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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으로
[Editor's Letter]
[115호] 2019년 11월 01일 (금)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태초의 장미는 이름으로 아직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이름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1980년에 내놓은 소설 <장미의 이름>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소설은 참 재미있습니다. 이야기는 1327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윌리엄이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도착하면서 벌어집니다. 윌리엄은 수도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는 <시학2>를 읽는 수도사가 영문도 모른 채 하나씩 죽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학1>은 비극을 다뤘고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시학2>는 희극을 다뤘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의문을 파헤치던 월리엄은 마침내 범인을 찾아냅니다. 범인은 누구일까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범인은 ‘불완전한 것을 진리로 만들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도륙’당했습니다. 진리라고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절대시하는 순간 파멸에 이른다는 걸 소설은 잘 보여줍니다. 역사에서도 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종교란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 이데올로기를 기치로 일어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덧없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절대적으로 믿는 진리가 하루아침에 신기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경영학에서 이미 입증됐습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1980년대 일본 기업 경영시스템을 진리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헛되이 사라졌습니다. 기업으로 좁혀 보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핀란드 노키아는 한때 벤치마킹 대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검찰과 언론 유착 사태로 끝내 낙마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마지막 기자회견을 보면서,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었습니다. 검찰은 스스로 지고지순한 진리인 것처럼 보이려 했고, 언론은 그게 진실인 양 받아썼습니다. 진리를 의심하고 팩트를 찾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새삼 소설의 배경인 중세 유럽과 현재 한국 사회가 놀랄 만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참, 에코는 이런 에세이를 썼습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그 바보들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화내야 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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