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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백화점… 삶의 도피처 성큼’
[국내이슈] VR 어디까지 왔나
[118호] 2020년 02월 01일 (토) 이재운 damoyer@daum.net

이재운 <삼성전자의 빅픽처> 저자

   
▲ 2016년 8월 미국 뉴욕 해머스타인 볼룸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언팩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기어 가상현실(VR)과 체험 의자를 통해 4차원(4D) 카누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2018)을 기억하는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이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영화를 즐기려는 관객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주목받았다. 서기 2045년 VR 기기를 쓴 이들이 거대 기업의 권력 독점 음모에 맞서 정당한 실력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줄거리는 숱한 화제를 만들었다. 

이제 더 나아가 영화 속 현실이 점점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그만큼 VR가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유럽이나 중국 영화제에서도 VR 영화는 인기다. 이에 미국 할리우드 등 주요 국가가 지원정책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실감 콘텐츠 산업’이란 용어를 쓰며 관련 업계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렇듯 모두가 VR를 주목하고 있다. 미디어로서 VR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이르렀고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까.  
 
미디어 중심으로 향해가는 VR
VR의 정의는 1970년 미국에서 마이론 크루거 박사가 ‘비디오 플레이스’(Video Place) 개념을 만들며 정립됐다.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공간이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구성된 VR 세계는, 이용자(시연자) 선택에 따라 공간 구성과 흐름이 바뀐다는 점에서 3차원(3D) 애니메이션과 구분된다. 이때 이용자는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HMD(Head Mounted Display)를 통해 가상세계를 둘러보며, 컨트롤러 등 추가 장비를 써서 실감 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VR 시네마는 이 장비를 활용해 시야를 넓히고, 시점을 원하는 대로 이동하며 시점 이동에 따라 음향을 배치하는데, 관객은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을 감상한다.
VR는 3차원 입체 이미지 정보를 좌, 우, 위, 아래, 앞, 뒤 등 모든 방향에서 제공한다. 따라서 VR 콘텐츠를 제작하는 카메라는 이들 방향 정보를 모두 수집할 수 있도록 최소 6개 이상의 카메라와 9개 축의 모션컨트롤러(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를 갖추고 있다. 이용자가 어느 방향을 보더라도 화면이 나타나, 실제처럼 느껴지는 가상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핵심이다.
이런 특성은 미디어 장비로서 VR 기기의 매력을 만들어냈다. 실제 가볼 수 없는 곳을 생생하게 체험하거나 현실에 없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전자의 경우 전쟁터나 유명 관광지, 산업 현장 등을 체험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후자의 경우 게임을 비롯해 건축 분야 등에서 쓰임새가 활발하게 모색됐다.
VR가 처음 나왔을 때는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같은 개인용컴퓨터(PC)를 이용해 제약이 있었다. 휼렛패커드(HP) 등이 개발한 기존 시스템은 PC를 장착한 수킬로그램(kg) 무게의 배낭을 멘 채 이용하고, 모든 장치가 유선으로 연결된 탓에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한하는 형태였다. 수백만원의 높은 비용이 더해지는 상황에서 보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한계가 한순간에 극복된 배경은 바로 컴퓨터 크기가 획기적으로 작아지는 혁신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스마트폰’ 장치는 성능을 개량해 ‘작은 PC’로 체급을 올렸고, 삼성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을 활용한 VR 헤드셋을 협업 형태로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삼성전자의 VR 헤드셋인 ‘기어VR’는 삼성전자 자체 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은 아니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미국 VR 헤드셋 전문기업인 오큘러스 기술을 기반으로 삼성전자가 양산한 제품이다. 이 헤드셋은 2015년 첫선을 보였다. 앞서 2014년 오큘러스를 인수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여러 차례 서울 삼성전자 본사를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과 오랜 시간 협업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후 국내 기업은 물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중국 피코(PICO) 같은 여러 나라 기업이 VR 헤드셋을 개발하면서 기기 가격은 점점 낮아졌다. 
기기 보급의 확산과 함께 쓰임새도 점차 다양해졌다. 2017년 프리랜서 사진기자 카림 벤 켈리파는 프랑스 파리에서 저널리즘 프로젝트 ‘적’(The Enemy)을 기획해 선보였다. 분쟁지역에서 서로 총구를 겨눈 양쪽 전투요원을 마치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의 시도는 국제분쟁의 참혹함을 더 잘 이해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업들도 다양한 VR 서비스를 선보였다. 페이스북은 2019년 9월 ‘호라이즌’(Horizon)이라는 VR 커뮤니티 서비스를 공개했다. 상반신 위주로 구성한 이 서비스는 가상의 자아(아바타)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같은 해 11월 SK텔레콤이 페이스북 등과 제휴한 서비스 ‘버추얼 소셜 월드’(Virtual Social World)를 선보였다. 카카오와 넥슨 등 국내 정보기술(IT) 기업 역시 이 서비스에 참여했다.
SK텔레콤은 앞서 TV 광고에 버스기사로 일하는 실향민이 (VR로) 고향 마을을 둘러보는 모습을 내보냈다. KT와 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사업자 역시 VR 서비스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외 삼성그룹의 에버랜드가 그룹 자회사인 에스코어와 함께 ‘버추얼 에버랜드’를 개발했고, 케이팝(K-Pop)의 대표 주자인 SM엔터테인먼트도 VR 전문업체 서틴스플로어와 협업해 소속 연예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경험을 제공하는 VR 서비스를 선보였다. 
VR를 통한 사업 유형은 크게 다섯 가지다. 콘텐츠 유통, 광고 및 마케팅, 공연장이나 사파리 등을 재현한 대형 공간 재현, 오프라인과 연결한 판매 행위, 가상공간에서 가상의 상품을 거래하는 형태다. 현재 각 유형이 걸음마 단계를 지나 초기 상용화 형태를 보인다.
 
   
▲ 2019년 12월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산업박람회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 2020’에서 관람객들이 VR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VR,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지금 추세에서 VR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조차 각기 다른 방향성과 전망을 이야기한다. 아직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안타까운 VR 현실에 원인이 있다.
우선 제안된 미래 흐름을 보면 크게 ‘진짜 현실 같아야 한다’는 쪽과 ‘현실보다 오히려 인공적인 느낌이 나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2019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이데일리 IT 컨버전스 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선 이들조차 상반된 의견을 한자리에서 공유했다.
임종균 원이멀스 대표는 “지금보다 더 부드러우면서도 고화질 이미지가 요구된다”며 “이미지 단순화가 아닌, 더 질감이 좋고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살린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보량이 늘어날수록 이용자가 더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며 “더욱 실제와 유사해지는 추세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실제와 다르게, 오히려 컴퓨터그래픽(CG) 느낌을 더 선호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VR 분야 컨설팅사업 책임자인 최정원 에스코어 이사는 “기술이 아닌 수익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실제와 비슷할수록 이용자가 거부감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공급자가 ‘실제와 유사한 콘텐츠를 소비자가 좋아할 것이다’라고 함부로 추측해서는 안 된다”며 “먼저 만든 사업모델을 고려한 콘텐츠를 준비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어쨌거나 두 전문가가 인정하는 것은 빠른 속도로 끊김 현상을 최소화한 5세대(5G) 이동통신과 대용량 데이터를 전문업체 서버에 저장해뒀다가 필요한 곳에 빠르게 보내주는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최신 기술이 VR를 더욱더 현실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분명한 건 VR가 지금은 스마트폰, 미래에는 홀로그램 같은 새 방식으로 연결돼 지속해서 우리 삶과 일상을 파고들어 힘겨운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도피 공간을 내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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