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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맨’은 독일뿐이네
[Insight] 유로화 위기
[9호] 2011년 01월 01일 (토) 얀 플라이슈하우어 Jan Fleischhaue 외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 연방의회의 유럽위원회는 베를린의 정치 무대에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2010년 12월1일 연방의회 유럽 전문가들은 기억에 남을 만한 논쟁의 목격자가 되었다.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와 전 재무장관이자 현 유럽위원회 의원인 페어 슈타인브뤼크 간에 이뤄진 것으로, 주제는 ‘유로화의 위기’였다. 이 논쟁을 통해 경험 많고 노련한 독일 정치인조차 그들이 직면한 공통 통화의 지속적인 침식 현상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확인됐다.
 두 노련한 정치가의 논쟁은 독일 연방공화국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독일인은 믿을 수 없는 심정으로 유로화 위기가 제어할 수 없이 점점 더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 안에서는 최근 숨가쁜 위기 관리 작업 중에 체념이 섞이고 있다. 관련 부서에서는 “우리가 뭘 하더라도 충분하지 않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실제 지금까지의 원조 활동 목록을 보자면 마치 헛된 희망 같다. 어제는 그리스, 오늘은 아일랜드, 내일은 포르투갈이나 어쩌면 스페인까지. 구하고 또 구해도 그들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이행된 긴급구제 또한 효과가 없었다. 2010년 11월 유럽의 재무장관은 아일랜드를 위한 850만유로 상당의 원조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브뤼셀의 유럽연합에서는 이를 ‘결정적 조처’라고 말했고, 쇼이블레는 이제 금융시장이 좀더 안정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유럽 공통 통화인 유로의 탄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고의 빅뉴스였다.

 유로존 위기에 속수무책인 유럽

 결과는 그 반대였다. 유럽연합·영국·덴마크·스웨덴이 금융시장 안정화 작업을 끝내자마자 달러화 대비 유로화의 환율이 또다시 최저로 떨어졌고, 국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가산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남유럽 국가의 국채를 사들이기 시작하고서야 주식시장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문제는 ‘유로화의 수호자’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자주 어려움에 처하지 않고 구제책을 반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ECB가 누구도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파산 국가의 국채를 모아 처리하는 유럽의 ‘배드 뱅크’가 될 위험이 있다. 결국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처럼 국가 부채를 새로 찍어낸 돈으로 감당하고, 그로 인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다.
 베를린과 파리, 브뤼셀은 물론 다른 유럽연합 회원 국가에서도 공포가 떠돌고 있다. 유럽이 위기 극복 방법을 곧 찾아내지 못한다면 거대한 경제 붕괴가 발생할지 모른다. 통화 공동체가 붕괴됨에 따라 경제 파탄이 일어나는 것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결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시나리오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이끌어줄 리더를 갈구하고 있지만, 지금 유럽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리더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당면한 가장 거대한 경제적 도전과제 앞에 대륙의 정치적 엘리트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소심하고 분열되고 중압감에 눌린 모습을 보여준다.
 몇 주 전 유럽 국가의 수장들은 브뤼셀에서 각국의 재정정책을 더욱 강하게 감시할 것에 합의했다. 하지만 통화 분야 담당 위원인 올리 렌이 그에 따른 계획을 최근 유럽 각국의 수도로 보냈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거절뿐이었다. 국가지출에 대한 감시마저 회원국들은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의 돈, 유럽 대륙의 정치 구조, 그리고 급변하는 세계에서 유럽이 미래에 가지게 될 의미 등 많은 것이 걸린 상황이다. 중국은 최고의 경제대국이 돼가고 있고, 미국은 쓰러졌다. 그럼 유럽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유로화가 붕괴하면 유럽 통합 과정이 수십 년 후퇴하게 된다. 새로운 연합이 만들어질 것이고, 전후시대에 이룬 가장 큰 업적인 공동 내수시장이 위협받게 된다.
   
