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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재자가 아니다”
[FOCUS] 전 르노·닛산 회장 카를로스 곤 인터뷰- 탈주
[12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시몬 하게 economyinsight@hani.co.kr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회장인 카를로스 곤은 일본에서 몇 달 동안 가택연금된 뒤 탈출에 성공했다. 인터폴에 수배된 곤을 <슈피겔>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만났다. 그는 “나는 독재자가 아니라 경영자다”라고 말했다.

시몬 하게 Simon Hage
브리타 잔트베르크 Britta Sandberg
요나탄 슈토크 Jonathan Stock
비란트 바그너 Wieland Wagner
<슈피겔> 기자

   
▲ 가택연금 중 갑작스레 탈출해 세계의 이목을 끈 카를로스 곤은 1954년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라고 프랑스에서 유학해 3개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레바논 베이루트의 고급 호텔 알베르고 옥상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외장재가 떨어져나간 주택, 건물 뒤편에 쌓인 파편 더미 등 빈곤의 흔적이 보인다. 저녁에는 도시에 정전이 자주 일어나고, 물은 마실 수 없고, 거리에선 사람들이 혁명을 외친다. 며칠 안에 다시 저 아래,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시가전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오는 남자는 아래를 보지 않을 것이다. 위를 본다. 그는 항상 위를 보며 살았다.
카를로스 곤은 경찰에 수배된 범죄자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권을 누리는 수배자일 것이다. 개인 재산은 1억2천만달러로 추정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글로벌 자동차 대기업 가운데 하나인 르노·닛산 연합회장이었다. 세계 200여 개국에 직원 50만 명가량을 고용한 거대 제국을 이끌었다. 122개 공장을 감독하고, 매년 1천만 대 이상 자동차를 팔고, 매년 100일 이상 회사 전용기를 타고 날아다녔다. 20여 년간 왕으로 군림한 뒤 갑자기 추락했다.
일본 검찰은 곤을 탈세와 특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도쿄에서 몇 달 수감된 뒤 가택연금을 당했다. 2019년 12월 그는 소년 시절을 보낸 조부모 모국인 레바논으로 탈출했다.

지구상 가장 특권적 수배자
탈출은 장대했다. 심지어 ‘Ghosn is gone’(곤은 갔다)이라는 제목의 비디오게임이 출시될 정도였다. 탈출 계획에는 일본식 마스크, 고속철도 신칸센, 수수께끼 같은 상자, 개인 비행기 2대, 조종사 4명, 전직 미국 특수부대 병사와 레바논 전쟁 참전 용사가 포함됐다. 보석금 15억엔(약 161억원)은 그냥 놔두고 왔다.
2019년 12월부터 곤은 베이루트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기독교도인이 사는 지역인 아슈라피자에 있는 연분홍색 고급 주택이다. 이곳은 밤 문화,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갤러리로 유명하다.
곤은 스포츠실용차(SUV)를 타고 인터뷰 장소로 왔다. 집에서 약속 장소인 호텔까지 300m 거리를 보안 이유로 걸어올 수 없다고 경호원은 말했다. 곤은 푸른색 양복 차림에 검은 가죽 슬리퍼를 신고, 왼쪽 손목에 스와치 시계를 찼다. 귀에 무전기 이어폰을 꽂은 덩치 큰 경호원이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다. 침착하고 정중한 곤의 태도는 호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호텔 옥상 테라스에서 곤은 방문객에게 그의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 뒤로 펼쳐진 눈 덮인 산, 그의 요트가 떠 있는 바다, 그의 도시 베이루트의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보여주었다. 그는 과거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성급한 태도로 사진기자에게 사진을 찍도록 몇 분을 할애했다. “이 시간도 인터뷰 시간에 포함된다”며 기자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그리고 “오케이, 언제 시작할 건가?”라고 물었다.

