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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식 소득 차등 벌금제, 한국은?
[하수정의 오로라를 따라서]
[127호] 2020년 11월 01일 (일) 하수정 stokholm@naver.com

하수정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저자

   
▲ 핀란드 모바일게임 회사 슈퍼셀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 일카 파나넨은 지난 10여 년간 핀란드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이다. 로이터 연합뉴

핀란드에는 11월 첫날을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질투의 날’이다. 매년 11월 첫 업무개시일 아침 8시, 핀란드 국세청은 직전 해의 납세 정보를 공개한다. 즉, 지난해 누가 얼마를 벌고 얼마를 세금으로 냈는지 알 수 있다.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같은 유명인사는 물론 친구나 이웃의 소득도 조회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내 납세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 빼고 다 잘 버네”
국세청이 공개한 고소득자 명단을 보며 느끼는 감정 탓일까. 핀란드 사람들은 이날을 ‘질투의 날’이라고 부른다. 국세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10만유로(약 1.4억원) 이상 고소득자 명단을 공개하고, 이날 뉴스 제목은 ‘핀란드 최고 부자’ 또는 ‘1년 동안 누가 제일 많이 벌었나’ 등으로 도배된다.
여기에 더해 마음만 먹으면 평소 궁금했던 동료의 연봉이라든지 얼마 전 차를 바꾼 이웃의 소득까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소정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누군가 내 소득을 확인한다? 사생활 침해라고 여길 법한데 핀란드인 다수는 이를 투명성을 위한 전통으로 여긴다. 한편에선 소득이나 납세 내용은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반대하는 소리도 있다. 부자라는 낙인 때문에 범죄 표적이 될 수 있고, 대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에선 여러모로 생활이 불편해진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다 소득 공개 반대론자 무리에 기회가 왔다. 2019년 개정 발효한 유럽개인정보보호법에 근거해 부자 명단에 오른 이 가운데 100여 명이 이름을 지워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19년 신청자 중 일부를 국세청 발표 자료에서 제외하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공표를 금지한 것일 뿐 개인이 국세청에 자료를 신청해 검색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국세청은 법원이 내린 공표 금지 결정에 따르되 납세자 정보 제공은 종전대로 이어가 세금에 개방성과 투명성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2019년(사실 10년 가까이) 핀란드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 즉 돈을 가장 많이 번 개인은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모바일게임 회사 슈퍼셀의 최고경영자 일카 파나넨이다. 2019년 자료를 보면 2018년 개인소득이 1억1천만유로(약 1500억원)다. 평균 소득세율이 30%이니 파나넨은 소득세로만 한 해에 500억원을 낸다.
2위 역시 슈퍼셀 공동 창업자인 미코 코디소야로 9800만유로를 벌었다. 심지어 과거 몇 년 동안 10위권 안에 든 사람 중 5명이 슈퍼셀 직원인 적도 여러 차례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북유럽에서 부자는 세금뿐 아니라 벌금도 많이 낸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음주운전, 과속운전 등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기는 누진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일수벌금제(日收罰金制)라고도 하는데,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의 일평균 소득 절반을 기준으로 법규 위반 내용에 따라 매겨진 범칙금을 곱해서 계산한다. 속도를 위반한 경우 제한속도 대비 25㎞/h를 초과하면 위반자의 일소득 절반에 12를 곱하는 식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대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북유럽 일수벌금제를 잘 설명하는 말이다.
2002년 핀란드의 통신장비업체 노키아의 부사장이 50㎞/h 구간에서 75㎞/h로 주행해 벌금으로 1억8천여만원을 낸 사례는 유명하다. 교통법규 위반 벌금에서 최고 기록은 스웨덴이 갖고 있다. 2010년 한 스웨덴 사업가가 일수벌금제를 시행 중인 스위스에서 무려 290㎞/h로 주행하다 잡혀 과속 벌금으로 100만달러(약 12억4천만원)를 냈다.
북유럽과 한국은 공정의 사회적 동의가 다른 것 같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누구는 벌금으로 1억원을 내고, 누구는 100만원을 내는 것이 공정한가? 한편 누군가에게는 벌금 100만원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까짓것!’ 하는 부담 없는 액수일 수도 있다.
공정의 관점은 세금에도 적용할 수 있다. 몇 년째 핀란드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일카 파나넨 인터뷰를 봤다. 지난 10여 년간 매년 500억원 정도를 소득세로 내왔으니 아까울 만도 한데 그의 답변은 지극히 모범답안이었다.
개인이 성공한 것은 사회가 제공한 인프라 덕이며, 우수한 교육을 받은 인재, 건강보험, 도로와 인터넷 연결망 등 모든 사람이 낸 세금으로 건설한 공공재와 사회기반시설 덕에 자신이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 충실하게 세금을 내서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북유럽 전체에 비밀스러운 정신교육이 이뤄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한국과 북유럽의 인터뷰를 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북유럽의 성공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지 말하려 하고, 한국의 성공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말하려 한다. 결국 성공 원인을 나로 보느냐 사회로 보느냐에 따라 세금이 아까울 수도 있고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핀란드식 소득 차등 벌금제는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몇 차례 논의됐다. 입법 발의가 국회의원의 실적이다보니 때로 서로 경쟁하듯 이런저런 제도를 들고나오는데, 어떤 제도든지 도입하기 전에 사회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동의를 형성하는 일이 먼저다.
북유럽은 제도 하나를 만들고 발효하는 데 보통 10년 넘게 걸린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에 정부가 무척 공들이고 긴 시간을 쓴다. 대신 이후에 뒤집거나 뜯어고치는 일이 없다. 오래 걸려도 결국 그게 시간을 버는 길이다.

* 경쟁보다 협업을, 투쟁보다 합의를 우선으로 하는 북유럽은 어떻게 높은 경제성장률과 사회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을까? 오로라의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머나먼 겨울왕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은 복지제도뿐 아니라 혁신산업과 창업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오로라를 따라서’는 시대에 발맞춰 진화하는 북유럽 비즈니스는 물론 이를 가능케 한 북유럽 문화와 가치관을 따라가본다. 동시에 북유럽이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며 우리나라 미래를 내다보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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