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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 부재 한계치 도달 공정 제고, 사람 투자 시급
[국내이슈] 한국 제조업 재생 처방전
[106호] 2019년 02월 01일 (금) 조계완 kyewan@hani.co.kr
조계완 <한겨레> 기자
 
   
▲ 2018년 5월24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부터 2017년까지 37년 동안 한국 경제 성장에서 제조업이 기여한 비율은 30.4%다. 운수, 도·소매, 금융·보험 등 ‘제조 관련 서비스업’까지 합치면 66.4%에 이른다. 나머지 주요 성장 기여 분야는 음식·숙박·교육·보건 등 개인공공서비스업(22.2%), 전력·건설 등 사회인프라(9.0%)다. 그런데 제조업 전체 생산 증가율(연평균)이 2000~2010년 9.5%에서 2010~2017년 2.4%로 급전직하했다. 제조업 수출증가율도 같은 기간 10.5%에서 2.8%로 떨어졌다. 제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며 쪼그라드는 추세가 확연하다. 
 
한국 경제의 ‘등뼈’ 제조업이 제품 경쟁력과 생산성 하락 등 내부 체질·근육의 허약상을 일제히 드러냈다. 여기에 만성적 혁신 역량 지체라는 질병에 흔들린다. 쇠락 징후가 완연한 제조업은 개별 기업·산업의 수익성 위기를 넘어 한국 경제 전반을 위태롭게 한다. 정부도 국정과제 목표를 ‘포용국가’에서 ‘혁신적 포용성장’으로 바꿔 내걸며 제조업 부흥을 2019년 경제·산업 정책의 중심으로 삼았다. 제조업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면 불공정한 산업생태계를 바로잡고, 숙련노동력 투자를 통한 ‘장기지속 혁신수혈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신음하는 산업현장
주력 제조업의 우울한 그늘은 전북 정읍 고부면에 있는 농공단지까지 드리우고 있다. “사업이란 게 본래 순탄하지 않고 영업 물량도 어차피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전에는 한국지엠(GM) 사정이 안 좋아도 현대·기아자동차에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산업 전반이 힘들다보니 피부에 와닿는 강도가 훨씬 세다.” 정읍고부농공단지에 입주한 중소기업 (주)카라 전광일 사장 말이다. 카라는 문을 닫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기아차 광주공장의 1차 협력업체에 플라스틱 접착처리 제품을 납품해온 업체다. 사출성형 제품(자동차 범퍼·도어·핸들)과 도장 조립 제품을 생산한다. 
 
2000년 농공단지 입주자금을 발판으로 정읍공장을 세운 뒤 지엠 군산공장 물량을 맡았다. 지엠이 라세티를 생산하면서 물량이 많아진 2003년 군산 산업단지에 새 공장을 지어 2006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2018년은 혹독한 해였다. 정읍공장 생산동 2곳 가운데 하나는 가동이 중단됐다. 정읍공장 직원은 80명에서 40명으로 줄었다. 군산공장에선 50명이 19명으로 줄었다.
 
자동차부품 분야 1차 협력업체만 851개에 이른다. 카라는 모두 8천여 개에 이르는 2·3차 협력업체 가운데 하나다. 전 사장은 지엠만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도중에 현대차 전주공장, 쌍용차 평택공장 물량도 맡아 부족분을 메우며 근근이 버텨왔다. 그러나 전주공장도 2018년 말 30% 생산 감축을 결정했다. 완성차 국내 생산은 2015년 456만 대에서 2018년 400만 대로 10% 이상 줄었다.
 
   
▲ 2019년 1월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인천 부평구 절삭공구 제조업체 와이지원의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조업 부진 여파
제조업이 국내총생산(명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다. 혹한을 맞은 제조업은 곳곳에서 고용·소득 위기를 불러온다. 국내 제조업체는 41만6천 개(전국 사업체 조사), 제조업 고용은 404만 명(2016년 조사, 전체 산업의 19%)에 이른다. 제조업 일자리 증가율은 2010년 4.54%에서 2015년 2.16%로 반토막 나더니 2016년엔 0.04%로 거의 멈춰버렸다. 제조업 종사자의 소득 지표인 부가가치율(부가가치/총생산액)은 20년 넘게 하향세를 보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부가가치율은 1995년 30.99%에서 2005년 25.37%, 2014년 22.22%로 떨어졌다. 제조업 종사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소득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완만한 하강 국면에 들어선 제조업의 배경에는 단순한 실적 부진이나 세계경제 경기순환 사이클, 중국의 맹렬한 추격 같은 ‘대내외 여건’을 넘어선 구조적 원인이 자리잡고 있다. 김도훈 전 산업연구원장은 “1970년대 석유위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고비 때마다 제조업이 빠르게 경쟁력을 회복했다”며 “그러나 이제 다시 경쟁력을 찾는다는 것은 막연한 기대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다르다’는 진단이다.
 