당신은 왜 경호원이 필요한가.
나는 일본에서 위험한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4개월간 독방에 갇혔고, 연금당했다. 지속해서 감시당했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누군가가 내 뒤에 있거나 내 가족 뒤에 있었다. 전화는 도청당했다. 아내와 나는 9개월 동안 서로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했다. 마치 사회 역병처럼 취급됐다. 일본 당국은 나를 다시 데려가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쓰겠다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리겠나? 가족과 친구, 나 자신을 지켜야 했다.
납치될 것을 걱정하는가.
추측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면 오직 바보 멍청이만 조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한 달 전부터 베이루트에 있다. 인터폴이 당신을 수배했다. 일본에서 여전히 기소당한 상태고, 여러 나라에서 당신을 조사하고 있다. 당신은 레바논과 일본 사이에 범죄자 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여기에 있다. 레바논은 당신에게 황금 새장이 되었나.
나에게 레바논은 감옥이 아니다. 레바논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다. 이곳에선 많은 사람이 나를 존중해주고, 내가 몇 달간 겪은 일에 공감해준다. 그들은 나에게 일어난 일을 불의라고 본다. 나에게 제기된 혐의를 더 잘 방어해준다. 2018년 11월 내가 체포된 뒤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이끌었던 기업에도 비극이 된 이 사건을 해명하고 싶다.
무슨 의미인가.
내가 체포된 뒤 닛산, 르노, 미쓰비시의 주가총액이 30% 하락했다. 200억달러 이상이다. 많은 돈이다. 누구 책임인가? 르노 주주로서 나는 해명을 듣고 싶다. 내 혐의는 용도가 불분명한 몇백만달러 지출뿐이다. 그들은 200억달러 이상 주가 손실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논리인가? 주주를 위한 논리는 어디에 있는가? 직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은 조심해야 한다. 직원들이 다음 희생양이 될 것이다.
자신이 무죄라고 보는가.
나는 죄가 없다.

   
▲ 프랑스에 있는 르노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노동자가 방역 마스크를 쓴 채 일하고 있다. REUTERS

악기상자에 몸 숨겨 탈출
곤은 호텔 카페의 묵직한 가죽 안락의자에 앉았다. 앉은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리를 다시 한번 바꿨다. 그의 편집증은 전설적이다. 그 자신이 레스토랑 자리를 선택해도, 주변에 앉은 다른 손님이 자신을 감시하는지 의심한다고 그의 변호사들은 말한다. 인터뷰하면서 곤은 계속 왼쪽 다리를 떨었다. 눈동자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손은 숫자를 세고, 방어하고, 맹세하고, 강조하는 데 썼다. 대화를 시작하고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말하는 사람은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말하는 사람은 싸우고, 대변하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의 곁에 홍보담당자가 배석하지 않았다. 곤 혼자 왔다.
경찰에 따르면, 곤은 2019년 12월29일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도쿄 집을 나온 뒤 호텔에서 조력자 2명을 만나 오사카행 고속열차를 탔다. 오사카에서 이 3명은 호텔로 들어갔다. 몇 시간 뒤 조력자 2명만 큰 악기 상자를 가지고 호텔 건물을 빠져나왔다.
곤은 나폴레옹과 비교되는 일이 자주 있다. 키가 167㎝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키는 오사카항공에서 그를 기다리는 개인 비행기까지 도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곤은 악기 상자에 몸을 숨겼다고 한다. 개인 비행기용 공항 터미널에선 엑스선 스캔을 하지 않았다. 화물 스캐너로 스캔하기엔 상자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루 뒤 곤은 베이루트에 나타났다.

탈출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상자 속에 숨어 있어야 했던 시간?
상자 안에 숨어 있는 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 두려웠다. 일본은 나에게 감옥이었다. 집에 있었기에 편안한 감옥이었다는 걸 인정한다. 매일 샤워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시계를 차고, TV를 보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연락할 수 없고, 인터넷을 쓸 수 없었다. 악몽이다. 나는 조작되고, 차별적인 시스템에 부닥쳤다. 거기서 빠져나와야만 이길 수 있었다. 탈출에 실패했다면, 나는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
무죄를 확신한다면 왜 일본 법정에서 싸우지 않았나.
소송에 4~5년이 걸릴 거라고 변호인단이 말했다. 4~5년! 일본은 내 무죄 입증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들은 나를 중범죄자처럼 다뤘다. 매일 조사받았다. 나를 부러뜨리려 했다. 인권침해다. 정치 소송이고, 개인에 대한 국가의 복수다. 일본은 닛산이 르노에 흡수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를 치워버려야 한다. 나는 도망가는 것과 일본에서 죽는 것 가운데 선택해야 했다.

