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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은 개인 자유의 마지막 보루?
[Cover Story] 지금은 페이 시대- ④ 유로존 국가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크리스티앙 샤바누 economyinsight@hani.co.kr

크리스티앙 샤바누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오스트리아 금융회사의 본부 사무실에 유로 지폐가 다발째 보관돼 있다. 500유로 지폐는 2019년 4월 유럽 전역에서 발행이 중단된다. REUTERS

독일과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을 위해 마지막 판을 찍고 나면, 2019년 4월26일로 500유로(약 64만원)짜리 지폐 발행은 완전히 중단된다. 유로존의 다른 중앙은행도 2019년 1월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이제 500유로 지폐를 가진 사람은 드물어질 것이다. 이미 500유로 지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유럽 통화 당국이 500유로 지폐 발행을 중단한 이유다. 신용카드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결제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굳이 잘 쓰지도 않는 500유로 지폐를 계속 찍어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비전형적인 프랑스
그렇다면 유럽중앙은행은 유럽을 ‘현금 없는 경제’로 유도하기 위한 조처를 해나가는 중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아직은 아니다. 전자결제 확대를 지지하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현금 없는 세상으로의 변화는 위험을 수반할 수도 있다. 
2018년 말 기준, 유통 중인 유로 지폐 총액은 1조2310억유로(약 1600조원)다.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의 약 8%에 이른다. 500유로 지폐는 약 5억2200만유로로, 유통되는 지폐 물량 기준 2.5%, 금액 기준 21%를 차지한다.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은 2014년 이후 사실상 500유로 지폐를 발행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2004년, 2005년, 2007년, 2009년, 2010년에 불규칙적으로 발행했다. 다른 지폐는 2002년부터 거의 매년 발행됐다. 유로존 지폐 유통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신용카드 결제가 급증했지만 여전히 현금결제에는 훨씬 못 미친다. 유럽중앙은행 연구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유럽 각국 소매점에서 1570억 건이 거래됐다. 그중 79%는 현금결제였다. 19%는 카드결제였고, 나머지는 수표, 휴대폰 등 기타 결제였다. 결제액으로 따져도 현금결제 비중이 54%로, 카드결제(39%)보다 높다. 
현금에 대한 사용자 태도는 국가에 따라 매우 다르다. 유럽인은 지갑에 평균 65유로(약 8만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인은 평균 100유로, 프랑스인은 32유로를 갖고 다닌다. 프랑스인은 유럽연합 중에서 현금을 덜 이용한다는 점에서 비전형적이다. 프랑스 상점에서 현금결제 비율은 전체의 68%다. 유로존 19개국 가운데 13위다. 거래액으로 보면, 최하위인 네덜란드보다 다소 높은 28%(18위)다. 건당 현금 거래액은 7.5유로로 포르투갈과 공동 최하위를 기록했다. 

 세계적 추세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카드 결제는 훨씬 활발하다. 하지만 현금결제 비중이 높은 것은 유럽만의 특징이 아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결제액 기준으로 카드가 현금보다 많긴 하지만 양쪽 다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2000~2016년 카드결제 금액은 세계 GDP의 13%에서 20%로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결제액이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지만, 한국이나 영국에서는 40%가 넘는다.
같은 기간 현금결제 금액은 세계 GDP의 7%에서 9%로 증가했다. 국제결제은행은 소액권과 고액권을 나누는 기준을 75달러로 했을 때, 지폐 수요를 이끄는 것은 고액권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국민의 현금 비축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집에 현금을 보관한다’는 응답자가 25%에 이른다. 프랑스에선 그 수치가 15%다. 이와 함께 유로 지폐의 3분의 1은 유로존 외부에서 유통된다. 유로존 외부에서 유로 지폐 수요의 적잖은 부분을 지탱하는 것이다.
현금, 특히 고액권을 얘기할 때면 자연스럽게 돈가방을 떠올린다. 돈세탁이나 조세포탈에 사용되는 돈가방이다. 이런 목적의 현금 운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으로 돈을 옮기는 것은 현금의 물리적 이동뿐만 아니라 법적 이동을 필요로 한다. 특정 소득이나 자산의 실제 수혜자가 은폐되고, 돈의 흐름이 거의 통제되지 않으며, 세금이 부과되지 않거나 적게 되는 나라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이다.

