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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시트콤이 1억달러 버는 까닭
[CULTURE & BIZ] 뉴트로 열풍
[118호] 2020년 02월 01일 (토)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리베카>의 주인공 가수 양준일이 2019년 12월31일 팬미팅 기자간담회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우리는 ‘뉴트로’라는 낯선 흐름을 경험했다. ‘새로운 레트로’라는 뜻으로, 2018년부터 본격 사용돼 2019년 사회와 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된 뉴트로 열풍은 TV 예능 프로그램과 마케팅 캠페인, 광고, 소비재 상품, 대중음악, 소주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
뉴트로를 완전히 새로운 흐름으로 보기는 어렵다. 레트로 트렌드는 몇 년 전부터 주류로 자리잡았다. ‘문화의 세대’였던 7080세대가 사회 핵심층인 30~40대로 성장하며 레트로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새 문화로 정착했다. 
하지만 뉴트로는 사뭇 다른 경향을 보인다. 이전 레트로가 특정 세대에 묶인 모습이었다면 뉴트로는 세대를 아우른다. 레트로 주역인 7080세대는 추억과 향수를 느낀다. 그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10대나 20대는 신선함, 더 나아가 ‘힙’(hip)한 감성까지 느낀다는 점이 뉴트로의 핵심이다. 많은 전문가는 뉴트로가 7080세대만의 축제에 초기 밀레니얼(1990~2000년대 출생) 세대가 합세한 레트로의 변형 또는 확장판이라고 생각한다. 
뉴트로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2019년 말 갑자기 등장해 엄청난 화제를 모은 이른바 ‘양준일 신드롬’이다. 양준일은 199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진 가수다. 나름 시대를 앞선 음악을 선보였지만 대중의 폭넓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당시 젊은층이던 7080세대에게도 많이 낯선 양준일은 어떻게 2020년에 소환됐을까.
 
7080과 밀레니얼
양준일이 다시 주목받은 계기는 SBS가 2019년 6월부터 아카이브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 <스트로>에서 예전에 방영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내보낸 것이다. SBS는 2012년 <SBS-복고채널>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연 뒤 그동안 방치했다. 뉴트로 열풍이 일어나자 <스트로>로 재단장했다. 
1990년대에 방영한 영상을 주로 내보내는 이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는 음악 프로그램 <SBS 인기가요>다. 방송사로선 ‘버린’ 콘텐츠였던 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2019년 초만 해도 하루 5만~6만 건에 머무르던 조회수가 채널 이름을 바꾼 뒤 하루 50만~60만 건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2020년 1월 누적 조회수도 1억7천만 건에 이른다. 
이전에도 유튜브 등에 과거 프로그램이 많이 올라왔다. 하지만 <스트로> 영상에는 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달리는 게 색다르다.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입소문을 탔다. 과거를 추억하며 댓글을 다는 7080세대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모여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에 빗댄 것이다.
거기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탑골지디’라고 불리며 2019년으로 재소환된 양준일이다. 탑골지디란 빅뱅의 지드래곤 수준으로 멋있다는 의미를 담은 재치 있는 호칭이다. 이후 그 세대를 경험하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호응을 얻어 여러 방송 예능과 음악 프로그램에 ‘강제 소환’됐다. 양준일은 데뷔 28년 만에 처음으로 광고 촬영을 하는 등 자신도 믿기 힘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KBS와 MBC도 2019년 가을부터 레트로 콘텐츠 채널을 열고 뉴트로 열풍에 가세했다. 이들 채널에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도 서비스된다. 90년대 한참 인기를 끌었던 <순풍산부인과>나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시트콤의 인기가 높다. 특히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10대, 20대 반응이 뜨겁다.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
‘레전드 영상’이라 불리는 레트로 콘텐츠는 유튜브 등으로 계속 생산된다. 패러디 등 다양한 게시물로 진화, 발전하여 재소비된다. 