브라질서 태어나 레바논서 자란 프랑스인
카를로스 곤의 성공은 그동안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청사진으로 여겨졌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랐고, 프랑스 파리 엘리트 대학인 그랑제콜에서 학업을 마쳤다. 자동차 타이어 제조업체 미슐랭에 입사해 인턴으로 일한 뒤, 26살 공장 책임자, 30살 미슐랭 브라질 총괄 책임자, 35살 미슐랭 북미 CEO가 됐고,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 부사장이 됐다. 빠르고 강력한 긴축 조처로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는 남자라는 뜻인 ‘비용절감기’라는 평판도 얻었다.
1999년 곤은 위기에 놓인 일본 자동차 닛산을 맡았다. 그는 낡은 구조를 타파하고, 분열된 경영진을 출신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상호기능팀’으로 대체하고, 50살 이상 직원을 해고한 뒤 자회사로 내보냈다.
일본인에게 신성모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닛산은 독일인에게 폴크스바겐그룹과도 같은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세 나라 국적을 갖고, 속을 알 수 없는 외국인 곤을 두고 처음에는 많은 저항이 있었다. 곤은 자비가 없었다. 그의 별명 ‘세븐-일레븐’은 곤이 아침 7시에서 밤 11시까지 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통상적인 술자리, 골프 같은 약속은 최대한 피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그를 ‘잔혹한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곤은 몇 년에 걸쳐 2만 명 넘는 직원을 해고시켰다.
가망없어 보이던 일이 성공했다. 곤은 엄청난 부채로,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회사를 살려내고, 매출은 2배, 순이익은 10배로 늘렸다. 2005년 닛산과 프랑스 경쟁업체 르노가 연합했을 때, 곤은 두 글로벌 선도 기업을 동시에 이끄는 최초의 CEO가 되었다. 몇 년 뒤 미쓰비시도 참여했다. 곤은 일본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를 소재로 하는 슈퍼히어로 만화가 나왔고, 일왕은 그에게 외국인 최초로 훈장을 수여했다. 곤의 얼굴이 인쇄된 우표가 나왔고,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들은 그의 방법을 칭찬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그를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했다. 곤의 결혼식은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 치러졌다. 그는 목표를 이뤘다.
2018년 11월 곤은 개인 비행기로 여러 자택 중 하나가 있는 베이루트에서 도쿄로 날아갔다. 도쿄의 한 고급 스시집에서 딸과 만날 예정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곤은 체포됐다. 일본 검찰은 연봉 허위 신고, 업무상 횡령, 탈세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다른 혐의도 추가됐다. 도쿄, 파리, 리우데자네이루, 암스테르담, 베이루트, 뉴욕 등 외국에 있는 고급 주택을 사는 데 회사 자금이 들어갔고, 고급 양복과 카르티에 시계를 법인카드로 샀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곤이 개인 투자 손실을 닛산에 넘겼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지인에게 회사 자금을 부정 송금하고, 이 자금을 우회로로 자기 계좌로 다시 받았다. 프랑스에서도 이 일을 조사 중이다. 한때 왕이었던 곤은 모든 직위를 잃었다. 닛산은 전 회장에게 100억엔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곤은 불법 지급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모든 일이 계약에 따라 진행됐으며, 이사회가 모든 결정에 관여했다고 한다. 곤은 자신이 정치적 음모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 일본 도쿄 남쪽, 요코하마에 있는 닛산자동차 본사가 보이는 건물 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곤을 체포한 이유?
프랑스인 곤이 일본인에게 너무 강력해진 것일까? 곤의 변호를 맡은 전 도쿄지검 특수부 검사 고하라 노부 역시 혐의에 견줘 너무 과하다고 말한다. 곤의 체포 뒤에는 일본 총리실이나 재무성 같은 ‘정권 핵심’의 의도가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
어쨌든 곤은 도쿄에 온 지 5시간 만에 5㎡ 크기의 감방에 갇혔다.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수감된 도쿄 구치소는 악명이 높다. 이곳에선 사형수가 형 집행을 기다린다. 수용실에 계속 불이 켜져 있고, 수감자는 아침 점호를 하고, 온종일 수용실에서 책상다리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곤은 매일 몇 시간씩 조사받았다.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이 기간에 살이 7㎏가량 빠졌고 많이 늙은 듯했다. 오직 연필 한 자루와 메모지만 허락됐고 전화도, 허리띠도, 신발끈도 가질 수 없었다.
감방 안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읽고, 플립플롭(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로 끈을 끼워서 신는 샌들)을 신고, 허리가 고무줄로 된 운동복 바지를 입었다. 108일 동안 구치소에 있었다. 하지만 구치소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자기연민을 보이지 않았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위기에서 곤은 언제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이번에 그는 기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해야 한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으로 당신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조금 더 신중해지고 편집증이 강해졌다.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이젠 자유로운 인간의 단순한 삶에 더 감사하게 됐다. 내가 모르던 일본의 모습을 알게 됐다. 잘못 이해하지 마라. 나는 일본인을 존경한다. 나는 일본에서 수년을 보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검은 얼룩이 있다.
경영자로서 당신은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경제포럼 다보스에서 환영받은 손님이었다. 당신이 체포된 뒤 동료애는 얼마나 발휘됐나.
이전 동료 가운데 나를 도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에게 연락한 유일한 대기업 경영자는 디터 체체(전 벤츠 회장)였다. 우리는 수년 동안 친구였다. 전화 통화로 우정을 새롭게 다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니콜라 사르코지(전 프랑스 대통령)를 보냈다. 사르코지는 일본에서 나를 방문했다. 그는 나를 많이 도와줬다. 사르코지는 “당신이 프랑스인이라서”라고 말했다.
경영자는 수감 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교화가 불가능하고, 거만하고, 과격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전보다 더 겸손해졌나.
어디에서 이런 비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결단력과 야심이 있다. 야심이 없었다면 세계 최대 자동차그룹 중 한 곳의 회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르노·닛산·미쓰비시, 모두 하락세를 타던 회사다. 이 회사들을 선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로 만들었다. 자동차업계는 잔혹하다. 도요타, 포드, GM 같은 경쟁자와 싸워야 하는 치열한 시장이다. 친절한 태도, 악수, 볼키스를 나누는 세계가 아니다. 보이스카우트와 어린 소년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보이스카우트와 어린 소년은 보통 꿈만 가진 순진한 사람을 뜻함). 필요한 것은 명확한 비전과 결정이다. 이를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17년 동안 이 일을 해왔다.