 

 
▲ 러시아 모스크바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고객이 애플페이로 커피값을 내고 있다. REUTERS

더러운 돈
2018년부터 외국에서 금융거래를 할 때 거래인 정보가 본국 조세 당국에 자동으로 전달되는 조세정보 자동공유 규정이 실행돼, 전자 거래 흔적을 은폐하기 위한 여러 방법이 시도됐을 것이다. 거래 내역을 컴퓨터 기기가 아니라 작은 수첩에 기록한다든가, 물리적으로 현금을 운반한다든가 하는 방법이다. 고액권 감소는 이런 일을 막는 데 기여할 것이다. 1천만유로(약 128억원)를 500유로 지폐로 운반한다면 무게가 약 2㎏밖에 되지 않는다.  

득과 실
그러나 현금결제는 단순한 불법자금 차원을 넘는 문제다. 독일 금융전문기자 노버트 하링은 현금 이용을 줄이는 두 가지 중요한 동력을 지적했다. 익명이 보장되는 현금결제가 마피아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같은 거대 IT 기업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아직 인터넷에 기록되지 않은, 따라서 상업적으로 해부되지 않은 우리 삶의 일부가 남아 있다. 물론 아마존의 안테나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마존은 최근 첫 오프라인 무인점포 아마존고를 개장했다. 원하는 물품을 쇼핑백에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고객 계정에서 구매 금액이 빠져나가는 시스템이다.
하링은 말라위, 필리핀, 나이지리아 등 많은 개도국 정부에서 ‘현금 없는 사회 실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현금보다 더 나은 동맹’ 차원에서 이런 움직임을 후원한다. 이 동맹은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시티뱅크, 페이팔 등 금융결제 대기업이 전자 결제 촉진과 점유율 확대를 위해 출범시킨 것이다.
이런 변화는 각국에서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결제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각국 국민의 신상 정보가 기록된다. 이는 선거인 명부 구축 등에도 활용된다. 목표만큼은 흠잡을 데 없다. 그러나 이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는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중국은 이미 좋은 시민을 가려내기 위해 점수를 매기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결국 현금 없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인터넷에 항구적으로 접속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는 몇몇 은행가와 금융 중개인의 결정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현금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공공 기술뿐만이 아니라 개인 자유의 공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금 없는 스웨덴

예배가 끝나자 목사가 전화번호와 십일조 헌금을 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알려준다. 이런 장면을 보는 사람은 결제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스웨덴은 1661년 유럽에서 은행 지폐를 처음으로 개발한 국가다. 그렇다면 최초로 현금 없는 경제를 달성하는 국가도 될 수 있을까? 
수도 스톡홀름의 몇몇 상점에서 ‘카드결제만 가능’이라고 적힌 알림판을 읽다보면 자영업자가 더 이상 현금을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카드결제는 앞으로 더 일반화될 전망이다. 스웨덴 중앙은행 정기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국민 절반이 2018년 상점에서 현금결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4년 이 수치는 30%였다.
이런 변화에 대해 스웨덴 국민은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스웨덴 국민 70%는 ‘현금 없이 살 수 있다’고 응답했다. 카드와 휴대전화 결제 앱 ‘스위시’가 주요 결제 수단이다. 2014~2018년 스위시 이용 인구는 전체 14%에서 60%로 증가했다. 18~24살 젊은층의 80%가 스위시를 이용한다. 대형 금융기업 컨소시엄인 스위시는 현금 관리 비용 절감과 수수료 측면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그렇다고 현금결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스웨덴 국민 60%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현금결제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사이버 공격이나 정전 때 일어날 혼란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019년 5월호 종이잡지 82쪽에 실렸습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9년 4월호(제389호)
La fin du cash n’est pas pour demain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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