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Finance
     
경기부양 효과… 과잉유동성 ‘시한폭탄’
[FINANCE] 현대통화이론의 명암
[118호] 2020년 02월 01일 (토)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20년 1월 미국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오른쪽) 등 출마자들이 아이오와주 드레이크대학에서 토론하고 있다. 샌더스는 대표적인 현대통화이론 주창자다. REUTERS
일부 경제학자의 ‘몽상’ 정도로 치부되던 통화이론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현대통화이론(MMT)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번에도 실험장은 일본이다. 마이너스 금리도, 양적완화도 일본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MMT 진영에선 MMT가 가능하다는 것을 일본이 증명했다고 주장한다. 2013년 아베노믹스가 시작되며 일본은행은 대규모 국채를 사들여 막대한 돈을 풀었다. 하지만 우려한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다. MMT가 작동했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통화이론이란?
MMT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1905년 독일 경제학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크나프가 기초를 세웠고, 1970년대 미국 경제학자이자 헤지펀드 설립자인 워런 모슬러가 체계화했다. 이후 미국 경제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해 이론이 정립됐다. MMT는 주류에 포함되지 못했다. 변방에서 거론되던 이론이다. 2015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정치인들이 거론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와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러미 코빈이 대표적이다.
주류경제학과 MMT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화폐를 보는 시각에 있다. 주류경제학은 화폐를 시장에서 가치 교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화폐가치는 민간에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명목화폐가 교환의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MMT는 화폐 발행 목적을 조세 징수로 본다. 조세를 화폐로 납부함으로써 명목화폐 수요가 발생하고 가치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화폐는 정부 재정지출로 창출되고 조세 징수에 따라 폐기된다는 시각이다. 풀어 설명하면, 통화량은 돈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류경제학과 달리 정부가 얼마든지 화폐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과도한 인플레이션만 없다면 국가는 화폐를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다는 게 MMT의 핵심 논리다.
“정부는 발권력을 통해 어떤 규모의 정부 채무도 상환할 수 있다. 화폐는 정부의 강제력에 따라 발행, 유통되기 때문에 정부는 화폐를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적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확장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지속적인 재정 흑자와 재정 균형은 외려 불황과 금융위기 원인이 된다.” 
정부 재정지출이 민간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유동성 공급 경로가 된다. 주류경제학에선 이를 단순히 재정지출로 보지만 MMT는 통화정책 관점으로 본다. MMT가 논의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얼마나 무력한지 목격했다. 마이너스 금리지만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새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때 정부가 통화 권력을 갖는다는 MMT는 정치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MMT가 얼마나 지속가능할 것이냐다. 가장 큰 우려는 정부 신뢰가 훼손돼 통화가치 하락을 동반한 인플레이션이 생긴다는 것이다. MMT 진영에선 정부 강제력이 화폐가치를 결정한다고 보기에 공권력이 유지되는 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쉽게 설명하면, 국가 힘으로 인플레이션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일본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 2020년 도쿄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한 대형 올림픽 상징물이 무지개다리를 배경으로 설치돼 있다. REUTERS
일본의 거대한 실험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19년 9월 초까지 세계 전체의 마이너스 수익률 정부 부채는 기록적 수치인 17조달러(약 1경9788조원)에 이르렀다. 상당 부분 일본 부채다. 이 수치가 최근 몇 개월 동안 지속해서 줄고 있다. 2019년 12월23일까지 6조달러 급감했다. 의아할 것이다. 초저금리가 여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마이너스 금리 부채의 가장 큰 구성 인자인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플러스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 국채 10년물은 2019년 4월 이후 줄곧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다 12월 플러스 영역에 근접한 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본 정부는 사업 규모 26조엔(약 28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새 경제 대책을 2019년 12월 초 발표했다. 초대형 경기부양 패키지이자, 제2의 아베노믹스다. 일본 적자 국채가 대량 발행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일본 채권 보유자들이 움츠러든다고 할 수 있다. 국채 매입을 꺼리면서 수익률이 오른 것이다. 물론 일본은행이 개입하는 순간 수익률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겠지만, 단기적으론 일본 국채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일본 국가채무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이른다. 그런데도 천문학적 경기부양을 시도할 수 있는 건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낮은 비용에 자금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앙은행이 정부부채를 사들이는 정부부채 현금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1990년 중반까지 일본 정부의 적자 국채는 민간이 소화했다. 중앙은행의 지원은 없었다. 일본 국채 발행 잔액에서 중앙은행 비중은 2000년 초까지 20%까지 유지됐지만, 민간 금융기관 비중은 70%를 웃돌았다. 하지만 2000년 후반부터 양상이 바뀐다.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재정 투입은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과 동시에 진행됐다. 국채 발행 잔액에서 중앙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50%에 이른다. 민간 금융기관 보유 비중은 계속 떨어져 2018년 말 기준으로 38%에 그쳤다. 그만큼 일본 국채 소화에 일본은행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뜻이다.(톰슨 로이터 통계)
 
MMT의 문제점
일본은 공식적으론 MMT를 부정한다. 물론 본격적인 MMT는 아니다. 형식적으로 중앙은행이 중간에서 정부 채권을 매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은 MMT다. 이제 일본은 그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실패하지도 않았다. 엔화 급락이나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 MMT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런 믿음이 제2의 아베노믹스를 시작하는 원동력이다. 
일본의 MMT가 본격화하면, 다시 말해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이 재개되면 일본 국채 금리는 언제든 다시 마이너스로 진입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수익률 상승 현상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겉으론 아무 문제 없이 일본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진행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문제가 없을까? MMT는 통제받지 않은 통화권력을 전제로 한다. 현재의 통화 시스템은 중앙은행 독립성을 기초로 한다. 그나마 국가나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모양새다. 하지만 MMT에서는 통화권력 자체를 정부가 가진다. 이는 과잉 유동성을 언제든 불러올 수 있다. 정치인은 대체로 장기 안목보다 단기 관점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이때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통화 발행이다.
통화가치 하락, 인플레이션 발생 우려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MMT는 화폐 발행이 늘어나면 세금 인상 등으로 유동성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정부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의회 협조가 필요하고 국민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MMT는 시장자본주의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 자칫 기업 등 민간부문 쇠퇴를 불러올지 모른다. 경제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기업 등을 도와주는 일이 반복되면 민간의 정부 의존도는 깊어진다. 기업가정신은 약화하고 의존성만 커질 수 있다. 금융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실물경제보다 정부 정책으로 금융시장이 좌우된다. 일본이 좋은 예다.
경제학자들이 일본의 거대한 실험이 실패할 거라고 보는 이유는, 너무 자주 실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은 필요하지만, 자주 반복되면 문제가 된다. 정부 주도의 자극에 민간이 길드는 순간 민간의 자생력은 깊은 골로 추락한다. 마침내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게 된다. 아베노믹스가 원하는 결과를 낳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실험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단기적으로 경기부양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일본의 단기 성공은 다른 나라가 MMT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양적완화나 마이너스 금리가 일반화됐듯 말이다. 그렇다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는 어떨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마이너스 금리든 MMT든 선진 몇 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는 큰 제약을 받는다. 선진국이 공급한 초과 유동성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흘러들어도 나머지 국가는 무방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먼 미래가 걱정이다. MMT가 실패로 끝났을 때 글로벌 경제는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국의 무분별한 유동성 공급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나머지 국가에 전이된다. 국가 간 불평등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증폭되는 세상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1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