“나는 결정을 내린 경영자일 뿐”
르노와 닛산에선 당신 경영 스타일을 독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갑자기 내가 독재자임을 알아차렸다는 게 재미있다. 나는 이 회사들을 각각 10년 넘게 경영했다. 왜 그때는 나한테 독재적인 경영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나? 내가 아는 한, 독재자는 권력을 쥐면 다시 내놓지 않는다. 내 임기는 2년마다 닛산 주주의 결정으로 갱신됐다. 르노에선 주주들이 4년마다 나를 재신임했다. 그들이 내 경영에 만족하지 않았다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근거 없는 비판이란 말인가.
내 평판을 망치려는 작전이다. 내가 체포된 뒤 닛산에서 작전을 시작했고, 르노도 정도는 덜하지만 역시 이 작전에 참여했다. 이유는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아, 곤은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하다. 그는 큰 영향력을 가졌다”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나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 영향력을 부여했지만, 나는 독재자가 아니다. 나는 결정을 내리는 경영자다. 직원들이 내 사무실로 와서 질문한 뒤, 내 답변을 듣고 가지 않은 적이 없다. 1999년 내가 닛산으로 왔을 때도 온통 혼란스러웠다. 200억달러 부채에 수익은 하나도 없었고, 닛산 브랜드는 가치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2016년 닛산은 두 배 규모로 성장했고, 200억달러 비용을 삭감했다. 그들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이해할 수 없다.
너무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2018년 여름 더는 계약을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두려 했다. 충분히 일했다고 생각했다. 남아서 르노·닛산 연합의 다음 단계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르노 감독위원회와 프랑스 정부였다. 그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러지 않은 걸 후회한다. 결국 모든 것이 재앙으로 끝났다.

ⓒ Der Spiegel 2020년 8호
“Ich bin kein Diktator”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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