만성질환으로는 무엇보다 제조업 생태계 불평등이 꼽힌다. 한국은행 간부는 “현대차 등 원청마다 납품 협력업체한테 ‘우리가 물건을 받아줘 시장 평판이 좋아진 덕에 다른 업체에도 납품할 기회가 생겼으니 박한 단가를 참아라’는 논리를 들이대왔다”며 “원청이 성장해 납품 물량이 늘어나던 시절에는 쥐어짜는 단가를 물량 증가로 상쇄하며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물량 효과가 멈춰 고사 직전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고질적 질환 
‘단가 착취’에 기반한 생태계는 업황 부진 때 위험을 위아래 양쪽으로 급속히 퍼뜨린다. 또 제조업 내부의 제품·기술 혁신을 지체시키는 장애로 작용한다. 주로 협력업체가 생산하는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2017년 생산액이 전체 제조업의 59.4%인 731조원, 고용은 142만9천 명(62.2%)에 이르렀다. 이런 ‘뿌리산업’은 첨단소재, 정밀부품, 핵심장비로 이어지면서 제조업 혁신을 추동하고 역동성을 불어넣는 엔진 역할을 해야 하지만 만성적 고장 상태다. 전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현대차나 삼성전자 임원들이 납품업체 단가를 줄인 공로로 해마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다”며 “이런 왜곡된 생태계에서는 기업가적 혈기와 창의적 혁신을 이끌어낼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주력 제조업이 지난 50년 동안 개발연대를 통과하며 구축해놓은 복잡하고 거대한 생산조직은 수출과 성장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누적된 생태계 내부 구성의 폐쇄성과 불공정이 ‘협업·협력을 통한 혁신’의 부재를 낳은 셈이다.
 
제조업 전반에 퍼진 ‘현장 숙련의 폐기(해고)와 자동화 질주’라는 전략적 선택도 제조업 활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고용·소득 위기를 부른다. 제조업 설비투자는 2017년 82조2천억원(한국은행 국민계정)을 비롯해 2010년 이후 해마다 60조원이 넘었다.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는 자동화 투자다. 제품·기술 혁신의 원천인 노동 숙련은 끊임없이 약화하거나 뒤로 밀려 퇴장하는 ‘탈숙련’이 동시에 진행돼왔다. 
 
사람 대신 로봇 
제조업 노동생산성을 보여주는 부가가치율의 하락세도 ‘노동 숙련 축출’이라는 병리 현상을 잘 보여준다. 2016년엔 25.5%까지 떨어진 한국 제조업의 부가가치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밑에서 7번째로 낮은 수치다. 미국(36.9%), 일본(34.5%), 독일(34.8%) 등 선진국은 35% 안팎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거의 모든 제조 산업·업종마다 현장 인력 투입을 대폭 줄였다”며 “사람 비용을 낮추는 대신 자본 투입을 늘리는 ‘자동화 속도’ 경쟁에 몰두해왔다”고 말했다. 
 
지난 20여 년 제조업의 영업이익 등 수익성 지표는 좋았지만, 인력 감축이 이끈 ‘이익 도취’의 뒤편에서 경쟁력 마모가 지속돼왔다는 얘기다. 세계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수는 701대다. 2011년(347대)부터 압도적 세계 1위다. 자동차 대국인 독일(322)과 일본(308명)보다 2배 이상 많다. 
 
해외 생산 확대와 부품 해외 의존도 심화도 국내 생산·혁신 역량을 원천적으로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핵심부품과 장비 수입 의존도는 2017년 반도체 70%, 디스플레이 75%, 특수목적기계 40%에 이른다. 제조업 중간투입재 국산 비율은 54%(2014년)에 그쳤다. 국내 소재부품 조달이 적고 수입 유발형인 생산구조는 제조업 성장전략을 선도적이고 자율적으로 세우기 어려운 한계로 작용한다. 
 
구조개혁 지연
제조업체들이 부실화하면 번번이 정부가 끌어안아주는 방식이 구조개혁을 지체시켰다는 지적이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경쟁력을 잃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기업일수록 비효율 사업·조직을 걷어내는 구조조정에 저항하면서 연명한다”며 “정부 우산을 보호막 삼아 안주하고 버티는 행태”라고 말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오랜 기간 저금리에 힘입은 한계기업의 잔존과 구조조정 지연, 기다리면 경기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관성적 투자 행태를 꼬집었다.
 
국가 자원 배분에서도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연구개발(R&D) 이름으로 개별 대기업에 편중 지원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아야 혁신 동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간부는 “현대차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혜주였다. 다른 업종 피해를 무릅쓰고 국가가 지원하고 여러 차례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입었지만 경쟁력은 키우지 못했다. 현대차가 한국전력 본사 터 매입에 쓴 10조원을 전기차·수소차 충전소 설치에 썼다면 미래 경쟁력이 확보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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