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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로 공장 탈유럽 제약업계 투명성 관건
[ISSUE] 약품 품귀 프랑스
[116호] 2019년 12월 01일 (일) 저스틴 들레핀 economyinsight@hani.co.kr
저스틴 들레핀 Justine Delépine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프랑스 보르도의 약국에서 약사가 약품을 찾고 있다. 최근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나라들에선 의약품 품귀 현상이 심각하다. REUTERS
B형 간염 백신 수급 어려움, 항암제 ‘헥사스타트’와 ‘프로루킨’ 재고 바닥… 프랑스에서 의약품 품귀 현상이 심각하다. 파리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 아멧 에르셀릭은 “올해 9월에만 수급이 어렵다고 신고한 의약품은 70종이 넘는다”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년에 10~20종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립의약품청(ANSM) 통계를 보면 현재 의약품 품귀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알 수 있다. 2003년 44건이던 의약품 품귀 신고는 2018년 871건으로 급증했고, 2019년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환자 건강까지 위협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산업·경제 전략의 변화다. 생산시설을 국외로 이전하거나 한곳에 집중하면서 일부 제품의 품귀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상원 보고서도 “경제적 목표를 국민 건강보다 우위에 두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약품 부족이라는 변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처방받은 약을 사기 어려운 환자는 담당의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대체약품을 찾아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바뀐 약이 환자에게 맞지 않거나, 환자가 대체약품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대체약품 유익성(약물 사용으로 얻는 효과)-위해성(건강에 손상을 줄 가능성) 평가 등급이 원래 처방한 약보다 낮을 수도 있다. “대체의약품 수요가 많아져 이마저도 재고가 없을 때가 있다. 한 제품 부족은 다른 제품 품귀 현상을 낳는다.”
프랑스 국립암연구소는 “의약품 공급 불안정은 (완치) 가능성 저하, (질병) 악화, 부작용, 사망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개인 차원 문제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공중보건 위기로 번질 위험이 있다. 오늘날에는 사라진 질병이 재발할 수도 있다.
의약품 품귀 현상은 재정 문제도 낳는다. 대체의약품은 기존 의약품보다 국가 의료보험에서 환급해주는 비율이 높다. 수급 안정을 위해 높은 관세를 내고 의약품을 수입하기에 국가 재정 부담이 크다. 이런 어려움은 정부만 겪는 게 아니다. 파리 공립병원이 의약품 수급 관리에 종일 근무의 16배에 해당하는 시간을 쏟아붓는 등 약국과 병원에서도 어려워진 수급 관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생산 부족 근본 원인
의약품 품귀 현상 해결에 두 팔을 걷고 나선 프랑스 정부는 2019년 9월 말 제약업계에 일부 규정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제약회사에는 의약품 수급 안정을 위해 재고를 여유 있게 두고,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재고가 없을 때는 회사 비용으로 대체 방안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반가운 조처지만 업계에서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문제다.
의무조항을 어길 때는 벌금을 물리겠다고 정부가 으름장을 놓기는 했지만, 벌금 상한이 100만유로(약 13억원)로 정해져 있다. 프랑스 건강보험협회연맹 얀 마장은 “(제약회사에는) 별 타격이 되지 않는 액수”라며 아쉬워했다. 사실 벌금 상한의 5만5천 배인 550억유로에 이르는 프랑스 제약회사의 연매출에 견줘 의무 위반으로 내는 벌금은 터무니없이 적다.
결국 의약품 품귀 현상을 해결하려면 근본 원인 제거에 정면으로 맞붙지 않을 수 없다. 원인이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수요에 한참 못 미치는 생산량이다. 생산과정 오류나 원료 부족, 생산능력 부족 같은 이유로 품귀 의약품의 65%에서 수급 불균형이 생기고 있다.
중국 등 신흥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의약품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 전국의약품노동조합의 과학부 대표 토마 보렐은 “수요 증가에 시장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수급이 빡빡해졌다”고 말했다. 생산량이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세계적으로 수요와 공급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의약품 공급 부족은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과 대부분 유럽 국가도 겪고 있다.
