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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박스오피스의 미래
[Culture & Biz]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의 의미
[108호] 2019년 04월 01일 (월)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1800년대 후반 영화라는 매체가 처음 발명된 뒤 영화관은 대중의 훌륭한 오락(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됐다. 영화관 산업을 박스오피스 산업이라 하는 것도 과거 박스 형태의 매표소에서 영화표를 팔았기 때문이다. 연극·오페라·콘서트 같은 라이브 공연을 하는 극장과 달리 영화관은 상대적으로 싼 비용으로 훌륭한 오락 체험을 제공했다. 영상 기술 발달과 함께 영화는 라이브 콘텐츠가 주지 못하는 시각·청각적 경험까지 주면서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콘텐츠 분야의 하나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디지털 미디어와 인터넷 공세로 영화관은 잠시 그 자리를 위협받는 것처럼 보였다. 대형 텔레비전의 등장과 홈시어터라는 각종 디지털 상영 장비가 값싸게 공급되고, 인터넷으로 안방에서도 개봉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주문형비디오(VOD)나 오버더톱(OTT) 서비스가 성장했다.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영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1990년대 후반 많은 지역에서 단관 개봉관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고 영화관 사업의 미래는 불투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박스오피스 산업은 자본력 있는 대기업 중심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으로 흐름을 바꿔놓는 데 성공한다. 1998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상영관인 ‘CGV 강변 11’이 서울 구의동에 등장했을 때 문화적 충격이 컸다. 기존 단관과 달리 여러 영화를 한곳에서 개봉한다는 멀티플렉스 개념은, 미국식 쇼핑몰 같은 대형 유통센터와 결합하며 성장했다. 
 
대형 유통센터가 확보한 유동인구는 스크린 수를 늘리고, 다양한 영화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충분했다. 거기에 3D, 4D처럼 영화관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 선보였다. 기존 영화관과는 다른 쾌적한 영화 관람 환경도 제공했다. 이에 따라 한때 사라질 듯이 보였던 영화관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오락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20세기 박스오피스 산업을 이끌었던 단관 개봉 극장은 이제 지방 몇 곳을 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멀티플렉스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영화관은 다양한 오락 체험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면서 한국 영화산업의 부흥까지 이끌어냈다. 
 
성장 멈춘 박스오피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한 해 영화 관객 수가 2005년 처음 1억 명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늘어나 2013년 2억 명을 돌파했다. 사람들이 1년에 평균 4편 이상 영화를 보았다는 이야기다. 천만 관객 동원, 누적 관객 1억 명 돌파 주연배우까지 등장하며 영화산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인터넷 성장으로 시청률이 매년 하향세를 겪는 TV 콘텐츠 산업과는 달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박스오피스 성장세는 꺾였다고 말한다. 북미에선 2009년 14억2천 명이던 관객 수가 매년 1~2%씩 하락해 12억4천 명까지 줄었다. 2016년 6%에 가까운 하락세를 기록했다. 한국도 2005년 이후 매년 8% 이상 성장세를 보이다 2013년 2억 명 돌파 뒤 1% 미만 성장으로 눈에 띄게 위축됐다. 2018년에는 처음으로 전년 대비 1.6% 줄었다. 
 
2018년 관객은 줄었지만 영화관 매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2018년 4월 관람료 인상에 따른 것일 뿐 영화산업 미래가 여전히 밝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한다. 관객 감소 이유로 눈에 띄는 흥행 영화의 부재나 경기 악화 등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영화산업이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서는 신호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2018년 들어 박스오피스 산업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는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같은 OTT의 성장세와 맞물려 있다. 북미에선 2017년 인터넷 플랫폼 매출이 321억달러(약 36조원)로, 글로벌 박스오피스 매출(406억달러)에 육박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2016년부터 매출이 30% 이상 증가해 고성장을 기록했다. 2018년 한국 영화관 관객 수의 감소를 넷플릭스 같은 OTT 미디어의 성장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2019년 1분기가 지난 현재에도 박스오피스 산업의 하락세가 완화될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2018년 한국영화 산업은 업계에서 ‘재앙’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큰 부진을 겪었다. 특히 <인랑> <마약왕> <스윙키즈> <안시성> 같은 100억원 이상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한국 영화가 잇따라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계는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 록그룹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를 영화화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해 큰 인기몰이를 했다. 개봉 당시만 해도 100만 관객만 모아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머큐리를 알고 추억을 공유하는 세대가 장년층인데다 관객 주류인 젊은층이 잘 모르는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개봉 2주차 초반에 100만 명을 가뿐하게 넘더니 2019년 2월 말 990만 명을 넘어섰다. 음악영화 최초로 한국 관객 천만 돌파를 눈앞에 뒀다. 예상치 못한 흥행에 영화 제작·유통·배급 업계에선 음악영화 장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잇는 흥행작을 꿈꾸며 다양한 음악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다.
 
음악영화의 매력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은 2013년 개봉한 <비긴 어게인>이나 뮤지컬영화 <맘마미아>에서 시작한 음악영화 장르의 흥행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락세를 보이는 박스오피스 산업의 나아갈 방향에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보헤미안 랩소디> 관람 행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중복 관람이다. 서사 위주 영화 콘텐츠에서는 좀체 나타나기 힘든 현상이다. 내용을 다 알아 재관람할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영화에서 관객은 커다란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로 마치 콘서트장에 있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관객에게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는 일종의 ‘관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싱어롱 관람’은 음악영화가 조용히 팝콘을 먹으며 영상을 보는 전통적 관람 형태와는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관객은 웅장한 사운드에 맞춰 발을 굴리고, 콘서트장에서나 가능한 이른바 ‘떼창’까지 즐겼다. 과거 음악영화들의 흥행에 이어 <보헤미안 랩소디> 대흥행으로 다시 검증된 점이다. 영화관이 영화 이상의 다양한 콘텐츠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라이브 뷰잉’이라는 단체관람 행태가 자리를 잡았다. 콘서트나 이벤트에 직접 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영화관 등에 모여 원격 영상을 보면서 함께 즐기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거리 응원 또는 영화관·경기장에서 월드컵 축구경기 중계를 같이 보는 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선 처음부터 라이브 뷰잉 용도로 제작되는 전용 콘텐츠가 생길 정도로 이런 문화가 확산됐다. 물론 멀티플렉스 비율이 한국보다 적고,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전용 공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만 본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난 좋은 사례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대중 관점이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늘 달라진다. 콘텐츠 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대중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콘텐츠 속성은 제한적이므로 공간, 장치, 이벤트 등 다양한 요소와 결합해 발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은 영화 자체의 작품성을 넘어선 것이다. 영화관이라는 공간과 결합한 시너지 효과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관에서가 아니라 다른 영상장치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천만 가까운 사람들이 열광한 퀸 열풍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 제공이 경쟁력
박스오피스 산업은 단순히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관 사업이 아니다. 영상 산업의 한 축을 떠받치는 중요한 콘텐츠 인프라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스크린 독과점이나 간접광고 같은 문제점도 있지만, 한국 영화산업도 이제는 공간과 관객의 경험까지 고려한 새 콘텐츠 발굴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9년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동시에 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는 해다. 1919년 최초의 한국 영화인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가 개봉된 이후 한국 영화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영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멀티플렉스 등장으로 한국 영화산업이 두 번째 호황을 맞은 것처럼, 이제는 공간과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영화산업이 자리잡을 때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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