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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0 게임회사 10년 만에 30조 된 이유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크래프톤
[127호] 2020년 11월 01일 (일) 박종오 pjo22@edaily.co.kr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 크래프톤의 이사회 의장은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2007년 <리니지> 개발 주역인 박용현 넷게임즈 대표와 함께 크래프톤을 차렸다. ‘2019 글로벌 혁신성장포럼’에서 장 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 전 매출 ‘0원’이던 회사가 죽음의 계곡을 지나 기업가치 30조원을 인정받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가히 경영 신화라 할 만하다. 이 회사는 2021년 국내 주식시장 상장을 준비하는 게임업체 ‘크래프톤’이다.

‘새 시대 사람’이 선보인 온라인 총싸움 게임
“새 시대 사람이로구먼.”
리용남 전 북한 내각부총리는 크래프톤 창업자를 이렇게 불렀다.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경제계 인사 회동 자리에서다. 그가 새 시대 사람이라고 칭한 것은 크래프톤의 장병규 이사회 의장이다.
장 의장은 게임업체 네오위즈와 검색업체 첫눈 등을 창업하고, 2007년 리니지 개발 주역인 박용현 넷게임즈 대표와 함께 크래프톤을 차렸다. 그는 현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 1·2기를 이끈 위원장으로 알려졌다.
게이머들은 장 의장의 크래프톤을 1인칭 서바이벌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 제작사로 기억한다. <배틀그라운드>는 가상의 외딴섬에서 최대 100명의 게이머가 1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총과 무기를 들고 생존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것은 크래프톤이 아니다. 크래프톤의 100% 자회사인 펍지다. 펍지는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본래 이름인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만든 약자다.
크래프톤은 2015년 펍지를 인수했다. 펍지가 크래프톤 밑에서 <배틀그라운드>를 출시한 것은 2년 뒤인 2017년이다. 크래프톤 경영 실적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진다.

매출 0원에서 연 1조원 넘는 회사로 성장
매출이 0인 회사가 존재할까? 정답은 ‘있다’.
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 돈을 벌지 않고 비용만 쏟아부으면 된다. 크래프톤의 2008~2010년이 그랬다. (많은 재무제표를 봤지만 매출액이 ‘0원’인 회사는 처음 봤다. 숫자를 잘못 적은 줄 알았다.)
매출 없이 비용만 지출하면 쓴 돈은 고스란히 회사 손실로 돌아온다. 크래프톤은 2008~2010년 누적 적자 367억원을 냈다. 창업 직후 쏟아부은 투자비다.
이후에도 6년간 약 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창업 초기 단계인 기업이 통과해야 하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지나온 시기다.
고난의 시절을 견딘 크래프톤은 창업 10년 만인 2017년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자회사 펍지가 출시한 <배틀그라운드>가 큰 인기를 얻으며 돈을 쓸어담았다.
크래프톤 매출액은 2016년 372억원에서 2017년 3104억원으로 8배 늘었다. 이듬해엔 매출 1조원을 돌파하고 2020년 들어 반년 사이 9천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달성했다.
게임산업은 제조업처럼 기계설비나 원재료가 필요하지 않아 개발한 게임이 히트하면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 크래프톤 마진율(영업이익률)은 2020년 상반기 기준 58%에 이른다. 매출 1억원당 영업이익 5800만원을 올렸다는 뜻이다. 이자 비용 등을 제외하고 회사가 순수하게 가져간 돈(당기순이익)은 2018년부터 최근까지 2년6개월 사이 9300억원가량에 이른다.
게임 제작과 배급·유통을 하는 크래프톤 매출의 92%는 온라인 컴퓨터게임과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게임에서 발생한다. 지역별 매출 비중은 아시아(한국 제외)가 74%로 가장 높고, 북미와 유럽이 14.8%로 그다음을 차지한다. 한국은 7.9%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배틀그라운드>에 더 열광하는 셈이다.
크래프톤의 비상장 주식은 요즘 장외 주식거래 사이트에서 ‘황제주’ 대접을 받는다.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이 1주당 150만원 넘는 금액에 거래된다. 장외 거래 시세를 기준으로 계산한 크래프톤의 상장 뒤 가치는 10조원이 넘는다.
게임 대장주 삼총사 중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을 제외한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현재 시가총액(전체 발행 주식 수×주가)을 2020년 예상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평균 35배 정도다.
여기에 크래프톤의 연간 추정 당기순이익(2020년 상반기 기준 4050억원의 2배)을 적용해 이 회사 시가총액을 계산하면 2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온다. 크래프톤의 증시 상장 뒤 기업가치가 최대 30조원이라고 추산하는 배경이다.

크래프톤은 ‘BTS 소속사’ 닮은꼴
크래프톤 전망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증시 전문가들은 “크래프톤은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닮은꼴”이라고 지적한다. 빅히트 매출의 약 90%가 BTS에게서 발생하는 것처럼 크래프톤도 <배틀그라운드>의 매출 쏠림이 심하다는 것이다.
실제 2019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인 펍지의 자체 매출은 크래프톤(펍지 등 자회사 매출 포함) 전체 매출액의 96%를 차지했다. <배틀그라운드> 뒤를 이을 후속작 개발이 크래프톤 성장의 최대 관건인 셈이다.
크래프톤은 2021년 상장을 앞두고 자회사 펍지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또 대형 신작 게임 <엘리온> 개발을 맡은 블루홀스튜디오를 100% 자회사로 분리 신설하기로 했다. 공룡 자회사를 모회사와 합쳐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연내 출시할 예정인 새 게임 개발에 힘을 실어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이 전략이 통할까? 크래프톤이 <배틀그라운드>로 벌어들이는 돈은 2020년 1분기(1~3월)를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매출액 기준 200조원을 넘는 글로벌 게임 시장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와 일본 소니, 닌텐도 등 신형 콘솔(전용 게임기)을 앞세운 거대 기업이 각축전을 벌이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상장사에 걸맞은 회사의 내부 통제 개선, 게임업계 종사자 처우 개선 등도 크래프톤이 풀어야 하는 숙제다.
매출 ‘제로’(0)에서 출발해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선 한국 게임업계의 성공 신화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상장 뒤 크래프톤의 기업가치나 예상 주가라는 숫자에만 열광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보다 그 지속가능성에 주목하고 관심 가질 때다.

* 국내 기업 약 3만2천 곳은 외부 회계감사를 받는다. 회계장부에는 우리가 몰랐던 회사의 속살이 숫자로 드러나 있다. 최근 경제계에서 주목받는 회사부터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 빵집 같은 일상 속 작은 가게까지 그들의 속사정이 담긴 회계장부를 읽어본다. 글쓴이는 경제신문사 <이데일리>에 근무하는 9년차 기자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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