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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끌어당기는 힘 이중문화 속 국제인으로
[FOCUS] 미국의 중국 유학생- ③ 신 유학생 세대
[119호] 2020년 03월 01일 (일) 왕쑤 economyinsight@hani.co.kr

 왕쑤 汪蘇 <차이신주간> 기자

   
▲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가 2019년 11월21일 워싱턴에서 미-중 학생교류 40주년을 맞아 기념 연설을 하고있다. 신화통신

장난이 고민하는 문제는 또 있다. 중국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떠밀려 현실적이지 않은 일을 하는 것보다 미국 교육을 받으면 아이가 잠재력을 발견하고 장점을 발휘해 ‘더욱 자기다운 삶’을 살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중국인이기에 중국인 피가 흘러야 한다고도 여겼다. 이 때문에 한동안 조기 유학을 망설였다.
마잉이 부교수는 이런 아이들이 외국에 가면 오히려 중국 문화에 관심 갖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기초 교양 교육 덕이기도 하고, 유학생이 어느 집단보다 귀속감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펑 회장은 “아이에게 애국심을 심어주려면 유학을 보내라는 말이 있다”며 “하지만 외국 것이 좋으면 누려도 된다”고 말했다.

나를 만드는 여정
정체성은 여러 해 장인한을 괴롭혔다. 그는 1990년대에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와 초등학교를 다녔다. 2005년 미국 대학에 입학했고, 2016년 다시 미국으로 가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20년 넘게 유학생 변화를 지켜봤다. 오가는 유학생 속에서 반성하며 자아를 찾았다.
“1980년대 중국이 빗장을 열었을 때는 뛰어난 인재가 외국으로 나갔다. 90년대에 규제가 완화되자 아버지처럼 평범한 사람이 유학을 떠났다. 고달픈 미국 생활에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고 억울한 일도 당했다. 그때는 유학생이 서구문화를 동경하고 자신을 낮췄다. 서구사회에 융합되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많은 사람이 미국에 정착했고, 더 좋은 삶을 위해 중식당을 열기도 했다.”
장인한이 다시 미국으로 와 학부생이 됐을 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였다. 집안에 돈이 많지 않아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그 세대도 대부분 미국에 남아 취업했다. 교육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괜찮은 기업에 들어갔고 중산층이 됐다. 미국에 정착한 다음에도 자신이 중국인이란 사실을 잊지 않았고 중국인 습관을 유지했다. 중국이 성장하면서 이들은 현대적 중국 요소를 미국으로 옮겨왔다.
“지금 대학생은 행복하다. 궁핍을 모른다.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20~30년 동안 미국 물가상승률은 높지 않았지만 중국인 소득은 몇 배로 늘었다.” 장인한은 지금 유학생이 과거와 달리 자신감이 넘치고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거취를 선택하는 것도 자유롭다. “많은 사람이 미국은 시골스럽고, 총기를 규제하지 않으며, 지루하고,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신감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자기 비하는 나쁘지만 과도한 자신감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외국인과 교류하려는 의지를 꺾는다.”

   
▲ 2019년 12월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도서관에서 여러 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다. 신화통신

오해와 이해
최근 시러큐스대에서 아시아계 학생을 모욕하는 사건이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총기 위협 사건도 일어나 중국 학생 사이에 불안감이 퍼졌다. 한 학생이 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초등학교 때 소방훈련을 하면서 들었던 경보음이 가장 긴박한 소리였다. 고향 베이징에서 가장 위험한 게 미세먼지 적색경보다. 내 인생 18년 동안 이런 일은 없었다. 조국에선 안전하다는 느낌을 한 번도 잃지 않았다. 여긴 다른 땅임을 깨달았다.”
“귀국할 때마다 디디추싱이나 공유자전거 등 도시 변화를 실감한다.” 2019년 건국 7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친구들과 지켜보며 셩시는 자부심이 들었다. 미국의 비판적 사고를 훈련한 덕분에 그는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도 느꼈다. 그는 똑같은 시각으로 미국 사회를 바라봤다. “개인은 자유로운데 집단은 자유롭지 않으면 어떡하겠나? 미국에선 내 모습 그대로여서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력도 높아진다.”
5년 전 미국에 와서 대학 3학년에 올라가는 펑자만은 얼마 전 시러큐스대학 교내잡지 <글로벌리스트> 새 편집장이 됐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긴 파마머리에 건강하고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외국인이 자신을 ‘메기’가 아니라 ‘지아만’이라고 불러주길 바랐다.
미국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미국인과 교류할 때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미국 문화를 이해한 뒤 펑자만은 미국 백인을 싫어하는 이유가 편견 때문은 아니었는지 반성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인은 이중적이어서 처음에는 잘해주지만 다음에 만나면 아는 척도 안 한다고 말한다. 미국인의 언어와 문화가 그렇다. ‘하우 아 유?’는 단순한 인사다. 상대방의 이름과 정보를 묻는 건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만드는 문화이고 예의다.”
지금은 다양한 관점과 문화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습관이 돼 편안하다. “처음 보는 것이 생기면 배움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는 주변 중국 친구에게 아시아계가 아닌 사람과 사귀라고 조언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를 향한 편견이 있는 사람과 우리가 다르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 2019년 9월 중국 광저우 리완의 식당에서 중산층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 REUTERS

