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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다
[Special Report]성공의 딜레마- ① 돈의 유혹에 넘어간 벤처기업
[108호] 2019년 04월 01일 (월) 아르민 말러 등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에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처럼 세계 최고 벤처기업으로 성장시 킨 창업자가 거의 없다. 창립 초기 유망 벤처기업으로 주목 받았음에도, 대부분 도중에 스러지고 극소수만 살아남는 것이 독일 벤처기업의 냉혹 한 현실이다. 아이디어와 기술이 뛰어나고 창업자의 성공 의지가 드높은데도 세계에서 주목하는 굴지의 벤처기업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는 무엇일까. 반대로 살아남은 벤처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 차이 점과 내막을 들여다봤다. _편집자

르민 말러 Armin Mahler 마르틴 뮐러 Martin Müller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슈피겔> 기자

청바지에 까만 티셔츠, 그 위에 가죽점퍼…. 한스크리스티안 보스가 늘 하던 복장이다. 그 는 총리 관저에 갈 때도 따로 옷을 차려 입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집한 디지털 심의 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전문가 10 명이 초청돼독일 전역의 디지털화라는 정부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한 조언을 하는 자리다. 보스는 초청된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불과 3~4 년 전만 해도 이 분야 전문가 몇 명 외에 그를 아 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그가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은 특이한 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보스는아라고’(Arago)라는 기업을 만들었다. 아라고는 사업 경영 과정에 인공지능 (AI)을 도입해 기업 경영 자동화를 돕는 회사다.

사실 인공지능은 오랫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논의되던 주제였다. 중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인공지능 강국을 세우겠다고 공언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은 이 프로젝트에 1천억 달러 대 거금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제야 다른 국가들이 이 기술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인식했다. 설령 지금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을지라도 이 변혁에 발맞추지 못하고 뒤처질 경우, 위험과 마주하리라는 것 역시 중국 발표를 계기로 모두에게 각인됐다.

 

독일은 현재 보완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국 내에 뛰어난 인공지능 연구자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지식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기업 모델을 만들어내는 창업자는 극소수다. 보스는 이런 점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인기를 잘 이용할 줄도 안다. 마치 선교사처럼 독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인공지능을 선전한다. 모든 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인터넷에 만들려는 아이디어도 함께 알리면서 말이다. 보 스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다른 경쟁자보다 자신이 한참 앞서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거의 홀로 오뚝이처럼 서 있다고 말하는 그는, 아라고와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히로(HIRO)를 자신 있게 얘기한다. 보스가 계획 중인 인공지능 플랫폼 건설에 부족한 것은 오직 돈, 막대한 금액의 예산뿐이다.

 

인공지능 플랫폼 건설 목표

보스는개혁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회사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조용히 개발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되자, 2014년 금융투자회사 KKR를 경영에 참여시켜 5천만 달러를 투자하게 했다. 현재 아라고는 회사를 더 팽창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금융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일본 재벌기업 소프트뱅크의비전펀드’(Vision Fund) 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펀드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보스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다. 아라고를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도적 기업으로 성장시킬 생각이다. 전세계를 상대로 영업하되, 본사는 독일에 두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 보스는, 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완전 백치 같은아이디어를 냈다. 유럽 투자자를 구하는 것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으면 독일에 본사를 둔 국내 기업은 결코 생기지 못할 테니까.” 유럽 이외 투자자를 구하면 아라고 같은 앞길이 창창한 미래 기업을 통해 기업 통제권이 국경을 넘어갈 것이다. 그 결과 일자리, 기업가치 창출, 해당 분야 전문 지식까지 함께 외국으로 이전될 것이다. 독일은 이처럼 크게 생각하는 야심찬 창업자, 디지털화된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젊은 회사가 필요하다. 독일 경제는 아직도 산업혁명 시대에 생긴 기업들이 지배하고, 수십 년 전에 발명한 제품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피겔>은 경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게 될 챔피언 기업들을 찾아내, 그 결과를 2016~2017내일의 챔피언문패로 소개했다. 그때 언급됐던 기업이 아라고, 팀뷰어(Teamviewer), 릴라이어(Relayr), 마케비전(Macke vision), 큐어백(Curevac), 바이오테 크(Biotech) 등이다. 데이터, 알고리 즘, 그리고 3차원(3D) 동영상을 연구하거나 암 정복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이다.

