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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에도 투자 못 받는 저소득 창업자에 희망 주다
[PEOPLE] 백스테이지캐피털 알런 해밀턴- ② 가치관
[113호] 2019년 09월 01일 (일) 기도 밍겔스 economyinsight@hani.co.kr
기도 밍겔스 Guido Mingels <슈피겔>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고 그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했던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은 알런 해밀턴이 가장 경멸하는 대상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피터 틸이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알런 해밀턴이 설립한 백스테이지캐피털은 ‘부티크-투자-펀드’라고 자칭한다. 해밀턴이 창업자들에게 발행하는 수표는 2만5천~10만달러 수준으로 소액일 때가 자주 있어서다. 실리콘밸리 척도로 볼 때, 상당히 적은 금액이다. 해밀턴 펀드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 점을 내세운다. “실질적인 경제성장에 비해 세간의 주목을 훨씬 더 많이 받고 있다. 기관 투자자에게는 돈을 적게 들이면서 훨씬 효과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면하는 아주 편안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는다.”
 
그러나 해밀턴의 재정 지원을 받는 기업가들은 백스테이지캐피털을 두고 “얼음을 부숴줬다”거나 “용기를 줬다”는 말로 고마움을 표한다. 수표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상당수 창업주에게는 생애 처음 받아보는 모험자본이기 때문이다. 마메(Mahmee) 출신 멜리사 해나에게도 이 점이 중요하다. 해나 회사는 임신부와 산모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밀턴은 내게 전화한 최초 투자자였다. 그는 일단 자신이 직접 투자한 뒤 다른 투자자도 주선해줬다.”
 
백스테이지 서류철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창업자 아인데 알라코예는 언어인식 소프트웨어를 파는 회사를 운영한다. 그는 한 라디오 토크 프로그램에서 해밀턴이 말하는 걸 처음 들었다. “‘흑인에게 투자할 것’이라는 해밀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까지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 피부색을 보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나지 않는 사람, 아니 오히려 나를 초대하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해밀턴은 과격하다 할 만큼 정직하다. 그는 트위터라는 매체에서 이 정직성을 전달해왔다. “알런이 여기 있었다 @ArlanWasHier”는 이름으로 알코올중독, 외로움 같은 사적 영역을 풀어놓는다. 피터 틸, 일론 머스크, 폴 그레이엄 등 실리콘밸리에서 전설이 된 인물을 공격하는 공간도 바로 이 트위터다.
 
독일 태생 페이팔(PayPal) 공동 설립자이자 수십억달러 부자이고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인 피터 틸은 해밀턴이 특히 경멸하는 대상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얼마 앞둔 시점에서 틸은 트럼프를 향한 정치적 지지와 자금 지원을 선언했다. 이에 해밀턴은 “나는 앞으로 젊은 기업가 어느 누구에게도, 틸이 상담가이자 멘토로 있는 유명한 실리콘밸리 창업센터 Y콤비네이터에 응모하라고 권하지 않겠다”고 트위터에 썼다. Y콤비네이터 대표이자 과거 해밀턴 지원자였던 샘 알트먼이 “당신 직원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를 해고할 거냐”고 반문했고, 해밀턴은 즉각 이렇게 반격했다. “백번 양보해서, 당신 말이 다 옳다고 해도 ‘누구를 지지한다’는 것과 ‘인종주의자·성차별주의자인 성폭행범에게 125만달러를 기부한다’는 건 다른 문제다.”

돈에는 지나지게 적대적
“38살이 되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2만달러 이상 번 적이 없다.” 해밀턴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돈에 대해서만큼은 첨단기술 관계자 사이에 보기 드물게 적대적 견해를 드러낸다. “돈은 적이다. 나는 이 적에게서 한시도 눈을 뗀 적이 없다.” 미국 국민 12%는 공식적인 빈민으로 분류된다. 해밀턴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평생 돈에 대해 ‘늘 부족한 것’으로만 알아왔다. 어린 시절, 가끔 돈을 증오하기도 했다. 없어서 늘 문제였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돈은 엄마를 울리는 것, 우리를 굶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캘리포니아로 오기 전, 해밀턴은 음악밴드 투어 콘서트 제작팀 스태프로 일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꾸렸다.

