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얼마 전 미국의 중간선거는 공화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경제위기의 주범이 2년 만에 완벽하게 복권된 셈이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선거 결과는 불을 끄러 들어온 사람을 응징하고 방화범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방화범에 대한 심판은 지난 대선으로 끝났고, 이제는 잘못된 방향 선택으로 경제를 망친 소방수를 손봐줘야 한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바마의 경제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과 대규모 경기부양책,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적극적 시장개입이 어우러져 엄청난 파국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오바마 정부가 미국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불만 또한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반기업적이었는지를 놓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의해 토론이 진행됐는데, ‘오바마의 정책이 경제 살리기에 역행하고 있다는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는 게 최종 평결이었다. 그럼에도 3분의 2 넘는 미국인들이 여전히 오바마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와 일반 국민의 평가, 세계인과 미국인의 시각이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 언론의 근거 없는 색깔론과 사사건건 오바마를 흠집내려는 공화당 등의 발목잡기에 ‘우매한’ 대중이 편승한 결과라는 게 아마 가장 손쉬운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패배를 무지한 대중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리고 오바마 노선에 대한 비판을 무책임한 정쟁의 책략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좀더 복잡한 층위가 존재한다.
　
미국 중간선거 오바마 패배의 복잡한 층위
많은 언론이 이번 중간선거의 진정한 승자로 ‘티파티’(Tea Party)를 호명했다. 이들의 운동이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꿀 정도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만만치 않은 정서적·도덕적 호소력과 논리적 일관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티파티의 이념적 대부로 알려진 텍사스 출신의 하원의원 론 폴이다.
폴은 개인의 자유를 극한으로까지 추구하는 대단히 보수적인 인물이자, 이익에 근거해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정치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희귀한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7년 말 대통령 후보자들 사이의 당내 토론을 통해 “9·11 테러는 미국의 군사적 제국주의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대응”이라고 발언해 평화와 반전이 진보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국무부의 기밀문서를 유출한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아산지를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여론에 맞서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기도 했다.
폴의 원래 직업은 의사였는데, 낮에는 환자를 진료하고 밤에는 오스트리아학파를 공부하는 게 낙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36살이 되던 1971년에 찾아왔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고 순례의 길을 나서 당시 90살이던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강연을 듣는 영광을 누렸을 뿐 아니라,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정지시키고 임금과 가격을 통제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 해였기 때문이다. 기존 경제학과 전혀 다른 진짜 경제학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이 경제학의 도움을 받아 ‘자유, 정직, 건전한 통화’의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던 것이다. 폴은 정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상적 이상을 실천할 수단으로 정치의 길을 택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우리의 한 정치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진정성을 입증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

오늘날 오스트리아학파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미제스다. 그는 영국의 통화학파, 크누트 빅셀의 이자율 이론, 뵘바베르크의 생산구조 이론을 결합해 오스트리아학파 고유의 경기변동 이론을 만들어냈다. 또한 자본재에 대한 재산권 및 교환이 허용되지 않아 가격기구가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사회주의 계산 논쟁을 촉발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은 미제스의 연구를 통해 짧은 전성기를 거친 뒤 대공황을 계기로 케인스가 득세하면서 급격하게 쇠락한다. 1940년 미제스는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59살에 미국으로 망명한다.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뉴욕대학교에 자리를 잡고, 명성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는 못했지만 1969년 은퇴할 때까지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소수의 열렬한 후원자와 제자들이 있었기에 주류 경제학계에서 철저하게 외면됐음에도 오스트리아학파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고, 20세기 최고의 명저라는 <인간 행동>(Human Action)도 집필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경제학의 목표는 인간행동의 동기와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으며, 연역적 방법이 그 도구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자유시장 경제의 이념을 정교한 논리로 구사해 정당화함으로써 폴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티파티의 이념적 대부와 미제스
미제스는 자원의 시간에 걸친 배분을 결정하는 기업가의 집단적인 행동이 소비자의 시간에 걸친 지출 계획과 조화돼야 한다는 조정 문제를 강조하면서, 이자율에 의해 시간에 걸친 자원 배분의 정합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현재보다는 미래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시간 선호가 바뀐다면, 저축이 늘어나고 이용 가능한 대부자금이 늘어나 결국 이자율이 하락한다. 이는 투자 비용을 낮춰 투자를 늘리고, 이 과정에서 일차적으로는 자본재가, 이차적으로는 소비재가 늘어난다. 이처럼 미래의 재화 흐름이 늘어나면 미래에 소비를 늘리겠다는 지출 계획이 실제로 충족된다. 반면 중앙은행이 유동성 주입을 통해 인위적으로 이자율을 낮출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자율 하락에 대응해 소비자는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지만, 기업가는 더 긴 생산과정을 선호해 투자 지출을 늘리고 대신 소비재 지출을 줄인다.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이 유도한 소비 및 투자의 변화는 선호의 변화에 기반하지 않으며, 이때의 투자는 ‘잘못된 투자’, 곧 ‘오(誤)투자’다. 