그리스 공산당 지지자들이 2010년 11월 아테네 시내에 모여 정부의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로화는 최근까지 성공한 것으로 여겼었다. 20년 전 정부 수장들이 공통 통화 도입에 합의했을 때 수많은 경고가 있었지만, 이 모든 경고는 유로화가 발달함에 따라 근거 없다고 확인된 것처럼 보였다. 유로화는 3억3천만 시민들의 경제적 교류를 더욱 쉽게 만들어줬고, 점점 더 많은 나라가 유로존에 참여하게 됐고,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인플레이션율은 평균 2% 이하였다. 해가 지날수록 유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무게를 가지게 됐고, 유로화가 언젠가 달러를 누르고 국제통화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이 성공 모델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음이 알려졌다. 전 집행위원회 위원장 자크 들로르가 1980년대 후반 공통 통화의 청사진을 제시한 이후 경제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경고했다. 유로화는 오직 그에 알맞은 경제 및 금융 정책이 수반됐을 때만 성공한다는 것이다. 회원국은 최소한 엄격한 원칙에 따른 예산 집행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고, 절대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 구제돼야 할 정도로 빚을 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정치가들은 서류상으로는 이 충고에 따랐다. 그들은 정치적 연합을 결성했고, 엄격한 절약과 함께 유럽 조약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위해 보증을 서서는 안 된다’는 채무인수금지 조항을 끼워넣었다.
 하지만 실제 정치에서 이 의도는 1999년 유로가 공식적으로 도입되기 이전에 깨져버렸다. 이른바 ‘유럽 정치 연합’은 시작부터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유럽연합의 재정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규칙과 과정, 협정은 많은 나라에 단지 술수를 써서 피해가야 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어떤 나라를 새로운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느냐는 정해진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 즉 경제적 수치만이 아닌 정치적 편의성에 따라 결정됐다.

 끼지 말았어야 할 이탈리아와 그리스
 
 이로 인해 절대로 가입이 허가돼서는 안 될 회원국이 생겨났고, 많은 정부가 몇 년에 걸쳐 그들에게 허용된 이상의 소비를 하는 바람에 곧 유럽 곳곳에 거대한 ‘부채의 산’이 쌓였다. 경제위기와 함께 새로운 부채가 더해졌고, 몇몇 유로존 국가는 그들의 부채를 청산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대안은 없다. 오직 유럽 정부가 현재 닥친 사태의 원인이 유럽 정부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공통 통화가 도입되기 2년 전 테오도르 바이겔은 곧 모든 유로화 관련 논의에서 사용하게 될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독일 재무부 장관이던 바이겔은 1996년 <슈피겔> 인터뷰에서 “3은 3이다”라고 고집스럽게 말했다. 이 말은 재정이 건실한 국가들만 새로운 유럽 통화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바이겔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부가 매년 국가총생산의 3% 이상 새로운 부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3.2%나 3.3%처럼 기준에 아주 조금 미달할 때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바이겔이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국가가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의 대국들 가운데 가장 큰 재정 적자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를 포함시키는 것을 만류하는 시급한 경고를 보냈다. 도이체방크의 총재 울리히 카르텔리에리는 이탈리아가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했다. 키엘의 경제학자 호르스트 지베르트는 통화 공동체가 알프스산맥을 기준으로 북쪽 국가에 제한되지 않는다면 유로화 추락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유로화를 국위를 반영하는 프로젝트로 보고 많은 압력을 가했다. 당시 이탈리아 총리 로마노 프로디는 본·브뤼셀·파리·마드리드에서 “이탈리아가 빠진 유럽 통화 공동체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외쳤다. 리라가 평가절하되고, 인플레이션이 새로 시작되고, 이탈리아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면 유럽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재무장관 카를로 아제글리오 키암피는 “이탈리아는 유럽이 필요하지만, 유럽 또한 이탈리아가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그에 덧붙여 이탈리아 정부는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유일하게 국가 부채를 많이 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중반 안정적 재정 상태를 보이는 유럽 국가는 룩셈부르크와 아일랜드뿐이었다. 다른 국가들은 모두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많든 적든 회계를 조작했다. 심지어 독일조차 독일 통일 비용이 1천억마르크 단위로 늘어난 뒤 재무부가 적절하게 회계를 조작해야 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의 가입을 반대하는 가장 결정적 논거가 사라졌다. 독일도 똑같은 방식으로 회계를 조작하면서 어떻게 이탈리아의 대차대조 조작에 반대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1998년 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 외 10개국의 통화 공통체 가입 자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진실은 이탈리아의 가입이 큰 실수였다는 것이다. 이후 통화 공동체 가입은 경제적 기준이 아니라 유럽 정치계의 ‘음모게임’이 결정한다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많은 국가들이 유로존에 가입했다. 그중에는 조작된 수치 말고는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는 국가들도 포함됐다.
 2000년 4월6일 그리스가 유럽 공동체에 가입하기 8개월 전, 헤센주 중앙은행 총재 렉커스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래는 금융감독, 금리 동향 등 일반적인 주제만 다룰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렉커스가 헛기침을 하더니 유로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리스가 통화 공동체에 가입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돼 있는지 의심이 간다면서 그리스의 가입을 최소 1년은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 뉴스가 전송되자마자 아테네의 주식시장에 압박이 가해졌다. 그리스 중앙은행은 비상 매입을 통해 힘들게 드라크마(그리스 화폐 단위)의 추락을 막았다. 렉커스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자 흥분한 연방은행 총재 에른스트 벨테케가 전화를 걸어 그의 발언이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오늘날에는 그리스가 유럽 공동체에 가입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 이탈리아 총리이자 2004년 유럽연합위원회 의장이던 로마니 프로디는 “그리스는 자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을 속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속이도록 허락된 자만이 속임수를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확실한 반대 의견이 있었다. 1998년 5월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브뤼셀 특별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통화의 도입을 결정했을 때, 그리스는 유일하게 회원국 가입이 거부된 유럽연합 국가였다. 그리스는 유로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유럽연합에서 정한 기준을 단 한 가지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 정상회담은 그리스에 굴욕이었다. 하지만 작은 위안도 있었다. 회원국 가입은 배제된 것이 아니라 단지 연기됐을 뿐이다. 2000년 여름 유럽의 각국 정부는 최종적으로 그리스의 통화 공동체 가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적자투성이 나라를 경제적 모범국가로 만들기 위해 18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일반적인 조건이라면 거의 달성할 수 없는 목표였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언제나 발명에 천재적인 민족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 브뤼셀에서 유행어가 된 ‘그리스식 통계’라는 창조적 회계가 도입됐다.
 그리스 재무부는 공립병원이나 지방정부의 부채 일부를 예산에서 빼놓고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에서 전통적으로 예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군사비용 또한 일부는 배송이 끝난 지 한참 뒤에 청구되도록 했다. 심지어 브뤼셀 유로스타트의 재정 감사관들에게 적자를 보고할 때 마지막 0 하나를 빼버렸다.
 그리스 재정 상황의 극적인 개선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이미 1998년 9월 그리스 콘스탄티노스 시미티스 총리 정부는 자랑스럽게 다음 연도에는 적자가 2.4%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보고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유로존 가입 기준에 통과했고, 다른 수치들도 조작되기 시작했다.
 브뤼셀 혹은 그외 다른 유럽 국가의 수도에서는 누구도 그리스의 기적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서양 문명의 요람인 그리스의 가입을 나서서 거절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2000년 6월20일 그리스 총리 시미티스는 포르투갈 산타마리아 다 페이라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성공을 자축할 수 있었다. 그리스는 이제 최종적으로 유럽 공동체 회원국 가입이 확정됐다.
 그리스가 가입하자 유럽 전역에서 축하행사가 열렸다. 그리스의 가입은 이후 유로존의 특징이 될 경제적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 안정적 통화와 엄격한 예산 규정을 보유하던 북부의 견실한 경제강국들이, 정치적 문제를 국가 부채로 해결해버리는 전통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남부 국가 블록과 마주했다. 이미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유로화가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약물에 취한 아일랜드

