에게 특히 가혹하다. 감염되면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큰데다, 가족과의 만남은 물론 서로 소통할 기회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다. REUTERS

딜레마
3층 아래 활짝 열린 창문 앞에 라벤더가 만개했다. 7월 어느 날, 코로나19 대유행은 이곳과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팬데믹은 이 양로원의 일상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층 사무실에서 양로원 원장 슈테판 링케는 표지에 굵은 글씨로 ‘코로나’라고 쓰인 두툼한 서류철을 넘기고 있었다. 이 서류철에 그는 요양시설 감독 기관에서 보낸 편지부터 바이에른 주정부의 지시까지, ‘2020 팬데믹의 해’ 여름에 시설 책임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모두 모아뒀다.
“여전히 힘들다. 우리는 규칙을 가장 잘 이행할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링케가 시설 관리인부터 주방 도우미까지 직원 120명 모두에게 새 규정을 즉시 알려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직원 절반 이상의 모국어가 독일어가 아니다. 게다가 엄격한 규정에서 예외가 있지 않은지 묻는 입소자 가족이 있다.
거의 매주 고령의 입소자를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들이 양로원으로 돌아오면, 규정에 따라 ‘보호적 간호 및 관리 조처’를 해야 한다. 링케는 다른 입소자들에 대한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병원에 다녀온 노인을 자가격리할지 결정해야 한다.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을 모두 격리한다면 감염 예방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입소자 중 절반 이상이 치매 상태라면 어떻게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가? 치매에 걸려 주기적으로 시설을 빠져나가 헤매는 노인에게 어떻게 방에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가?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사람이 쓰다듬을 때만 웃는 환자를 어떻게 개별적으로 격리해야 하는가?
요양시설 책임자라면 피할 수 없는 딜레마다. 입소자를 엄격하게 보호할수록, 그들의 일상을 더욱 제한해야 한다. 방역 규정이 해석의 여지가 넓을수록 링케의 책임이 무거워진다. “비상 시기에 양로원을 봉쇄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순차적으로 다시 개방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코로나19는 마치 재앙처럼 요양시설을 덮쳤다. 링케는 3월 중순 152명이 거주하는 요양시설을 하루아침에 봉쇄했다. 다른 주총리보다 빠르게 시행한 조처였다. 바이에른주에서 확진자 수가 빠르게 늘었기에 입소자를 보호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며칠 뒤 코로나19가 링케의 시설에 침투했다. 90대 여성 한 명이 감염돼 그날 밤쓰러졌다. 환자의 세탁물을 갈아준 숙직자 2명도 감염됐다. 열흘 뒤 환자가 사망했다. 최종적으로 직원 14명과 입소자 23명이 감염됐다.
링케는 몇 주간 긴급 상황을 겪었다. 입소자와 직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하고, 자가격리 장소를 설치했다. 마스크를 구하고, 직원에게 바이러스 방지 가운을 입는 방법을 교육했다. 지금까지 링케가 한 일은 모두 올바른 조처였던 것 같다.
5월 초순, 자신의 양로원이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을 때, 마르쿠스 죄더 주총리가 ‘어머니의 날’ 외부 방문객 출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링케에게 남은 시간은 닷새뿐이었다. 그 안에 방역 계획을 세우고, 1층 만남의 장소에 투명 칸막이를 설치해야 했다. “장관급 공무원 가운데 어느 사람도 시각·청각·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투명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7월 초부터 방문객은 다시 입소자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 다시 링케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갔다. “우리는 모든 방을 감시할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나다.”

ⓒ Der Supigel 2020년 제34호
Eine Frage der Würde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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