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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과 세대 간 공생
[박중언의 노후경재학]
[110호] 2019년 06월 01일 (토)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부편집장

   
▲ 경기도 용인 버스영업소에 주차된 버스에 준공영제 시행을 촉구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정부와 버스업계 노사는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버스 기사 정년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얼마 전 전국의 버스가 운행을 멈출 뻔했다. 다행히 버스 파업 직전에 노사 협상이 타결됐다.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에 따른 기사 임금 하락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노사 합의안에 눈길을 끄는 다른 대목이 있었다. 버스 기사 정년 연장이다. 시도마다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현재 60~61살인 정년을 63살까지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대목에선 노·사·정 갈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주 52시간 노동제로 크게 늘어난 기사 수요를 채우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 정년 연장이라는 공감이 컸다. 버스업체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정년 연장에 따른 인건비 증가 부담을 직접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준공영제로 업체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적자를 보전받는다.

틈새 일자리 주목
운수업계는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는 업종이다. 청년 실업으로 온 사회가 몸살을 앓지만 젊은 버스 기사는 드물다.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이 열악해서다. 그래서 이전에도 정년 이후 촉탁 형태로 계속 버스를 모는 기사가 적지 않았다. 정년 연장은 촉탁직으로 바뀌어 발생하는 임금 삭감을 막는 효과가 있다.

버스업계의 정년 연장 합의는 고령화 사회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노후의 일에서 정년은 비껴갈 수 없는 주제다. 보통 직장인에게 정년은 일할 권리의 보장인 동시에 합법적 박탈을 뜻한다. 정년이 되면 고용을 요구할 권리가 사라진다. 젊은 사람이 원하는 일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겠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대법원이 육체노동자의 노동 가능 연한을 65살로 판결했다고 정년이 일제히 늘어날 리도 없다.

정년 이후에도 일하려면, 누군가 일할 사람은 필요하지만 젊은이가 꺼리는 틈새 일자리를 찾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이런 부문에선 민간기업도 인력이 절실히 필요해 ‘나이 차별’ 여지가 별로 없다. 이런 일자리를 늘리고 그 질을 높이도록 하는 지원은 투입 대비 효과가 크다. 사회와 나이 든 사람의 ‘윈윈’이다. 이 측면에서 버스업계 정년 연장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돌봄 노동도 대표적 틈새 일자리다. 나이 든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돌보면 사회적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그런데 요양원 등에서 인건비를 줄이느라 사람을 워낙 적게 쓰다보니 돌봄 노동을 하는 중장년이 병원 신세를 질 지경이다. 일자리나 복지 예산을 무작정 투입하기보다 이런 영역에 주목하는 게 바람직하다. 요양보호사를 더 채용하는 조건으로 적절한 인건비 지원을 하면 일자리 창출과 함께 복지 질이 향상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훨씬 진전된 일본에서 70살 정년 논의가 본격화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 배경에는 21세기 들어 유례없는 일본의 인력난이 깔려 있다. 하지만 기자가 20년 전 일본에서 연수할 때도 일본어 교육 자원봉사를 하던 70대 주민은 정년까지 다닌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령화에 따른 숙련 노동자의 대량 은퇴로 인력난이 훨씬 심각해져 정년을 공식적으로 늘리는 법 개정까지 추진하는 것일 따름이다.

정년 연장 로드맵
한국도 일본만큼 심각한 상황을 겪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명예퇴직, 희망퇴직 등 갖가지 이름을 붙여 나이 든 사람을 밀어내는 기업들이 자발적 정년 연장으로 돌아서는 것도 그리 먼 미래 일이 아니지 싶다.

선진국 가운데 한국보다 정년이 이른 나라는 없다. 프랑스만 62살로 2년 연장했다가 연금 지급이 늦어지는 데 대한 거센 저항으로 원위치로 갔을 뿐이다. 북유럽은 60대 후반으로 늦추고, 미국과 영국에선 법정 정년이 폐지된 지 오래다.

정년은 연금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선진국 대부분에선 정년이 곧 연금 지급이 시작되는 시기다. 주된 수입이 사라졌는데 공적 연금을 주지 않는 건 각자도생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국가 차원의 가장 중요한 노후 대책인 공적 연금의 취지에 어긋난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선 법정 정년조차 채우지 못한 채 직장에서 밀려나는 중장년이 넘쳐난다.

정년과 연금 지급의 불일치는 되도록 빨리 해소해야 한다. 세계적 고령화 추세에 비춰볼 때 정년을 단계적으로 늘려 연금 지급 시기에 맞추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여기에는 정년 연장에 따르는 기업 부담을 낮추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일하는 60~70대가 늘어난다면 고령화 문제의 무게는 한결 줄어든다. 세금 내는 사람이 그만큼 많으니 자녀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이나 국민연금 고갈과 파산을 둘러싼 논란도 수그러들 것이다.

사회적 이익
나이 든 사람과 일하는 고령자 증가는 노인 복지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기 마련이다. 2019년 초 주관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노인 기준’이 되는 나이를 65살에서 70살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대표적 사례다. 기초연금을 비롯해 대부분 ‘경로우대’ 혜택 기준은 65살에 맞춰졌다. 이 논란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도시철도 무료 승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인 복지는 인도적 관점만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도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매우 크다. 지원 예산보다 훨씬 많은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에게 무료로 주는 지하철 표가 병원 치료비와 약값으로 새나가는 건강보험 재정을 튼실하게 만든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기초연금이 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이 그 몇 배의 요양보호 비용만 허비하다 숨지는 불행을 막는다. 노인 복지 강화가 오히려 자식 세대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사회가 굴러가려면 갖가지 일이 필요하다. 젊은이가 꺼리는 일을 나이 든 사람이 더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대 간 공생’이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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