레트로 콘텐츠 인기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1990년대 인기 시트콤 <프렌즈>를 2019년에 서비스하기 위해 저작권자인 워너미디어에 1억달러(약 1160억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는 <프렌즈> 방영을 2018년에 끝낼 계획이었다. 연간 저작권료 6천만달러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프렌즈> 종료를 알리는 넷플릭스 공지에 많은 구독자가 반감을 나타냈다. 결국 넷플릭스는 종전보다 많은 금액으로 계약을 1년 더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시트콤은 2020년부터 새로 서비스되는 HBO의 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HBO 맥스로 가기로 결정됐다.
30년 가까이 된 시트콤에 1억달러를 쏟아부은 넷플릭스의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2018년 북미 기준으로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영상물 2위가 <프렌즈>다. 시청자층이 40대뿐 아니라 20~30대까지 넓게 퍼져 있다는 데이터를 보면, 1억달러를 줘서라도 1년 더 계약을 유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 미국 인기 시트콤 <프렌즈>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밀레니얼 노스탤지어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빵빵한’ 신규 콘텐츠를 제치고 <프렌즈>처럼 오래된 콘텐츠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40대 문화 소비파워에 더해진, 이른바 ‘밀레니얼 노스탤지어(향수)’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밀레니얼 노스탤지어란 9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인 X세대 문화에서 향수를 느끼거나 관심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문화는 세대에 종속돼 있었다. 보통 같이 태어난 세대와 함께 성장하고 쇠퇴한다. 세대에 맞춰 새 문화가 태어나고, 그 문화는 그 세대와 함께 성장하고 늙는다. 이런 면에서 90년대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밀레니얼 세대가 90년대 문화에 열광하는 것은 조금은 이상하다. 현재 40대가 뜬금없이 부모님 세대인 50~60년대를 추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레트로 콘텐츠에서 힙함을 느꼈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 힙하다는 것의 뿌리를 찾아가보면 결국 노스탤지어가 만든 일종의 환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볼 때 밀레니얼 노스탤지어, 즉 뉴트로는 정체나 대상이 불분명한 감정이다. 당사자의 직접 경험이나 미화된 과거 기억에서 만들어지는 기존 노스탤지어와는 다르다. 어른이 되고 나서 호황을 경험해보지 못한 장기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느끼는 현실 불만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다시 말해 부모 세대가 느끼는 노스탤지어에 편승한 가상 체험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밀레니얼 세대가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문화적 토대가 부족한 것도 뉴트로 열풍이 점점 커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이들은 9·11 동시테러나 세계적 금융위기 같은 불확실성과 저성장 시기에 10대를 보냈다. 문화산업 측면에서도 2000년대 이후 새 문화나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 과거의 것을 재활용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 때문에 밀레니얼은 그 세대를 상징할 만한 독특한 문화 양식을 보유하지 못했다.
더구나 디지털 문화 초창기에 성장한 그들에게 아날로그는 정말 낯선 문화다. 부모 세대가 소비하는 것을 보며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동경 같은 감정까지 겹치며 뉴트로라는 현상이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보통 40~50대에 나타나는 노스탤지어 감정이 20~30대에 나타난 것을 ‘조기발병’ 노스탤지어라고 부른다. 밀레니얼 세대의 절망감을 나타내주는 일종의 집단 우울증으로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뉴트로의 기세
이런 우울한 배경을 떠나 산업 측면에서 볼 때 뉴트로는 콘텐츠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새 기회를 제공한다. 뉴트로는 밀레니얼 세대와 X세대가 같은 대상을 소비한다. 한 세대를 기반으로 하는 것보다는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고 유행 흐름도 길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새로 만드는 것보다 과거 콘텐츠를 재활용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흐름에 밀려 주춤하던 과거 강자가 뉴트로에서 브랜드 확장의 새 기회를 보고 적극 활용한다. 
넷플릭스같이 90년대에 연고가 없는 기업은 어쩔 수 없이 과거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른바 ‘노스탤지어 코스트’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2020년에도 뉴트로는 핵심 트렌드로 기세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 다음의 Z세대(젠지)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거기에는 문화적으로 기댈 곳을 찾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적 배고픔’과 더 많은 세대로 뉴트로가 확산되기를 원하는 레거시(전통) 미디어와 소비재 대기업의 전략이 숨어 있다. 뉴트로의 거센 열풍이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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