 대부분의 아일랜드인은 과대망상증에 빠진 부동산 개발업자와 책임감 없는 은행가들이 아일랜드를 파산 직전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아일랜드 위기 역시 실제 원인은 잘못 구축된 유럽 통화 연합과 그 정치적 유혹의 결과물이었다.
   
아일랜드 시민들이 2010년 11월 더블린 시내에서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일랜드는 1999년 유로화를 도입할 당시 경제적 측면에서 모범생으로 여겼다. 아일랜드 경제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4배 가까운 성장 속도를 보였고, 실업률은 6% 이하였다. 아일랜드 파운드가 계속 존재했다면 더블린 중앙은행은 아일랜드의 호경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곧 금리를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ECB는 금리를 낮게 유지함에 따라 아일랜드의 부동산 붐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아일랜드 정치가들 역시 유리한 금융 조건에서 이득을 보려 했다. 그들은 금융 부문에 대한 요구사항과 규제를 줄이고, 그를 통해 수많은 국제은행을 자국으로 끌어들였다. 동시에 아일랜드 정부는 세금을 완화해 부동산 붐에 더 불을 붙였다.
 이 조건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 부풀어가던 모기지 및 금융 거품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낮은 금리 때문에 국민은 빚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졌다. 부동산 붐의 시대에 환경미화원과 건설노동자들이 전원 주택을, 독일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너무 비싼 가격으로 평가될 것이 확실한 가격으로 사들였다. 아일랜드는 약물에 취한 나라였다. 하지만 브뤼셀과 다른 유럽 국가의 정치가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국가 채무의 수치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 수치는 ‘위험 없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뒤 경제위기가 오자 아일랜드인은 그들이 쌓아올린 부의 대부분이 오직 종이 위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 총리 브라이언 카우언은 2008년 9월 말 정부가 모든 국립은행을 보증한다고 선포했다. 가장 확대된 국가 보증은, 오늘날 볼 수 있듯이, 결정적인 오류였다. 2009년 1월 최초의 아일랜드 은행이 국유화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GDP의 약 20%를 은행을 구제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몇 달 사이에 그리 건강해 보이던 국가재정이 파산했고, 유럽 국가의 정부 수장들은 아일랜드 구제 계획을 세웠다.
 이 구제 프로그램에 아일랜드인, 그리고 ‘배드 뱅크’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윌리엄 맥도너가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그는 벌써 몇 달 전부터 약 10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팀과 함께 2천만유로 이상의 거대 채무의 서류를 뒤지고 있다. 그는 그 돈의 절반가량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외 다른 유럽 국가에도 새로운 공포가 닥쳐올 수 있다. 거의 죽어가는 아일랜드를 살리기 위해서는 850억유로가 필요하지만, 구대륙의 중심 도시들에서는 이 원조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유로존 회원국은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정부를 도울지 여부에 대해 서로 다투었다. 독일은 반대했고,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은 찬성했다.