이중문화의 명암
정체성에 대한 긴장도 점차 사라졌다. “친구가 내 내면에 있는 미국인 일면을 배척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자유롭다.” 미국 대학에 완전히 융화된 듯 보이는 중국 학생도 여전히 중국 생활을 그리워한다. “집이 있기도 하지만 일종의 귀속감, 편안함이 있다. 미국에선 자신을 열심히 증명해야 한다.”
두 문화가 끊임없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장인한은 자괴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지금은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이중문화에서 자란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낯선 타향이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이중문화 배경이 있는 일본 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말을 좋아했다. “그의 노래는 일본 음악이지만 미국 음악 특유의 경쾌한 리듬이 있다. 나는 두 문화를 이해했고 두 문화가 내 곁에 공존하니 그것을 누려야 한다.”
랴오웬신은 혼란 속에 길을 찾아가던 평범한 유학생 20여 명의 이야기를 모아 <신유학청년>을 썼다. 그는 베이징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공공정책학을 전공했다. 베이징대학 후광이 사라져 좌절했고, 대도시에서 한적한 시골로 옮겨오자 불편하고 외로웠다. 중국과 서양 문화가 부딪쳤다. 그는 유학생활이 ‘광야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익숙한 ‘인간관계 자기장’에서 멀리 떨어지고 부모 관심에서 벗어나 미국 땅에서 힘들게 성장해야 했다. 그는 글쓰기로 출구를 찾았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주변 사람을 이해해야 내가 사는 이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