이처럼 소비재 수요가 늘어났지만 소비재 생산은 늘어나지 못하므로, 소비재 가격이 상승하고 시장이자율도 상승한다. 낮은 금리의 기초 위에 투자를 늘린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노동수요가 줄어듦으로써 가계소득도 하락해 불황이 본격화된다. 이때 확장적 통화정책 등을 통해 이를 회피해보려는 어떤 시도도 불황이나 구조조정을 연기할 뿐 효과가 없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옹호자들은 이런 분석틀이 미국발 금융위기를 아주 잘 설명한다고 믿는다. 이들에 따르면, 이번 위기의 원흉은 2000년대 초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를 유도한 앨런 그린스펀과 연준이다. 화폐가 통화 당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주입된 결과 금리가 하락한 것인데, 기업가들이 저축이 늘어났다고 착각해 주택이나 내구자본재 등에 대한 잘못된 투자를 늘렸다. 이것이 일시적으로는 호황을 가져왔지만 결국 주택 가격 폭락과 금융시장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처방과 관련해서는,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을 반대하며 경기변동의 진폭을 최소화하려면 중앙은행의 인위적 개입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방안들- 가령 금본위제나 자유은행제도- 을 제안한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발발을 목격하면서 케인스의 복권을 예측한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는 케인스 경제학에 기반한 정책적 개입에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케인스는 틀렸고 오스트리아학파가 옳았다”는 목소리가 훨씬 크게 들린다. 무엇보다도 오바마가 미국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간다고 여기는 미국민의 3분의 2가 문제 삼는 것이 바로 정부 지출 확대 등 케인스의 처방인 것이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공론장에서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에 뜨겁게 반응하는 대중의 다양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향력 있는 대중매체에 오스트리아학파에 관한 논의가 실리면 이들을 옹호하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리고, 오스트리아학파 진영의 소장학자가 크루그먼과 같은 스타 경제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지면 적잖은 금액의 상금을 내걸고 계급장 뗀 공개토론을 요구하는 응원군도 출현한다. 오스트리아학파를 옹호하는 대학교수와 독립영화 제작자가 의기투합해 만든 하이에크와 케인스 사이의 한판 승부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를 통해 200만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올여름에는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미국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 판매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유튜브에 올라 있는 ‘케인스 대 하이에크’ 한판 승부 뮤직비디오.

이런 열광적 반응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철학이 미국인들의 정서에 공명함과 동시에 이들의 이론이 일관된 설명을 제공한 결과다. 나아가 해결사를 자임하던 정부가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과관계의 전복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의 철학에 부합했을 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정권에 대한 반대가 자신의 단순한 편견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미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갈 시민행동의 하나라는 자긍심과 정당성을 함께 부여해주었다. 오스트리아학파와 티파티의 성공 속에서 우리는 ‘사상의 힘이 기득권보다 훨씬 강인하다’는 케인스의 잠언 한 대목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상은 자기확신이라는 행동의 강력한 동기를 제공할 뿐 아니라 공동의 언어·개념·지적 토대도 마련해줌으로써 행동의 성공 가능성도 높여준다.
반면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우선 불황 자체가 시장의 구조조정 과정이라는 믿음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있다. 불황 때 가장 비효율적인 기업이 망하고 가장 효율적인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믿음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막대한 수익을 기록하며 다시 상장에 성공한 GM자동차의 사례는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한 유효한 반론이 될 수 있다. 또한 소비자의 시간 선호에 부합하는 부문 간 자원의 이동은 불황기가 아니라 가동률이 높은 호황기에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라는 반론, 투자가 왜 줄어드는지에 대한 설명은 있지만 투자 감소가 왜 경제 전반의 총수요 감소를 수반하는지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다는 비판, 이번의 주택 거품은 ‘오투자’로 볼 수 없다는 반론 등도 있을 수 있다. 나아가 거품의 누적과 극심한 경기후퇴에 대한 설명은 오스트리아학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 저금리 정책보다는 무분별한 대출 관행이나 증권화가 더 큰 문제라는 주장, 야성적 충동에 지배되면서 종종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기업가와 시장경제 자체에 불안정성이 내재돼 있다는 주장 등 더 근본적인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가 제도권 전문가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입하지 말라’는 정책 제안에 있다. 즉 “확장적 정책은 고용을 일시적으로만 늘릴 뿐 결국 더 큰 불황을 예비한다”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에 대해 폴 크루그먼이 “이는 노아의 방주에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며 냉소를 보냈다. 또한 그들 못지않게 보수적인 밀턴 프리드먼이 하이에크를 맹렬하게 비판했을 때 염두에 둔 것도 바로 오스트리아학파가 주창하는 무개입주의의 심각한 해악이었다.
　
미국 보수주의가 가치를 더 높이려면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책 제안이 가진 문제점은 법칙성이나 필연성 등의 용어를 선호하며 연역적 방법을 중시하는 이들 고유의 방법론에서 비롯된 극단주의와 관련이 깊다. 극단주의는 모종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현실에 적용될 때 무력하거나 유해한 경우가 적잖은데, 오스트리아학파나 론 폴에 대해서도 이런 평가가 가능하다. 이들이 설정한 신념체계 내의 연결고리를 거치게 되면, 오바마나 케인스는 물론 레이건과 부시, 나아가 프리드먼까지 극복해야 할 반시장주의자에 포함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출현하게 된다. 론 폴이 티파티의 희망처럼 아들인 랜드 폴과 함께 대선에 나가 책임 있는 집권세력의 가능성을 보일 수 있으려면 개인소득세 폐지, 연준 기능의 실질적 무력화 등 자신의 전제들로부터 도출될지는 몰라도 현실적이지 않은 제안들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학파 또한 케인스 경제학에 버금가는 현실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으려면 추상도 높은 거대 담론 속에서 논리적 정합성에만 치중하기보다는 극단주의를 가능한 한 누그러뜨려 구체적 현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현실 설명력을 한층 높이려는 이론적 쇄신이 있어야 한다. 이때 미국의 보수주의는 미국의 자유주의에 대해, 오스트리아학파는 주류 경제학에 대해 한층 가치 있는 경쟁 상대로 격상될 것이다. ecohis@jin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