   
▲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페이스북 캠퍼스 전경.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자리잡은 샌프란시스코는 다양성을 인정받기 힘든 구조를 보인다. 산업 종사자 대부분이 백인이고, 흑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REUTERS
대표직 내려놓고 집필, 팟캐스트 운영 
해밀턴이 하는 일이 모두 순조롭게 풀리는 건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는 업무 추진 과정에서 여러 차례 타격을 입었다. 이미 널리 공표했던, 흑인 여성 창업자를 위해 특별히 만든 투자펀드가 있었다. 해밀턴이 ‘제기랄, 이제 드디어 때가 된 거야 펀드’(It’s About Damn Time Fund)라고 명명한 이 펀드에 3600만달러가 투입될 예정이었는데, 실현이 불가능해지면서 굵직한 투자자가 모두 중도하차해 버렸다. 그는 백스테이지캐피털 직원을 해고하고, 스스로 사장 직함도 내려놓았다. 대신 계획 중이던 책을 쓰고 팟캐스트를 새로 여는 등 공적 활동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해밀턴과 인터뷰하는 동안 대화가 중단되기 직전까지 치달았던, 그래서 인터뷰가 수포로 돌아갈 뻔한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그가 인터뷰 도중 갑자기 “잘 들어라. 그건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야”라고 쏘아붙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질문한 ‘도대체 얼마나 노숙인 생활을 했던 거냐?’는 매우 모욕적”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생활을 간단히 설명해달라는 부탁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실제 해밀턴이 거리에서 살았던 시절 이야기, 즉 수년간 친지들 집을 전전하고 공항 바닥에서 잤던 일화는 여러 인쇄매체에 다양하게 보도된 상태였다. 질문 취지는 이런 기사 중 어느 것이 가장 사실에 부합하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노숙자 알런 해밀턴이 모험자본가가 되기 전 어떤 생활을 했는지, 정확히 알리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 말이다. 
 
해밀턴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여러 매체에서 말했기에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을 피곤해했다. 한편으로 그는 이런 질문이 자신이 겪은 노숙인 생활의 진정성에 의혹이 있음을 간과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정말 철저하게 노숙인이었을까?’ ‘샌프란시스코 시내 거리에서 보는 세파에 찌든 노숙인처럼, 그렇게 완전하게 비참한 생활을 했을까?’ 하는 미심쩍은 눈초리 말이다. 이전에 겪은 고난 정도를 이리저리 재보려는 이러한 시도를, 그는 주제넘은 행위로 여기는 것이다.  
 
해밀턴의 침묵이 꽤 오래 이어졌다. ‘“나가달라”는 말이 나오겠구나’라는 마음의 준비를 할 즈음 그가 입을 열었다. “성인이 돼서 현재까지 오는 시간 가운데 거의 절반을 다양한 노숙 생활을 하며 살았다. 물론 고속도로 다리 아래 구석에서 천막을 치고 산 적은 없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1달러를 손에 쥐고 도넛 가게에 들어간 적은 있다. 그날 식량이 될 도넛 한 개를 사기 위해서였다. 내가 매장에 조금 앉아 있으려 하면 주인이 쫓아내곤 했다. 오랫동안 집주소도 없었다. 그러면 살기가 참 힘들다. 공공기관 자료에 내 존재는 없다. 투명인간이 되는 거다. 지금 이 나라에 과거의 나 같은 투명인간이 몇십만 명은 될 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체험했던 노숙인 모습이다.”
 
해밀턴에겐 약혼자가 있다. 상대는 레즈비언인 독일 여성이다. “약혼자를 트위터 프로필에 @queergermangir(Verlobt mit@queergermangirl)라고 적시해, 이 관계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올해 30살인 안나 아이헤나우어다. 독일 바이에른주 밤베르크 근처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다. 두 사람은 온라인에서 만났다. 해밀턴이 페이스북에서 진행하는, 15달러를 받고 30분 동안 전화 상담을 해주는 경력 코칭 코스를 통해서다. “우리는 몇 시간씩 수다를 떨었다. 그러기를 몇 주, 몇 달간 하다가 마침내 직접 만났다. 그때부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됐다.”
 
2019년 6월 초, 해밀턴은 아이헤나우어를 만나러 독일 뮌헨에 갔다. 뮌헨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하며 독일 세관 앞에서 겪은 일을 트위터에 올렸다. 해밀턴 트위터 글이 인종차별·동성애혐오 사건에 관한 소식으로 가득 차 있어, 그의 트위터를 읽을 때마다 최악의 소식을 듣게 될까 약간 겁이 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 2019년 9월호 종이잡지 42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9년 25호
Aus dem Nichts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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