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스웨덴 가정 체벌금지법 효과
[하수정의 오로라를 따라서]
[125호] 2020년 09월 01일 (화) 하수정 stokholm@naver.com

하수정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저자

   
▲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창녕 9살 아동 학대 사건’ 친엄마가 2020년 8월14일 경남 밀양시 창원지법 밀양지원에서 열리는 1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학대에 시달리다 여행가방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9살 어린이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는 친아버지와 의붓어머니였다. 피해 아동은 5월5일 어린이날 놀이공원이 아닌 병원에 갔다. 아이 온몸에 폭행 흔적이 있었고 병원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했지만, 부모는 체벌 흔적이라고 답했다. 추가 조처는 없었다.
정부가 최근 민법에 있는 ‘자녀 징계권’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아동학대 방지 특별법’이 있지만 민법이 규정한 ‘자녀 징계권’을 근거로 ‘내 아이를 내가 혼내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공기관의 적극적 개입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했다.

스웨덴 세계 최초 ‘가정 체벌금지법’ 제정
북유럽에서는 사랑의 매를 들었다가는 양육권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갈 수 있다. 시작은 스웨덴이었다. 1971년 4살 여자아이가 의붓아버지의 폭력으로 죽는 사건이 일어나,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정부는 아동권리위원회를 꾸려 사건을 조사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집권당이 바뀌는 동안 조사는 계속됐다.
1978년 정부는 가정 안 체벌 보고서를 발표했고, 1979년 세계 최초로 ‘가정 체벌금지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아동의 법적 지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아이들은 돌봄, 안전 및 좋은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인격과 개성을 존중받아야 하며 체벌을 포함해 어떤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 법은 주어가 ‘어린이’다. 아이를 피보호자가 아닌 주체로 둔 것 역시 이 법이 시대를 앞선 지점이다.
스웨덴 체벌금지법의 궁극적 목표는 체벌하는 부모를 징계하기보다 아이에게 어떤 폭력도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인식 전환을 꾀하는 것이었다. 1970~80년대만 해도 여전히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매가 필요하다고 여기던 시기였다. 법이 공표되자 “모든 부모를 범죄자로 만들 셈이냐”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당시 스웨덴 법무장관은 “이 법은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어떤 종류의 폭력도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 지원을 통해 부모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부모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형벌에 의존하기보다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이 규정이 실효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는 체벌 없는 아이 양육에 사회적 공감대를 조성하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소비하는 제품인 우유팩에 아동 체벌 금지를 알리는 만화를 싣고 부모 대상으로 교육 홍보물을 제작했다. ‘어떻게 하면 체벌 없이 아이가 말을 듣게 할까요?’ 등 부모 질문과 전문가 조언을 담은 홍보물을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전달했다.
1980년 스웨덴에는 349만7801가구가 있었는데 홍보물을 350만 부 찍었으니 말 그대로 모든 가정에 배포한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마을마다 양육지원센터를 설치해 부모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체벌 금지같이 관습에 도전하는 법은 법규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법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고, 그 환경을 만드는 것을 정부 책임이라 여겼다.
이후 스웨덴 정부는 체벌 실태와 부모 인식 변화를 점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조사를 벌였다. 법 제정에 동반한 여러 캠페인 덕분인지 체벌금지법 이전 스웨덴 부모의 약 90%가 자녀에게 체벌을 가했으나, 법 도입 2년 뒤 90%가 체벌이 불법임을 인지했다.
이후 2010년 조사에서는 체벌한 부모의 비중이 약 10%로 줄었다. 법이 도입된 지 40여 년 지난 지금, 스웨덴의 사회 분위기는 어린이에게 폭력은 물론 폭언을 하는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로 여긴다. 아동을 상대로 한 친족 성폭행 등의 범죄는 죄질이 가장 나쁜 범죄로 여겨져 형도 엄중하다.
이번 코로나19 확산 때 스웨덴은 휴교를 하지 않았다. 스웨덴에서도 왈가왈부가 많았지만 담당자는 인터뷰에서 “학교에 오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이 위험한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에 노출되거나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스웨덴에서 코로나19 이후 아동폭력 피해가 50%나 늘었다고 한다.

한국서 아동학대 예방하려면
서울의 한 대형병원 놀이치료사로 수년 동안 일한 친구에게 들으니, 아이에게 문제가 있어 찾아오는 경우 상당수 아이가 가정에서 정서적 학대나 방임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아이는 자신이 당한 일이나 부모의 잘못을 얘기하지 않으며 때때로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를 보호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병원을 찾은 부모 중 유명인도 있고 밖에서 보기에 성공한 위치에 오른 사람이 다수여서 상담하기 전까지 그런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환경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는 지금 시스템으로는 인지하기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대한민국 아동복지법은 신체적 폭력 외에 정서적 폭력 역시 학대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학대는 위기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 표시 나는 물리적 학대만이 아니라 정서적 학대와 방임 사례를 인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익명신고 채널을 늘리거나 스웨덴처럼 지역 아동심리센터와 상담기구 등의 문턱을 낮춰 누구나 쉽게 와서 가족 전체가 상담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서울과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 비슷한 모델을 운영해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학대를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 상담 과정을 진행해 아이와 부모 모두 개선된 경우도 제법 있다.
학대가 일회성인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데이터로 쌓아 예방할 필요가 있다. 범죄자 프로파일을 보면 범죄자 상당수가 어릴 때 아동학대를 당했다. 과거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테러범도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이번 발표 내용에 포함된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경찰, 교육기관의 위기 아동 정보 공유가 장기적으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합계출산율 0.88, 이 땅에 태어나준 것만도 고마운 아이들이 상처 없이 잘 자랐으면 좋겠다.

* 경쟁보다 협업을, 투쟁보다 합의를 우선으로 하는 북유럽은 어떻게 높은 경제성장률과 사회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을까? 오로라의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머나먼 겨울왕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은 복지제도뿐 아니라 혁신산업과 창업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오로라를 따라서’는 시대에 발맞춰 진화하는 북유럽 비즈니스는 물론 이를 가능케 한 북유럽 문화와 가치관을 따라가본다. 동시에 북유럽이 당면한 과제를 살펴보며 우리나라 미래를 내다보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9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