 구원의 손길은 어디에…

 그 뒤 유럽인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하룻밤 만에 재정 문제가 있는 모든 유로 국가를 위한 구제제도를 만들어냈다. 그 규모는 7500억유로였다. 이 거대한 금액이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고 투기꾼들을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책임자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리고 2010년 11월28일 아일랜드 구제계획을 결의할 때, 그들은 또다시 현실 앞에 항복해야 했다.
 하지만 시장은 이 구제계획을 경제적 강력함의 표시가 아니라 계산 착오의 인정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독일 재무부조차 협상 목표를 달성하고도 만족감을 만끽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상시 위기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엄청난 패배’라는 말이 돌았다. 독일 협상가는 모든 중요한 문제에서 양보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위기에 처한 포르투갈을 아일랜드와 함께 동시에 구제계획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도 실수였다. 이 조처는 재무부 장관이 작은 그룹 안에서 잠깐 논의했고 독일도 이 안에 동의했지만, 결국 새로운 짐에 대한 공포가 승리했다.
 거대 은행의 경제 전문가들은 모두 이 결의가 왜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을 것인지에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유럽에는 지금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은 유로존 국가들이 조정된 결의를 통해 그들의 통화를 스스로 구해낼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코메르츠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외르그 크룀머는 “유로화 위기의 근본적 핵심은 신뢰의 위기다”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마스 마이어는 그리스를 예로 들었다. 엄격한 긴축재정을 계속 시행하더라도 그리스의 부채는 2013년 GDP의 160%가 될 위험이 있다. 이는 현재 매우 높은 부채 때문에 위험 후보로 꼽히는 이탈리아보다 많다. 마이어는 확신이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많은 나라들이 차례로 딜러들에 의해 위기 위험 후보로 거론됐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처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성장률이 높은 나라인 벨기에가 거론됐다. 최고 품목 역시 의심 많은 시장 참여자에 의해 검증받고 있다. 2010년 11월 마지막 주 프랑스 국채의 AAA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조짐이 보였다. 많은 원조 부담을 져야 하는 독일 국채도 점점 많은 이자를 내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볼프강 쇼이블레는 오래전부터 유로존의 개별 국가를 파산에서 구하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현 위기는 확신 있는 유럽인의 눈으로 보면, 유럽이 그들의 공통 통화를 지키려는 정치적 의사를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를 위해 정치 공동체로 가는 길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쇼이블레는 그와 마찬가지로 더 자세한 정치적 결정 과정 도입을 촉구하는 경제학자의 지지를 받고 있다. 독일 상공회의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커 트레이어는 “투자자들은 우리가 유로화를 도입할 당시 실행하지 못했던 일, 유로존 내의 더 강력한 경제 및 재정 정책 공조를 이제 이행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 그룹 의장이자 룩셈부르크 총리 장클로드 융커는 2010년 11월 말 베를린을 방문했다. 그는 범유럽 채권을 선전했다. 유로존 회원국이 함께 시장에 내놓은 채권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부채 국가에는 이자가 자국의 채권보다 낮기 때문에 이득이 되고, 독일같이 자본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나라에는 자국의 채권보다 범유럽 채권의 이율이 더 높기 때문에 손해가 된다.
 융커의 제안은 범유럽 채권을 발행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국가에 필요한 돈의 60%를 마련해주고, 나머지 40%는 각 국이 스스로 자본시장에서 마련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탈리아 재무장관 줄리오 트레몬티만 그의 제안에 찬성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이 방안을 반대하고 있다.
 높은 이자를 물거나 파산에 직면한 다른 유로 국가에 지원하거나, 어떤 방안을 채택하더라도 독일이 새로운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통화 공동체를 지키려면 독일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문제는 독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짐을 짊어지고 있을 생각이 있느냐다. 독일이 계속 새로운 구제 활동을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곧 유로존에서 나가자는 요구가 커질 것인지?
 도이체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어 같은 현실적인 경제 전문가마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통화 공동체에서 분리되자는 독일식 ‘티파티’ 운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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