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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파워가 승리의 열쇠
[CULTURE & BIZ] 치열해지는 OTT 미디어 전쟁
[116호] 2019년 12월 01일 (일)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는 넷플릭스의 저예산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영화 <톨걸>의 한 장면. 넷플릭스 누리집
2019년 미디어-콘텐츠 업계는 끊임없이 몰아닥치는 변화와 도전의 소용돌이 속에 한 해를 보냈다. 이제는 주류 미디어라고 해도 손색없는 유튜브의 약진,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의 공습, 국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의 등장, 카카오와 SK텔레콤의 동맹, 지상파 방송사들의 1천억원에 가까운 적자 행진, 재정 악화에 골머리를 앓는 종합편성채널, 미디어 제국 디즈니와 ‘정보기술(IT) 황제’ 애플의 OTT 서비스 등. 이런 변화로 업계는 그야말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새 물결이 미디어-콘텐츠 산업 전반을 뒤덮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 물결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바꿔나갈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나름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현황을 분석하고 여러 전략을 구상해보지만, 무엇이 정답이고 바른 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는 빠르고 예측불허의 연속이었다.
많은 사람이 카오스(혼란)라고 할 정도로 미디어-콘텐츠 산업은 과거·현재·미래가 뒤섞여 단세포생물처럼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평온한 생태계에 갑자기 나타난 생태 교란종 같은 OTT가 업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상황에 비춰, OTT 미디어들이 앞으로도 화두가 될 거라는 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전통(레거시) 미디어들이 적극 나서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이미 진행 중인 업계 재편 국면에서 넷플릭스 같은 신흥 강자에게 주도권을 뺏길 수 없다는 기존 세력의 선전포고로 보는 시각이 많다. OTT 미디어와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전통 미디어의 반격과 기존 콘텐츠 강자의 참전이 본격화한 것이다. 업계에선 2020년이 ‘미디어-콘텐츠 전쟁의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통 미디어의 후회
지속 성장을 거듭하던 넷플릭스의 북미 시장 가입자가 2019년 2분기 하락세를 보였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시장 우려가 반영돼 넷플릭스 주가는 최고가 대비 30% 가까이 떨어졌다. ‘챔피언의 슬럼프’를 노린 듯 2019년 하반기부터 도전자의 출사표가 잇따랐다.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 국내 지상파 3사의 ‘푹’과 SK의 ‘옥수수’를 통합한 ‘웨이브’가 저마다 강점을 가지고 등장했다. 글로벌 시장과 함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시아 시장의 ‘안테나숍’이라는 한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기술 예찬론자들은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나 넷플릭스 같은 ‘정기 결제 동영상’(SVOD) 서비스로 대변되는 새 기술이 산업 전반을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다른 쪽에선 업계 변화가 서서히 그리고 아주 조용히 진행돼, 새 기술이 전통 미디어와 결합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제3의 영역’이 나올 것으로 보는 이도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전통 미디어는 변화 흐름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말까지 나왔다. 뒤늦게나마 국면 전환을 노리지만 쉽지 않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방송사인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광고 매출은 급강하에 가까울 정도로 하락했다. 지상파뿐 아니라 종편이나 유선방송 사업자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리 상황이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IPTV 등 유료방송사업자도 OTT 성장세에 압박을 느끼고 있다.
이대로라면 몇 년 안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전통 미디어들이 갖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이렇게 미디어-콘텐츠 전쟁이라는 ‘링’에 선수들이 하나둘 오르면서 그 중요도가 커진 것이 바로 ‘콘텐츠 파워’다. 전쟁 승리의 열쇠로 불리는 것이다.