 

2016내일의 챔피언현재

이제 그 기업들의 현황을 중간결산 해볼 때다. 그사이 어떻게 발전했는가? 정말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 본국인 독일에 본사를 두면서 이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새 세대 기업이 됐는가? 세계적 수준의 기업으로 성장한 스토리를 쓸 만한 기본 조건을 갖게 됐는가?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앞으로 독일 경제의 경쟁력 측면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질문을 숙고해보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양쪽이 혼재돼 있다. ‘그렇다는 쪽으로 말하면, 세계 굴지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와 이를 활용할 용기 있는 젊은 독일 기업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의 성장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기업 중 다수가 그사이 회사를 매각해 글로벌 콘체른(기업집단) 밑으로 들어 갔다.

독일 창업자들이 자기가 성취한 결과에 너무 빨리 만족해버리는 것이 상투적으로 이야기되는 독일 기업인상이다. 첫 번째 기회에 돈을 챙겨버린다는 뜻이다. 마크 저커버그 같은 미국의 실리콘밸리 거장에게서 보이는 야심이 이들에겐 결여돼 있다. 저커버그는 젊은 시절, 그의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을 몇 십억 유로 주고 사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저커버그의 목표는 그보다 훨씬 컸고, 그 목표를 혼자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창업자들의 현실은 내일의 챔피언 사례가 보여주듯, 간단하지 않다. 혁신적인 제품, 야심, 용기만으로 는 세계시장을 정복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중요한 것은 속도, 즉 다수 의 시장을 동시에 섭렵하면서 시장을 점유해버리는 능력, 그리고 자본으로 무장한 인터넷 콘체른이 달려들기 전에 엄청난 양의 주문을 독자적으로 감당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독일에서 그렇게 하기는 참 어렵다. 비용도 많이 든다.

 

 
▲ 마케비전(Mackervision)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목표 이룬다는 확신 결여

독일 연방정부도 이제는 이 사정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경제부 장관 페터 알트마이어는 2018 12월 초 연방정부의 디지털 기업인 회의에서독일에는 혁신적이고 성공적인 창업 문화가 확실히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기업들이 성년이 되고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매출이 천만 유로 고지를 점유해야 하는데, 이 나라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목표라고 덧붙였다. 경제부 디지털 회의에서는설령 그 단계까지 이뤄냈다 해도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 미국과 경쟁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고 강조했다. 알트마이어 장관은여기에는 강력한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며 인공지능으로 조종되는 최신형 비행기를 생산하기 위한 유럽 국가의 공동 노력을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카를스루에의 블루욘더(Blue Yonder), 슈투트가르트의 마케비전, 베를린의 릴라이어 같은 내일의 챔피언이 혼자 힘으로 세계시장 정복의 꿈을 더 이상 꾸지 못하는 것은 돈 때문만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 자체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블루욘더는 2018 7월부터 완전히 미국 소프트웨어 콘체른 JDA의 일부로 편입됐다. 우베 바이스 대표는 그 매도가 금융 구제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 회사 주주인 오토그룹과 개인 주식 투자자한테 자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둘 수도 있었다.”

블루욘더는 학습 알고리즘을 개발한 회사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정 주제를 예측한다. 예를 들어 고객 구매 성향 전망 같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슈피겔> 2016년 이 기업을내일의 챔피언으로 소개했을 때 창업주 바이스는 이 회사를 미국의 유수 기업과 같은 수준에 서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우리는 실리콘밸리와 직접 경쟁하고 있다.” 주식 상장을 꿈꾸던 바이스는 자신의 회사가 유니콘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에서 유니콘기업이라 하면 최소한 10억달러 ( 1조억원) 매출액을 이룬 신생 기업을 말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블루욘 더는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바이스는외국,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다수 고객을 확보하는 길을 뚫지 못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몇 년 전 그때보다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짐작하게 하는 어조다. 유럽 대륙에는 인공지능을 응용한 아이템의 수요가 아직 적은 편이다. 게다가 유럽 시장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유럽 국가들의 언어가 서로 다른 것이 문제고, 법 또한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시급히 미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게 절실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매입자 JDA는 제 대로 선택한 것이라고 바이스는 진단 했다.

 

 
▲ 아라고(Arago) 홈페이지(왼쪽)와 릴라이어(Relayr)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다국적 대형 콘체른에 매각

아르님 폴과 그의 조합원들이 마케 비전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들 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파트너를 구했다. JDA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그래픽 전공자인 폴은 자신이 몸담은 분야가 디지털화로 근본적 변화를 겪으리라는 걸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래서 회사의 주요 사업 분야를 컴퓨터로 제작된 그림들 전반으로 전문화했다.

