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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뉴노멀’은 정당한가
[Finance] 각국 중앙은행 저금리 회귀
[108호] 2019년 04월 01일 (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중개인이 거래 주문을 하고 있다. 2018년 말 폭락세를 보인 뉴욕 증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연준의 통화정책 완화에 힘입어 2019년 2월부터 2만5천 대를 회복했다. REUTERS
중앙은행이 뭘 하는 곳인지에 관심이 없어야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중앙은행 태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산다. 뭔가 잘못돼간다는 신호다. 보통 사람이 중앙은행 의사결정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속속들이 파헤치려 애쓰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뉴노멀’(새로운 정상상태) 시대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에 그에 걸맞은 규범과 기준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고위험, 미국 경제 축소 등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에 나타나는 뉴노멀로 논의된다. 과거 사례로는 대공황 이후 ‘큰 정부’론, 1980년대 이후 규제 완화 등이 대표적이다. 이젠 통화정책도 뉴노멀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통화정책 뉴노멀은 다름 아닌 ‘완화된 통화정책’의 일반화다.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 정상화, 즉 긴축으로 방향을 틀던 중앙은행들은 잇따른 악재에 직면하자 다시 완화된 통화정책으로 돌아가고 있다. 경제성장 전망 하락, 좀처럼 목표치에 다가가지 못하는 물가, 무역전쟁 장기화 등이 그 악재다. 금융위기 이후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선진 중앙은행들은 좀처럼 금리를 정상화하지 못한다. 긴축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완화로 돌아섰다. 이제 금리 정상화가 오히려 비정상처럼 보이고, 초저금리가 정상인 시대가 보편화됐다. 
 
공식적으론 유럽중앙은행(ECB)이 먼저 방향을 바꿨다. 유럽중앙은행은 3월7일 정책금리를 0으로 동결하면서 새로운 장기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양적완화 프로그램 종료를 호기롭게 선언한 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완화된 통화정책으로 돌아간 것이다.
 
통화정책 선회는 미국에서 먼저 감지됐다. 유로존보다 훨씬 경기가 나은 미국이 불을 질렀다. 긴축을 주도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연일 통화정책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심지어 긴축의 주요 수단인 보유 자산 축소도 조만간 종료한다고 예고했다.
 
2018년 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보다 낮아졌다고 하지만 2.6%에 이르렀다. 2019년 2월에는 3.8%였다. 미국 성장률이 2018년 2분기 4.2%에 도달한 뒤 3분기 3.4%, 4분기 2.6%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선진국들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실업률은 완전고용 상태라 해도 좋다. 그런데도 미국 중앙은행은 긴축을 중단했다. 아니 당분간 포기했다고 해도 좋다. 
 
금리 정상화 중단 이유
2018년 말까지만 해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강건한 전사처럼 보였다. 통화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올바르다고 믿는 바를 수행할 것이며, 자산가격 변동은 금리 결정의 주요 변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세 번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두 번 정도는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반대 의견을 공공연히 드러냈지만 파월 의장은 정치 개입에서 중앙은행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그가 변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에 대한 정치적 공격 때문에 그가 행보를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월 의장을 변화시킨 건 자산시장이었다. 취임 초부터 두드러졌던 그의 매파적 행보로 자산시장은 곤두박질쳤다. 2018년 10월부터 하락세를 키우던 미국 주식시장은 12월 말 무렵 급락세를 보였다. 그와 연준은 놀랐을 것이다. 그는 긴축에 의한 자산시장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 말해왔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현실이 되자 움츠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준은 2019년 들어 곧바로 긴축 기조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2월27일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금융시장은 더욱 변동성이 심해질 것이며 금융조건은 2018년 초보다 성장을 덜 지원하고 있다.” 증언의 핵심은 연준이 시장을 주목하고 있으며, 성장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통화정책 변경에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사를 걷어내면,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 하락세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긴축 기조 철회를 고려하겠다는 말이다.  
 
