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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무엇을 위한 재정인가?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123호] 2020년 07월 01일 (수) 이창곤 goni@hani.co.kr
   
▲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국회에서 열린 한 재정토론회 모습. 연합뉴스

“재정을 이해하고 판독할 수 있는 사람은 국가 운명을 해명할 수 있다.”(조지프 슘페터)
재정이란 “정부가 국민에게서 돈을 걷고 그 돈으로 지출하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나라살림이다. 시민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과 사업은 재정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현실화할 수 있다.
재정은 하늘에서 절로 떨어지지 않는다. 너와 나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만큼 응당 가치 있게 써야 한다. 돈값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하는 것 또한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잘못하면 국가부도 사태나 후대에 지나친 빚을 떠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재정정책 전환 필요하다
국가 재정은 가계나 기업의 살림살이와는 다르다. 평가 잣대나 그 역할을 효율성 논리로만 따질 수 없다. 수입과 지출이나 적자와 흑자로만 따져선 안 된다는 뜻이다. 나라는 이 재정으로 기업이나 가계가 할 수 없는 공적인 일을 한다. 경제학적 표현으로 말하면, “시장에서 수급이 이뤄지기 힘든 재화와 서비스, 즉 복지와 치안, 국방 등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이 나라의 주된 일이다. 그래서 경제가 어려울 때는 빚내서라도 돈을 풀기도 하는 법이다. 경기 활성화와 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재정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이다.
웰페어노믹스는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호혜적 융합을 추구한다. 혁신이 경제를 활력 있게 하고, 성장이 복지 수준을 높이며, 복지가 다시 경제와 혁신을 촉진하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다. 재정정책의 근본적 전환 없이 가능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재정정책 기조는 오랫동안 재정건전성이었다. 이 기조는 핵심 결정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경제관료를 필두로 일군의 재정학자, 보수언론, 보수정치인 등이 동맹을 형성해 함께 주도했다. 한국의 지배적 재정 패러다임이었다. 이 담론은 어느새 하나의 신화이자 이데올로기가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60년 장기재정전망’은 이를 잘 보여준 대표적 정부 보고서다. 당시 기재부는 보도자료에서 “정부가 발표하는 최초의 장기재정전망 보고서”라면서 “2060년 국가채무 비율 40%대 이내로 관리, 재정 준칙 도입”을 명시했다.
현 정부 들어 이 기조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적어도 2020년 예산안이나 코로나19 이후에야 이 경로를 그나마 수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상 정책 네트워크의 저변에는 이 기류가 여전히 단단하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하고도 근본적인 재정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는 기존 재정건전성 프레임으로는 현 경제사회적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무엇보다 고통받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재정 방향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세계경제 항로와 전망에 불확실성이 많지만,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도래하리라는 데는 견해차가 크지 않다. 직시해야 할 것은 지금 당장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이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취업자 수가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특히 청년,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중소상인 등 상당수는 당장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선진 복지국가와 달리, 취약한 사회안전망은 이들의 고통을 가중하는 주요 요인이다.
2019년 8월 기준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중 고용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70.9%다. 이 중 정규직은 87.2%이나, 비정규직은 44.9%에 그친다. 자영업자의 가입률은 2020년 3월 말 기준 0.18%에 불과하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편성을 비롯한 세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과 ‘한국판 뉴딜’ 등으로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턱없이 미흡하다. 대한민국이 세계 각국에서 성공적인 케이(K)-방역으로 칭송받지만, 실직과 도산 등으로 속출하는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K-복지 또는 K-사회보장은 튼실하게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시기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 있다. 더 과감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언론, 일부 관료 등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기존 재정건전성 담론을 흘러간 옛노래처럼 끊임없이 읊어댄다. 나름의 선의를 고려해도 지금은 재고돼야 마땅하다.
지나치게 일부 ‘팩트’(사실)를 침소봉대하는 시대착오적 주장은 그들이 경계하는 재정만능주의만큼 위험하다. 그 단골 메뉴는 국가부채와 재정 적자다. “추경 벌써 60조. 나랏빚 반년 새 100조 늘었다, 재정건전성 유지 약속 깨면 국가신용등급 하락 위험, 슈퍼채무국 전락…” 등의 보도나 주장이 그것이다. 이런 식의 보도와 주장은 한마디로 ‘부채와 적자 공포, 곧 빚 공포 프레임’인데 간단한 ‘팩트체크’만으로 그 진위가 판별된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정부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9.2%에 견줘 뚜렷이 낮다. 3차 추경 편성까지 고려하면 2020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전년보다 5.5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정책에 따른 효과를 고려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치다.

지금이야말로 ‘증세’ 논의할 적기
우리가 정작 고민해야 할 대목은 추락하는 사회경제적 약자와 중산층의 삶을 지키기 위해 ‘돈을 어디에 써야 할 것인가’다. 더불어 ‘재정을 어떻게 더 마련할 것인가’다. 우리 사회의 고민과 논쟁은 정작 이런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재정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그 쓸모는 궁극적으로 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존재할 때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재정적 지속가능성의 바람직한 함수를 찾는 진짜 재정 논쟁이 필요하다. 재정건전성론자들의 주장에서도 일리 있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저출산·고령화 등 재정 압박 요인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증세 논의는 필연이다. 경제위기 상황인 지금이야말로 재정의 쓸모와 증세에 대해 진짜 재정 논쟁을 벌일 적기가 아니겠는가.

* 복지를 다년간 살피고 책도 펴냈다. 그러다 ‘복지와 경제의 호혜적 융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늦깎이 경제 공부에 매달리는 언론인이자 사회과학도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개혁, 그 수단으로서 좋은 정책과 복지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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