 

이렇게 획득된 기술은 판타지 시리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동영상 제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그와 600명에 이르는 직원이 거둔 수익 대부분은 다임러와 포르셰 같은 자동차산업 분야 고객에게서 왔다. 마케 비전은 자동차 자료를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정확히 일치하도록 해당 자동차들을 비주얼화해냈다.

어떤 상품을 완벽하게 재현한 동시에 세세한 부분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그림들, 즉 컴퓨터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이디지털 쌍둥이수요는 어마어마 하게 많다. 디지털 그림은 언제든 거듭 사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어떤 환경에 서든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광고 클립 같은 데에도 삽입이 가능하다. 전세계를 상대로 사업하는 개별 사업 체인들은 이제 광고할 때마다 번거롭게 자사 제품 사진을 다시 찍을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상표를 해당 국가 언어로 첨부만 해도 충분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시장의 빈 구석인 것처럼 보였던 사업 분야가 갑자기 기업의 미래가 됐다. 오늘날 폴은 말한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객 관계를 디지털화하려고 애쓴다. 회사들이 가장 원하는 모델은 인터넷으로 소비자에게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 이다.” 뮌헨의 3D익사이트(3DEXcite) 를 비롯한 마케비전의 경쟁사들은 2014년 이미 프랑스의 콘체른 드소시 스템(Dessault Sytemes)에 인수됐고, 그 결과 인수 이전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18년 초 다국적 경영 컨설팅과 디지털 기술 지원 기업인 액센추어(연매 출 350억달러)가 마케비전을 완전히 인수하기로 결정한 뒤, 폴과 그의 조합원들은 자신들이전세계 45만 명의 액센추어 직원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폴은어쩌면 서너가지 허가를 더 얻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엄살을 부린다. “이 연합 전략이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왜냐하면 이제는 액센추어와 액센추어 고객이 내 최대 시장이고, 이는 미국 경제지 <포천> 목록에 있는 대부분 콘체른을 아우르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마케비전 브랜드가 그대로 유지되고, 독립성이 최대한 보장되며, 자신은 최소한 5년은 일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포함된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블루욘더와 마케비전이 성공을 거두지 못해 홀로서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 반대다. 릴라이어 역시 적어도 예견된 만큼 발전했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기업은 소유주를 바꾸었다.

릴라이어는 2013년 독일에서 설립된 기업으로, 설립과 함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개설했다. 기존 기계 설비에 예측 정비 시스템 같은 센서를 장착해 사물인터넷에 적합하게 만들자는 창업자의 착상은 초반부터 클라이너 퍼킨스 같은 투자자의 인정을 받았다. 2018년에는 텔레콤을 설득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해 가을에는 대표인 요제프 브룬너를 비롯해 지금까지 투자에 관여했던 주주들 모두가 뮌헨레(Munich Re) 자회사에 주식을 매도했다. 당시 시세로 약 3억달러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이는 독일 창업 회사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최대 규모의 사건이었다.

이 유출 건은 동시에 내일의 챔피언이 직면한 딜레마를 인상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브룬너는우리는 회사의 다음 단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자본금을 대출받느냐, 아니면 영국계 대기업에 회사를 매도하느냐 결정해야 하는 길목에 서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도 율엑스(Joule X)를 만들어 1억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에 시스코(Cisco)에 매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릴라이어의 경우 그런 식의 거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린 식물은 거기서 잘 자라나기가 어렵다.”

브룬너는 주식 상장에 관해 같은 업종의 파트너이자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주변에서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너무 비싸고 복잡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주주들은 결국 세계적 규모의 재보험사 뮌헨레그룹에 릴라이어를 매각하기로 했다. 이 그룹은 미국 자회사인 하트퍼드스팀보일러(Hartford Steam Boiler)를 통해 이미 릴라이어에 투자하던 기업이다.

브룬너는매각 이후 이전보다 기획의 지평이 확연히 확장됐고, 릴라이어는 하트퍼드스팀보일러그룹의 보호 아래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마케비전의 폴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릴라이어의 브랜드와 기업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며, 차이점이라면 단지 독립적인 이사회가 새로 구성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 2019년 4월호 종이잡지 53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9년 5호

Das Erfolgsdilemma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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