   
▲ 중국 상하이외국어대 어학교에 다니는 중학생들이 2019년 8월 2주간의 교류행사를 마치고 미국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에서 공연하고 있다. 신화통신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대학원 시절 교환학생으로 덴마크에 갔을 때 혼자 유럽을 여행한 경험은 제리췬 인생에서 아름다운 추억이다. 기차로 유럽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지금 국제 정세는 세계주의자인 그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자기 꿈이 이상향이란 걸 깨달았다. 중국 호적제도를 피해 유학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우호적이지 않은 미국의 비자 심사에 걸렸다.
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주취안은 당분간 남방과기대학으로 돌아가 연구조교를 맡기로 했다. 그가 소속된 실험실에서 비자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학생 5명을 받았다. 인류 복지에 관심을 쏟는 것처럼 동물 복지에도 관심이 많은 차오쥔칭은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야생동물보호 자원봉사를 할 생각이다. 그가 미국에서 한 신경 인터페이스 연구를 중국에서 계속할 수 없었다.
셩시는 대학원을 다니며 생물에서 공중보건으로 전공을 바꿨고 졸업 뒤 학교 연구기관에서 일했다. 지금은 중-미 관계 영향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인 학생은 OPT(졸업 이후 1~3년 실습한 뒤 취업비자 발급 기회 부여) 정책 등 더 구체적인 문제를 걱정했다. 셩시는 경험을 쌓은 뒤 중국에 돌아가 지금까지 배운 공중보건 지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샤샤는 미국에서 일정 기간 일할 계획이다. “가업이 있어 결국 돌아갈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독립심을 키웠고 자기 인생을 더욱 잘 통제하게 됐다.
귀국을 선택한 유학생도 늘었다. 1978~2017년 유학생 519만 명이 출국했다. 그중 313만 명이 학업을 마친 뒤 귀국했다. 귀국한 유학생의 평균 증가 속도는 지난 10년 동안 28.5% 올랐다. 귀국 유학생은 중국 대학 졸업생에 견줘 외국 기업이나 국제기구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박사과정에서 국제무역을 전공한 장인한은 “미국이 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선택했는지 이해한다. 국제무역 불균형은 자원 배분 불균형을 악화해, 미국 중하위 계층 생활이 팍팍해졌다.” 미국이 트럼프의 인종주의에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 미국은 다원화된 곳이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연구하는 건 ‘자유로운 문화가 쌓아 올린 거품’ 속에 사는 것이어서 교수의 3분의 2가 외국인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미국국립보건원(NIH)과 연방수사국(FBI)이 중국인 학자를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에머리대 의과대학은 중국과의 연구협력 관계를 완벽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신교수이자 중국계 유명 생물학자 리샤오장 교수 실험실을 갑자기 폐쇄했다. 아내 리스화 교수를 포함해 중국인 학자 10여 명을 해고했다. 미국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을 중심으로 특정 전공학과 중국 유학생의 비자 심사를 강화했다. 이는 중-미 관계 악화가 과학기술 분야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오난밍이 미국에 건너갔을 때는 양국 관계가 밀월기여서 핵물리학을 연구하는 국립브룩헤이븐연구소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자오난밍이 말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이 중국인 학자 심사를 강화한 것이 중국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중국의 발전 과정에서 유학생이 외국에서 가져온 앞선 이념과 정보, 지식이 큰 역할을 했다. 물리학을 연구하던 자오난밍은 미국에서 생물학이 발전한 것을 보고 생물물리학 연구로 방향을 바꾸었다. 귀국 뒤 칭화대학에 생물학과를 다시 만들도록 제안하고 학과장을 맡았다. 유명한 생물학자 스이궁이 첫 학생이었다. “내가 계속 중국에 있었다면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중국 유학생은 미국 경제와 과학기술 교육 발전에도 기여했다. 미국이 지금 실력을 갖춘 것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가 미국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근무했던 연구자 시각에서는 중국의 과학기술 실력과 혁신은 외국과 큰 격차를 보인다. “인공지능을 봐도 기초적인 것을 직접 개발하지 않았다. 다른 데서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진보의 첫걸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지 맹목적인 우월감이 아니다. 과학기술 연구자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포함된다. 대다수 과학기술 종사자는 연구할 수 있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곳에 정착한다.”
미국 대사관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4~8월 미국이 중국에 발급한 학생비자(F1)는 8만9179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5869건 늘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2016년부터 미국에서 모집한 유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미국국제교육협회에서 발표한 2019년 가을학기 유학생 입학 조사 결과, 2019~2020학년도에 신입생이 전년도보다 0.9% 줄었다. 교육기관 45%는 중국인 신입생이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감소 이유가 비자 때문이라고 답한 학교는 2016년 34%에서 2019년 89%로 늘었다. 미국 사회와 정치 환경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도 2016년 15%에서 2019년 58%로 늘었다. 일부 기관은 아시아 지역과 사하라사막 남쪽 지역 학생이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아시아 학생이 미국 유학생의 70%를 차지하고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자 미국 대학은 아시아 학생 모집에 우려를 나타냈다. 중국 학생 모집 우려(39%)가 인도(26%)보다 컸다. 그 대책으로 아시아 지역 신입생 모집 업무를 강화하고, 58%가 중국 학생 선발을 우선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9년(65.4%)보다 조금 떨어진 수치다.
미국 비자 정책과 중-미 관계 영향으로, 미국 대신 영국이나 캐나다로 목적지를 바꾸는 흐름도 나타났다. 영국대사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7월~2019년 6월 영국 비자이민국에서 중국 국민에게 발급한 학생비자는 10만7천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6월30일 기준, 영국대학입학지원처를 통해 영국 학부과정에 지원한 중국 학생은 1만9670명으로 30% 늘었다.
상펑 회장은 “동쪽이 밝지 않으면 서쪽이 밝은 법이다. 유학 열풍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화 교육은 시야를 넓혀준다. 세계가 무엇을 하고, 외국에선 어떻게 하는지, 과연 그들을 추월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여러 나라의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펑자만은 지금 중-미 관계와 세계화의 긴장을 느끼지 못했다. 올해 스무 살인 그는 <글로벌리스트>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서로 이해하도록 무엇인가를 할 생각이다. “공유로 인간의 이해와 공명을 회복하고 싶다. 당신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놨을 때 그 생각 일부는 당신의 성장 과정과 문화, 경력에서 왔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세계와 타인을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믿는다. 세계주의자는 겸손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세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이해해야 한다.”

ⓒ 財新週刊 2019년 제46호
全球化張力下: 新留學一代
번역 유인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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