 
   
▲ 프랑스 아쟁 부근에 있는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의 약품공장 생산라인. 대형 제약회사들은 비용 절감 등을 위해 많은 생산공장을 중국이나 인도로 옮겼다. REUTERS
보건의료 독립성 상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제약업계도 세계화 추세에 따라 생산시설을 외국으로 옮겼다. 전통 산업국이자 대표적인 소비국에 있던 의약품 공장을, 비용이 적게 들고 규정이 유연한 나라로 옮긴 것이다. 특히 의약품 주원료인 활성분자 생산시설 대부분이 유럽 대륙을 떠났다. 유럽에서 시판되는 의약품 핵심 활성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현지에서 생산됐다. 하지만 지금은 기초 분자의 80%가 중국과 인도 등 유럽 밖에서 생산, 수입된다. 유럽의약품에이전시(EMA)에 등록된 의약품 공장의 61%가 두 나라에 집중됐다.
유럽의약품에이전시에 따르면, 전체 의약품 생산량에서 중국과 인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이보다 적다. 그러나 유럽에서 팔리는 완제품의 40%가 유럽 이외 국가에서 수입되는 만큼 무시 못할 수준이다. 프랑스 상원 역시 “보건의료 독립성을 서서히 잃어간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문제는 생산시설 집중이다. 나탈리 쿠티네 파리 제13대학 경제학자는 “제약업계는 생산시설을 한곳으로 모으고 생산 규모를 늘리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이윤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세계시장에서 소비하는 완제품과 일부 핵심 원료를 생산하는 공장이 겨우 몇 곳, 심하게는 한 곳에 집중됐다. 쿠티네는 “불필요한 재고를 남기지 않으려는 산업 전략에 따른 생산시설 집중으로 공급 불안정성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의약품 생산에는 고도의 기술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 의약품도 적어도 6개월이 걸리고, 어떤 백신은 3년이나 걸린다. “단순한 전기 사고나 이상물질 검출로 생산라인이 한순간 마비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토마 보렐 대표는 말한다.
 
세계화 여파
제약시장 세계화의 여파는 또 있다. 마리크리스틴 벨빌은 프랑스 국립약학회에 낸 보고서에서 “의약품 품귀 현상이 여러 국가에서 일어났을 때 제약회사는 수익성이 더 좋은 시장에 우선 공급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유통단계에서도 생긴다. 유럽 국가 사이의 가격 격차를 이용하려는 도매업체 때문이다. 물가가 낮은 나라에서 약을 사들인 뒤, 약값이 비싼 나라에서 차익을 챙기는 행위로 수급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의약품 품귀 현상은 생산 차질뿐 아니라 제약업체 생산 중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수익성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일부 제품 안정성과 품질 규정이 점차 엄격해져 생산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정부 규제로 가격은 내려가기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쿠티네의 설명이다. “수익성을 잃었다는 말이 한 시점에선 사실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의약품 수익성을 따질 때 제품의 전체 생산 기간을 놓고 생각해야 한다. 특허가 만료되기 전, 다시 말해 더 비싼 가격에 팔던 기간과 특허 만료 뒤를 함께 고려해 제품 수익성을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보가 모두 알려지거나 공개되지 않는 만큼 제약업계 경영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내가 산 약의 생산비용이 얼마인지 알 길이 전혀 없다.
상황이 어떻든 제약업계는 프랑스 시장에서 11% 수익률(전체 매출에서 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을 기록하는 등 ‘건강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사노피는 프랑스 최대 상장기업 40곳(CAC40) 가운데 배당금이 두 번째로 많았다. 그때 주주에게 나눠준 금액은 50억유로(약 6조5천억원)에 이른다.
의약품 생산에서 유통까지 모든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의약품 품귀 현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무엇보다 제약산업 악행을 근절하는 해법이 될 것이다. 마침 프랑스 정부는 얼마 전 자크 비오 에콜 폴리테크니크 전 총장에게 문제 해결을 맡겼다.
첫째 방안은 생산시설을 유럽으로 다시 옮겨오고 여러 곳으로 분산해 품귀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그것의 조건으로 제약업계는 세제 감면 혜택을 요구했다. 하지만 쿠티네는 “거저먹겠다는 소리”라며 “제약회사더러 생산시설을 국외로 옮기라고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비난했다.
생산시설 재이전 외에 여러 방안이 논의된다. ‘중앙 군수용 제약청’ 같은 공기업에 문제가 되는 일부 의약품 생산을 맡기거나, 프랑스 국립의약품청이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제대로 무기를 쥐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국립의약품청에는 관련 인력이 부족하고 책임 기업을 처벌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얀 마장은 “의약품 품귀를 일으킨 근본 원인에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과도하게 이익만을 추구하는 산업 전략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9년 11월호(제395호)
Pénurie de médicaments: la faute à la mondialisation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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