2019년 초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를 발표하자 업계에서는 이른 시간 안에 북미 OTT 시장 빅3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디즈니도 막강한 콘텐츠 프랜차이즈와 콘텐츠 파워를 보유한 디즈니플러스의 라인업이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 디즈니플러스는 11월 북미를 시작으로 빠르게 구독자 수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디즈니의 막강한 콘텐츠 파워가 OTT 시대에 시장 선점의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 2019년 8월20일 황윤환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과장이 지상파 방송 3사와 SK텔레콤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 방침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디즈니의 자신감
디즈니플러스 진격을 이끄는 콘텐츠 파워의 선봉장은 마블이다. 마블의 콘텐츠 파워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콘텐츠 프랜차이즈에서 그 원동력이 나온다. 마블코믹스의 여러 작품이 한데 모인 통합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MCU는 현재 구현된 미디어-콘텐츠 프랜차이즈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양한 제작자와 프로덕션이 MCU 깃발 아래 여러 콘텐츠를 제작한다. MCU가 가진 힘의 원천인 것이다.
OTT 시대에 콘텐츠 파워는 고객 충성을 확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디즈니플러스가 OTT 전쟁에서 정상을 지키는 넷플릭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즈니가 보유한 여러 프랜차이즈에는 수많은 팬이 있다. 이는 디즈니플러스가 많은 사람에게 반드시 선택해야 할 OTT로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아직 디즈니 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디즈니에서 발표한 것처럼 그 수는 점점 줄어들다 어느 시점이 되면 넷플릭스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넷플릭스 시장점유율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이미 두 개 이상 OTT를 이용하는 ‘듀얼 홀더’ 비중이 전체 50%에 육박하고 이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디즈니나 애플 같은 후발 주자가 현재 가장 풍성한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보유한 넷플릭스의 벽을 넘기는 힘들 것이다. 넷플릭스와 함께 선택되는 ‘두 번째 선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많다.
 
디즈니가 사라진 넷플릭스?
시간이 지나 후발 주자의 라이브러리가 확대되고, 디즈니 같은 강력한 콘텐츠 프랜차이즈 보유 사업자가 그야말로 파괴력 있는 오리지널 작품을 내놓으면 시장 판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넷플릭스도 디즈니처럼 인수·합병을 통해 강력한 콘텐츠 프랜차이즈를 확보하는 길이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전혀 다른 길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오리지널 영화 <톨걸> 사례처럼 말이다. <톨걸>은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는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 장르의 흔히 말하는 ‘저예산’ 영화다. 하지만 <톨걸>은 2019년 3분기 북미에서만 4400만 가구가 시청하는 흥행을 기록했다. 시청자 수를 발표하지 않기로 유명한 넷플릭스는 이례적으로 <톨걸> 흥행을 보고하며 다른 프랜차이즈를 비싼 값에 사오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발표했다. 마블이나 스타워즈 같은 ‘독점적 블록버스터’를 앞세워 시장을 차지하겠다는 디즈니플러스 전략과 달리, 규모는 작지만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승부하겠다는 것이 넷플릭스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세계적으로 OTT 시장을 둘러싼 거인들 싸움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시장을 지키기 위한 국산 OTT 서비스 업체의 분투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의 통합 서비스 웨이브가 나온 데 이어, CJ E&M과 JTBC가 2020년 합작 서비스로 본격 참전할 전망이다.
현재 한국 시장에선 웨이브가 넷플릭스 대항마로 부각되지만, 업계에서는 웨이브가 맞상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우선 웨이브의 핵심 경쟁력이 지상파 3사 콘텐츠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2019년 7월 지상파 콘텐츠가 특정 기업에만 독점 제공되는 것이 공공재라는 지상파의 성격을 해친다는 심사 의견을 전달했다. 독점 콘텐츠 파워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이상 넷플릭스는커녕 다른 글로벌 OTT 미디어의 공세에도 버텨내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한국 시장의 관전 포인트
2020년은 넷플릭스라는 거대 공룡이 버티고 있는 시장에서 여러 OTT가 시장점유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시청자인 우리야 상관없다는 게 온라인에서 보이는 반응이다. 아니, 싼값에 좋은 콘텐츠를 무한정 즐기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면 이런 전쟁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팝콘을 튀겨놓고 이제부터 본격화할 공룡들의 전쟁을 느긋하게 보는 것도 시청자로서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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