파월 의장을 포함한 연준 인사들은 변했다. 경제 데이터가 바뀌어서가 아니다. 연준 인사들은 재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침체를 걱정한다. 할 수 있다면 막고 싶어 한다. 최소한 침체의 책임을 덜 지기를 원한다. 긴축이 불러올 자산시장 하락이 침체로 연결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이 이겼다. 연준의 시장친화적 정책을 이끌어내 증시 하락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시장은 원하던 ‘파월 풋’(Powell put)을 얻은 것이다. 파월은 월가 출신이다. 대형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에서 일했다. 기본적으로 친시장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가 변한 게 아니라 의장 취임 직후 보인 ‘매파적’ 행보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 2019년 2월27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해 연준이 제출한 반기 통화정책 보고서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REUTERS
제3의 책무
각국 중앙은행은 두 가지 책무를 갖는다. 물가 안정과 고용 촉진 등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도모다. 연준이 의회에서 부여받은 공식 책무도 이 두 가지다. 하지만 연준을 포함한 세계 중앙은행들은 공공연히 제3의 책무를 수행한다. 바로 자산시장 보호다. 통화정책 결정 때 자산시장의 동향을 예의 주시한다. 거칠게 표현하면 자산시장 눈치를 본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물가 인상)을 염려해야 한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에 중앙은행이 존재한다. 연준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다. 그런데 물가는 어떤 시각과 기준으로 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만 해도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개인소비지출물가지수(PCE)가 있다. 
 
연준은 개인소비지출물가를 ‘2% 물가 목표치’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CPI가 PCE보다 높다. 1990년대부터 추적해보면 대부분 기간에 CPI가 PCE보다 높았다. CPI가 2%를 웃돌았을 때도 연준은 그보다 낮은 PCE를 내세워 금리 인상을 꺼렸다. 바로 2016~2017년에 벌어진 일이다. 연준은 이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완화된 통화정책 정당성을 확보했다. 
 
연준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모양새를 보인다. 최근 리처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일정 기간 2% 이상 인플레이션이 허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수년 동안 물가가 목표치에 미달했기에 그것을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가가 목표치를 웃돌더라도 완화된 통화정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가 세계 최대 채권회사 핌코 출신인 시장친화적 인물이란 점을 고려해도 이런 생각은 위험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어진 중앙은행의 완화된 통화정책은 자본주의 단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다. 초저금리는 부유층과 거대 기업에 보상을 집중시켰다. 자산을 가진 계층이 더욱 부자가 되면서 부의 불평등은 한층 심해졌다. 인플레이션이 자산 가격에 집중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표치를 넘어서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한다면 자산을 갖지 못한 계층의 주거와 필수품 비용이 오를 것은 자명하다. 이는 부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할 것이다. 
 
또 하나 위험한 발언이 있다. 2018년 12월에만 해도 파월 의장은 연준의 자산 축소가 ‘자동운항’되고 있다고 말했다. 발언 일주일 뒤 자산시장이 폭락하자 말을 바꿨다. 자산 축소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로써 자산 축소 자동운항은 현재 끝나는 쪽으로 관리되고 있다. 
 
연준 책무가 자산가격을 지지하는 것이라면 연준 핵심 인사들의 이런 행동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산가격 지지라는 제3의 책무는 부의 불평등만이 아니라 다른 부작용도 낳는다. 시장과 자본의 할당이 왜곡된다. 건전한 자산시장은 밸류에이션(가치평가)으로 가격이 결정되지만, 오늘날 자산시장 가격은 중앙은행이 거의 정한다. 중앙은행 행보가 자산시장 가격 오르내림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자산시장 불안정성이 오히려 커졌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시장친화적이던 ‘버냉키 풋’은 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동반된 약세장을 끝내지 못했다. 파월 풋이라고 그보다 더 강력할 수는 없다. 단기적으로 시장을 부흥시킬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상승세를 유지하는 동력은 될 수 없다.
 
통화정책 뉴노멀의 정당성은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다만 그 부작용이 드러났다면 일반화에는 신중해야 한다. 중앙은행 뉴노멀은 통화정책 한계를 인정한 뒤 개선점을 찾은 새 규범이어야 한다. 초저금리가 낳은 폐해를 충분히 수정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작업을 등한시한 채 완화된 통화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뉴노멀이라 할 수 없다. 그 뉴노멀에 자산가격 지지라는 새 책무를 추가하는 것 역시 대안이 아니다. 세상은 변한다. 중앙은행 자체도 변해야 한다. 통화정책 뉴노멀이 아닌 중앙은행 뉴노멀이 필요한 시대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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