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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북극성인가, 지독한 환상인가?
[경제와 책]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조계완 economyinsight@hani.co.kr

조계완 국내편집장

<반(反)자본 발전사전> 볼프강 작스 외 지음 |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
   
 


‘발전’과 자본주의 문명을 가장 날카롭게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제시한 학자 가운데 한 명은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다. 책 <반자본 발전사전>에는 월러스틴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월러스틴의 견해는 상당 부분 이 책의 논지와 닮아 있다. 월러스틴은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에서 “자본주의 문명은 비단 성공적인 문명이었던 것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문명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희생자들과 반대자들까지도 매혹시켜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발전은 북극성인가 아니면 환상인가?’라는 짧은 글에서 “오늘날 국가의 발전이란 어떤 방법을 옹호하고 이용하든 하나의 환상이다. 우리의 온 역량을 그런 방향에 쏟는다면 자본주의는 제 수명보다 200년은 더 연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전은 북극성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장기적 추세들을 더 빨라지게 할 수 있으며, 바로 이는 자본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발전’이란 환상만 계속 추구하다 보면 자본주의의 종말을 더 앞당기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월러스틴은 묻는다. “‘발전’이라는 구호는 깊고도 끈질긴 모순을 가려왔다. 지금 우리는 아주 어렵고도 매우 폭넓은 정치적 선택들 앞에 전체적으로 당면해 있다. 발전이란 과연 무엇의 발전인가? 누가 또는 무엇이 실제 발전했는가? 발전에 대한 요구 뒤에 숨어 있는 요구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여러 대답의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이 책은 월러스틴의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사전은 발전론의 신화를 비판해온 세계의 저명한 논자 17명이 발전·환경·시장·평등·진보·인구·빈곤·생산·과학·기술 등 19가지 개념에 대해 논평한 글들을 모아놓은 앤솔로지다. 구스타보 에스테바는 “발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의미로 충만한 별무리의 중심에 있다. 이것만큼 힘있게 현대인의 사고와 행동을 이끌어가는 길잡이도 없다. 발전이란 말은 일반인과 지식인의 뇌리에 단단히 박혔다. 그래서 이 말을 쓰는 사람은 이 말과 결부된 복잡한 의미의 그물망에 꼼짝없이 걸려든다. 그 말은 바람직한 변화 곧 열등한 것에서 우월한 것으로, 나쁜 것에서 좋은 것으로 나아가는 행보를 늘 암시한다”고 말했다.
 20세기 중반 유럽인에게 ‘비문명’ ‘비교양인’ ‘후진성’으로 불린 세계 만방은 ‘저발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발전 담론은 경제학 전문가들의 일이었다. 세계는 발전부터 해놓는 것이 급선무였고, 발전이라는 말은 갈수록 아리송하기만 한 진보에 이르는 경로를 묘사하고, 또 그쪽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일련의 단어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세기 내내 진보가 던지는 약속은 깨졌다. “20세기를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내용은 진보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내렸고, 시간의 화살도 부러졌다는 판단이다. 미래는 더 이상 많은 약속을 담지 않는다. 그것은 희망보다는 공포의 저장소가 되어버렸다.”(볼프강 작스, ‘한 세계’) “진보는 환상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환상이었다. 진보는 그때까지 사람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한 것을 대폭 담아냈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정의를 이루고 지상에서 불멸까지 이루어내려는 꿈이었다.(호세 마리아 스베르트, ‘진보’)
발전은 곧 시장에 대한 맹신이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경제적 접근은 모든 인간 행동에 적용할 수 있는 포괄적 접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경제학 제국주의’다. “기술과 시장에서 비롯되는 무한한 진보가 우리를 자연과 사회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해방시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우리 자신의 맹신이 있다. 시장의 힘이 세계의 발전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굳센 믿음은 우리 시대의 엄연한 특징이다. 지금 세계는 사회가 시장을 제약해야 하느냐, 아니면 거꾸로 시장이 온 사회를 송두리째 제약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제랄드 베르투, ‘시장’)
이 사전은 사회를 경제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칼 폴라니의 생각을 기초로 깔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행동을 요구한다. “지금은 주변부와 보통 사람이 나설 때다. 경제를 원래 자리로, 주변의 자리로 묶어두어야 한다.… 발전은 증발했다. 근대인은 신이 되려다 결국 좌초했다. 우리는 그동안 발전이라는 말과 성장·진화·성숙·근대화처럼 발전과 뜻이 통하는 말들에 함축된 허망한 기대를 넘겨받았다. 이제는 현실 감각을 되찾을 때다. 평온을 되찾을 때다. 내 발로 내 길을 걸으면서 내 꿈을  꿀 수 있다면 과학이 제공하는 목발은 없어도 된다. 빌려온 발전의 목발은 없어도 된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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